세계 축구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했지만 아쉽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FIFA 세계 랭킹 1위인 독일 국가대표팀을 2대 0으로 꺾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숨 가쁘게 펼쳐졌던 한 달여 간의 월드컵 여정,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어떤 점이 특별했는지 숫자로 살펴봅니다.
57등이 1등 잡다! 이변과 반란의 연속
2018 러시아 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기존 강호들의 ‘대몰락’입니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이래 월드컵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해온 네 팀, 브라질(우승 5회)과 독일(우승 4회), 이탈리아(우승 4회), 아르헨티나(우승 2회) 국가대표팀이 모두 4강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심지어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60년 만에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했습니다. 독일 국가대표팀도 한국전 패배로 80년 만에 조별 예선 꼴찌로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지요.
특히 독일의 한국전 패배는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습니다. 역대 월드컵을 통틀어서 FIFA 세계 랭킹 1위 팀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패한 경기 중 상대팀(57위)의 순위가 가장 낮은 경기로 기록됐습니다. 동시에 지난 월드컵 우승팀이 패한 경기 중 상대팀의 FIFA 세계 랭킹 순위도 가장 낮았습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게 뼈아픈 패배를 남긴 이 경기는 역대 월드컵 사상 최고의 이변 3위에 뽑히기도 했지요.
이번 월드컵 4강을 살펴보면 FIFA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드는 팀이 벨기에(3위)와 프랑스(7위) 국가대표팀 이렇게 단 두 팀밖에 없습니다. 조별 예선부터 계속해서 FIFA 랭킹과 상관없는 결과가 속출하면서 FIFA 세계 랭킹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요. 앞으로 FIFA 세계 랭킹 산정 방식을 상대평가인 ‘엘로 시스템’으로 바꾸겠다고 하니 얼마나 정확도가 높아질지 지켜봐야겠죠?
한편으로는 뻔한 결과를 원치 않던 축구팬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굉장히 즐거웠을 겁니다. 40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를 맛본 페루와 튀니지 국가대표팀, 24년 만에 승리를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와 20년 만에 이긴 이란 국가대표팀 등 몇십 년 동안 월드컵 무대에서 이기지 못했던 팀들이 승전보를 울리며 각국의 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29과 12, 토너먼트는 역시 수비!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특징은 페널티킥과 자책골이 기존 월드컵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겁니다. 한국과 스웨덴 경기에서도 VAR(비디오 판독) 판정 끝에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우리나라가 1대 0으로 지는 아쉬움을 남겼지요.
이번 월드컵에서 페널티킥은 29회 나왔고, 그 중 10번은 VAR 판정을 통해 결과가 번복됐습니다. 그런데 VAR의 영향을 빼더라도 19회로 역대 최고 기록인 18회를 넘어섰습니다.
자책골은 12회로 지난 세 월드컵을 합산한 기록과 맞먹을 만큼 역대급으로 많습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선 4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2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5회였거든요. 바꿔 말하면 이는 그만큼 수비가 불안했던 팀들이 많았단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팀 중 9팀이 해당 경기에서 패하며, 수비가 불안한 팀은 이기기 힘들다는 축구의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 번 보여줬습니다.
11%의 득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변과 반전이 넘쳐났던 월드컵이었던 만큼 모든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대회를 통틀어서 0대 0 승부가 단 한 차례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경기마다 최소 한 골은 들어갔습니다. 신기하게도 총 64경기 중 3분의 1인 23경기가 전반전에서는 한 골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0대 0으로 경기를 마친 프랑스와 덴마크의 맞대결을 빼면 모두 후반전에 골이 터졌습니다.
끝까지 긴장의 고삐를 놓지 못하게 추가시간에도 골이 많이 터졌습니다. 무려 득점의 11%(169골 중 19골)가 막판에 들어간 건데요, 역대 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로 그다음 기록인 2014 브라질 월드컵의 5.9%를 훌쩍 뛰어넘는 신기록입니다. 이중 6골은 추가시간에 터진 결승골입니다. 팬들의 입장에선 정말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겠죠? 그만큼 승부의 세계에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월드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넣은 3골 모두 90분을 넘겨 터트리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징크스
한편 월드컵 징크스는 이번에도 계속됐는데요. 지난 월드컵 우승국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다는 ‘우승국 징크스’를 독일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2010년 이탈리아, 2014년 스페인에 이어 3회 연속으로 ‘우승국 징크스’가 발생했지요.
5번의 월드컵 중 무려 4번이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과 같은 조에 편성돼 번번이 한 점차로 졌던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과 같은 조에 배정돼 그 악연을 이어갔습니다. 16강 진출을 놓고 벌인 단두대 매치★에서 또 한 점차로 지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단두대 매치★
제일 하위 팀끼리의 경기. 지는 팀이 떨어지게 된다.
7회 연속으로 16강에 오른 조별 예선의 최강자지만 16강만 진출하면 약해지는 멕시코 국가대표팀은 이번에도 8강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좋아하기도, 그렇다고 싫어하기도 애매한 징크스를 계속해서 이어가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우승으로 4회 연속 유럽 팀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1세기 축구를 지배하고 있는 유럽의 강세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대회기도 했습니다.
한 달여 동안 흥미진진한 경기들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2018 러시아 월드컵! ‘영원한 강자도 없고 거저 얻는 승리도 없다’, ‘강한 팀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하다’는 모든 스포츠의 격언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월드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기존 축구계의 지각변동을 지켜볼 수 있었던 대회였던 만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역시 이번의 아쉬움을 발판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