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과학영재교육원에서는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신입생을 위한 특별한 캠프를 진행한다. 뼛속까지 시리던 1월 23일, 기자는 부산대 과학영재교육원 2018년 신입생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캠프 장소는 다름 아닌 연극촌. 배우가 되려는 건 아닐 텐데, 과학영재들이 연극촌에 모인 이유가 뭘까?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기자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한 건물로 들어갔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연극단원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추며 연기하고 있었다. 연극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분명 과학영재들이라고 들었던 터라 캠프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배우가 된 과학영재
“전국 27개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 중에 부산대 과학영재교육원에만 있는 신입생 연극캠프입니다. 올 해로 네 번째인데요, 이번에도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했으니 재밌게 봐 주세요.”
서혜애 부산대 과학영재교육원 원장의 소개로 막이 올랐다. 부산대 과학영재교육원에 합격한 신입생은 연극캠프에 오기 전에 과제를 하나 해야 한다. 연극캠프에서 연기할 주인공이자 본인이 관심 있는 수학자나 과학자에 대한 조사다.
과제는 단순히 인물에 대한 업적을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극복한 과정과 주인공에게 영감을 주거나 도움이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또 그 업적이 사회에 미친 영향까지 글로 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토대로 연극 장면을 구성하고 대본을 짜서 제출하는 게 신입생의 첫 과제다.
이후 연극단원에게 직접 연기를 배운다. 이틀 동안 연습한 뒤 친구들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 오른다. 실제 배우처럼 능청스럽고 여유 있게 연기하는 학생들 모습에 놀라자, 연극촌 관계자는 “학생들 스스로 대본을 써서인지 적극적”이라며, “심지어 장면에 삽입할 음향까지 직접 선택하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본을 쓰고 연극을 해보는 게 대부분 처음이라 서툴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만나 연극캠프를 진행하면 문제점은 없을까? 그에 대해 서 원장은 웃으며 답했다.
“애들끼리 너무 친해져서 문제라면 문제지요.”
연극으로 만나는 나의 롤모델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 해독으로 유명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튜링 기계를 발명해 인공지능 연구에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튜링은 치욕적인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다. 그때 그의 옆에는 한 입베어 문 사과가 있었다. 사과에는 맹독의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는데, 튜링은 정확하게 치사량만큼만 계산해 주입했다.
이날 중등수학반이 연극 무대로 선보인 수학자 앨런 튜링 이야기다. 학생들은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그 인물이 돼 보면서 인물에게 닥친 시련에 공감한다. 또 연극 체험으로 수학자와 과학자의 삶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까지 이해하게 된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관심 있는지 알아야 해요.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야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고요.”
평소 관심 있던 과학자나 수학자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면 본인의 관심사도 알 수 있다는 것이 서 원장의 생각이다.
장영실, 니콜라 테슬라, 피타고라스와 루이 파스퇴르까지 시대와 국적에 상관없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수학자와 과학자가 무대에 연이어 등장했다.
그중 눈에 띄는 팀이 있었다. 15살에 췌장암 진단키트를 발명한 젊은 과학자 잭 안드라카를 주인공으로 꾸민 첨단과학반의 무대였다.
첨단과학반은 국가 지원으로 부산대 과학영재교육원을 포함해 전국에서 단 세 곳의 영재교육원에
만 추가로 개설된 반이다. 이 반에서는 순수자연과학과 더불어 첨단과학기술산업이나 의공학을 배운다. 그래서 이 반에 지원한 학생들은 드론, 인공지능 같은 4차산업 분야에 관심이 많다. 다른 팀과 다르게 인물 선정도 새로운 이유가 여기 있었다.
영재교육의 본질, 창의인성
위대한 과학자는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관련 활동이 과학적 성취와 관련 있다는 뜻이다. 서 원장도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서 원장은 미국에 있을 때 참관했던 초등 영재교육 수업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자유로운 방법으로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여기에 서 원장은 연극을 가미했다. 연극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표현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준비 과정에서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협동심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연극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감정이입하면서 인성도 갖춘다. 뛰어난 업적을 이뤘지만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과학자에 공감하거나 비슷한 나이에 그들이 해나간 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연극캠프로 학생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며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배운다.
서 원장이 생각하는 창의인성교육이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동시에 더불어 살 줄 아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과학과 수학 실력도 중요하지만 창의력과 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을 선발할 때도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창의적으로 답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현재 부산대 과학영재교육원에서는 기회가 부족한 소외계층 학생을 ‘우선선발’ 전형으로 뽑아 부산대 학부생이 멘토가 되어주는 프로그램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교대, 서울대, 연세대 교수진과 함께 전국 단위로 영재교육원 학생들을 모으는 캠프를 기획하고 있다.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미래 인재가 되고 싶다면 관심을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