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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수학자와 저글링을 연구한 사연

2017년 2월 19일, 수학이나 물리학 관련 논문을 모아 놓는 웹사이트 ‘아카이브’에 재밌는 논문이 하나 올라왔다. 4명의 저자가 참여한 이 논문은 저글링 패턴 계산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중 3명이 우리나라 고등학생이라는 것이다. 대학생도 힘들어하는 논문을 고등학생이 썼다니, 이 논문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논문의 저자는 스티브 버틀러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수학과 교수와 경기과학고등학교 3학년 동갑내기 최정윤 군, 김기명 군, 서규혁 군이다. 세 학생이 다니는 경기과학고는 연구 중심 특성화고등학교로, 모든 학생이 직접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한다. 학생들은 스스로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 지원 프로그램이나 대기업이 지원하는 외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세 학생이 저글링 수학으로 논문을 쓴 것도 학교 연구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시작은 김장수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교수와 만난 일이었다. 김 교수는 어릴 적 장난삼아 했던 귤 저글링이 수학과 매우 밀접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저글링을 수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작년 겨울 방학 때, 세 학생은 김 교수를 찾아갔다.

이들은 김 교수와 함께 공 2개로 하는 저글링에 대해 연구했다. 그 뒤 저글링 수학에 관해 더 깊이 연구해 보고 싶어서 외국에서 저글링을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를 찾아가기로 했다. 저글링 수학을 연구한 교수를 있는대로 찾아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은퇴한 교수부터 더는 저글링 수학을 연구하지 않는 교수, 답변도 없는 교수가 수두룩했다. 그때 운명처럼 스티브 버틀러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경기과학고 세 학생은 스티븐 버틀러 교수를 만나게 됐다.


버틀러 교수와 함께 저글링
저글링 수학을 연구하던 버틀러 교수는 저글링 패턴과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연구중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연락을 받은 것이다. 버틀러 교수를 만나게 된 건 학생들에게 행운이었다.

버틀러 교수는 갑작스럽게 연락해 온 외국 고등학생들에게 기대 이상으로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줬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묵을 숙소를 직접 알아봐 주고, 연구 외에 식사 시간도 함께하며 세심하게 챙겨줬다.

왼쪽부터 스티브 버틀러 교수, 최정윤 군, 서규혁 군, 김기명 군, 박상훈 교사.
 
당시 미국은 학기 중이었다. 버틀러 교수는 바쁜 수업 일정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냈다. 수업시간 사이 쉬는 시간에도 찾아와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를 하나씩 던져주고 갔다. 신기하게도 버틀러 교수가 아이디어를 줄 때마다 막혔던 증명이 술술 잘 풀렸다. 버틀러 교수는 심지어 주말까지 시간을 내서 학생들의 연구를 검토했다. 이번 해외연구프로그램을 담당한 박상훈 교사가 “학생들 프로그램 때문에 많은 교수를 만났는데, 버틀러 교수만큼 신경을 많이 써주고 도와주셨던 분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저글링 속 수학
이제 논문 내용을 알아보자. 버틀러 교수와 학생들은 저글링 패턴 속에서 어떤 수학을 찾은 걸까?

저글링이라 하면 공 세 개로 할 때 양손에 하나씩 쥐고, 허공에 한 개를 띄우는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저글링이고, 수학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훨씬 더 많다.

공을 4개 이상 쓰기도 하고, 한 손에 2~3개씩 쥐면서 하는 저글링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공 한 개로 하는 것도 저글링이다. 한 손에 공을 두 개 쥐었을때 하나씩 순차적으로 던질 수도 있고, 한꺼번에 두 개를 던지는 저글링도 있다. 버틀러 교수와 경기과학고 학생들은 모든 저글링에서 공을 던질 때마다 나타나는 패턴의 수를 세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런데 공이 많아질수록 패턴이 복잡했다. 한 번에 공이 몇 개씩 떨어지느냐에 따라서도 경우의 수가 늘어났다. 간단하게 나타낼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카드를 이용해 저글링 패턴의 개수를 세기로 했다. 우선 공이 3개인 경우, 나올 수 있는 모든 패턴을 카드로 표현했다. 다음으로 주기에 따라 나눴다. 주기는 똑같지 않은 패턴이 나오는 횟수를 뜻한다. 만약 주기가 10이라면 공이 10번 이동할 때까지 같은 패턴이 나오지 않고, 11번째부터 다시 첫 번째와 같은 패턴으로 공이 이동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공의 패턴을 모두 찾아 점과 선으로 이뤄진 그래프로 나타냈다.


끝나지 않은 수학자의 시간
이렇게 배열하는 법을 일반화한 공식으로 만들어 프로그래밍했다. 컴퓨터를 이용하자 공의 개수가 많을 때도, 주기가 매우 큰 경우에도 쉽게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었다. 최정윤 군은 “버틀러 교수님이 컴퓨터 프로그램 다루는 법과 논문 쓰는 법까지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연구가 끝나기까지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2월 5일에 출국해 2월 21일에 한국에 귀국했는데,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아카이브에 논문이 실려있었다. 처음 연락했을 때만 해도, 학생들은 버틀러 교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저글링을 연구하는 교수님이라는 정보가 전부였다. 알고 보니 버틀러 교수는 일 년에 논문을 10편씩 쓸 정도로 연구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인터뷰 당시 경기과학고 학생들과 함께 쓴 논문도 계속 수정 중이었다.

세 학생들도 스스로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공부하고 있다. 벌써 작은 수학적 성질도 발견했다. 박상훈 교사는 “버틀러 교수도 학생들이 성실하고 열심히 하니까 한 번이라도 더 봐주려 했고, 기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세 학생이 지금처럼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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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 도움

    박상훈(경기과학고등학교 교사), 최정윤, 김기명, 서규혁(이상 경기과학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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