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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7일 자정이 되자 페이스북 소녀시대 팬페이지에 태연 포스터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포스터에 수상한 메모가 있습니다. 파, 라, 미…, 로 시작하는 짧은 악보입니다. 악보 밑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알파벳도 적혀 있어 팬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습니다.

아! 혹시 태연 노래의 악보 아닐까요? 딩동딩동. 건반을 두들겨 봤지만, 이런 멜로디는 태연 노래에 없습니다. 단순한 악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숨겨놓은 암호일 것 같군요.

팬들의 추측이 난무한 그때, 누군가 암호를 풀었습니다. ‘TAEYEON PERSONA’. 태연의 단독 콘서트 암시였습니다. 실제로 14시간이 지난 오후 2시, 소녀시대 팬페이지에는 새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태연, 두 번째 단독 콘서트 ‘PERSONA’’. 과연 팬들은 어떻게 암호를 푼 걸까요?

지금부터 이 표를 잘 기억해 주세요. 7개의 이탈리아식 음이름 라, 시, 도, 레, 미, 파, 솔은 영어식으로 쓰면 A, B, C, D, E, F, G입니다. 영어식 계이름과 알파벳을 대응시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음계는 7개뿐인데, 알파벳은 26개입니다. A~G 외의 알파벳은 어떻게 할까요? H부터는 다시 라~솔에 대응하면 됩니다. 그럼 ‘라’ 음에 대응하는 알파벳은 A, H, O, V 4개가 됩니다. 다른 알파벳도 마찬가지고요. 태연의 악보 암호는 이 방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한 음계에 중복되는 알파벳이 3~4개씩 되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태연은 힌트를 살짝 줬습니다. 로마 기호 V는 5, X는 10입니다. 그래서 XX는 20이고 XV는 15입니다. 즉 A부터 알파벳을 나열했을 때 20번째, 15번째 알파벳이라는 뜻이에요. 이렇게 풀어낸 암호는 다음과 같군요.
본래 암호는 정보를 감추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잉크를 쓰기도 했고, 모스 부호처럼 다른 기호로 바꿔 정보를 숨기기도 했습니다. 글자나 숫자를 임의로 조합하거나 글자 순서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런 암호는 음악에서 쓰는 암호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다만 음악에서는 부호나 기호 대신에 음이름을 이용했습니다. 태연이 사용한 방법은 과거 프랑스 음악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악보 암호입니다.

1909년 프랑스 음악 저널리스트 쥘 에코쉐빌은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7개 음계에 대응시키는 이른바 ‘프랑스식’ 암호를 제안했습니다. 본래의 음이름인 A부터 G까지 일곱 글자를 가로로 죽 늘어놓은 뒤, 그 아랫줄도 일곱 칸에 맞게 적어나갔습니다. 그 결과 음이름 B에는 알파벳 B, I, P, W가 대응하고, 음이름 D에는 D, K, R, Y가 대응했습니다. 태연의 악보 암호와 완전히 같은 방식입니다.


음악가들의 암호 만들기
앞서 태연은 겹치는 알파벳의 혼동을 막기 위해 로마숫자로 힌트를 줬지요.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조금 다른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일례로 프랑스 작곡가 아르튀르 오네게르는 #(샵)과 ♭(플랫)이라는 임시표를 이용했습니다. 오선지는 옥타브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오른쪽 위 악보처럼 음과 알파벳의 1대 1 대응을 만들었습니다.

이외에도 음악가들이 악보에 의미를 숨기는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곡 제목에서 알파벳 모음만 선택해 음이름에 1대 1로 대응하는 기법도 있습니다. 모음만 떼 내 암호처럼 만들어 작품 안에 숨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악적 기법은 ‘소제토 카바토’라고 하는데, 번역하면 ‘모음 파내기’입니다.

네덜란드의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는 ‘Hercules Dux Ferrarie’라는 곡에 소제토 카바토 기법을 이용했습니다. 곡의 제목에서 모음만 뽑아내, 음이름에 대입하고 기초 선율로 사용한 것이지요. 데 프레는 모음 e, u, a, i 각각을 레, 도, 파, 미에 대응했습니다. 제목에서 차례대로 모음만 파내면, ‘e, u, e, u, e, a, i, e’가 되니, 기초 선율은 ‘레, 도, 레, 도, 레, 파, 미, 레’가 됩니다.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는 곡 모테트에서는 ‘마리아(Maria)’의 모음 ‘a, i, a’만 음이름에 대응해 기초 선율로 사용했습니다.
 

 
바흐의 암호 ‘바흐 동기’
독일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해 곡을 만들기로 유명했습니다. 골드 베르크 변주곡에서는 수학적 규칙성을, 평균율에서는 수학적 비율을 찾아볼 수 있지요. 바흐는 악보에 메시지를 숨기는 기법도 즐겨 이용했습니다. 특히 본인의 이름을 다양한 방법으로 곡에 담았습니다.

‘바흐 동기’가 대표적입니다. 바흐는 이름을 음이름에 대응시켜 ‘동기’를 만들었습니다. 동기는 선율을 구성하는 단위입니다.

바흐 동기를 만든 방법은 프랑스식 음악 암호와 유사합니다. 독일어 철자를 음이름에 대응해 B는 B♭(시♭), A는 A(라), C는 C(도), H는 B(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BACH의 이름으로 만든 동기 ‘B♭, A, C, B’가 곡의 주제 선율이 됩니다. 바흐 동기는 낭만시대 이후 바흐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다른 음악가의 곡에도 쓰이게 됩니다.
바흐 음악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바흐에게 의미 있는 수 14와 41을 곡에 활용했다는 것이지요. 독일 철자 순서대로 수를 차례대로 매기면, 바흐의 이름 BACH 알파벳은 각각 2, 1, 3, 8입니다. 네수를 합하면 14가 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의 약자 J와 S까지 합치면 41이 되고요.

이 두 수는 바흐의 곡에서 재밌는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곡 제목에 노골적으로 14라는 수가 드러나기도 하고, 제목에 있는 글자 수를 세 보면 14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곡에서는 14번째 마디에서는 B(시♭)와 A(라)가 나오고, 41번째 마디에서 C(도)와 H(시)가 나오는데, 합치면 바흐의 이름이 됩니다.


악보에 담긴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은 바흐의 작곡 기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바흐처럼 악보 속에 이름을 숨겨 놓았지요.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 옛 연인이 살던 동네, 그리고 동료 작곡가의 이름도 숨겼습니다. ‘아베크변주곡 Op.9’과 ‘사육제 Op.9’ 에서 찾아봅시다.

엘가가 남긴 수수께끼?
평소 퀴즈와 수수께끼 푸는 취미가 있던 영국의 음악가 에드워드 엘가도 소제토 카바토 기법으로 악보에 이름 숨기기를 즐겼습니다. 모음곡인 수수께끼 변주곡에서는 친구의 이름으로 곡에 제목을 붙여 그 사람을 묘사하는 곡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2010년, 매튜 산타와 찰스 리처드 산타는 이 곡에 또다른 의문을 제기합니다. 엘가가 수수께끼 변주곡에 파이(π)를 숨겨 놓았다는 것이지요. 두 사람은 엘가가 생전에 ‘주제는 흘러가지만 연주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던 사실과 작품 시작 부분에 ‘그 단어’가 등장한다는 힌트에 주목했습니다.

물론 엘가와 언급한 음악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어떻게 숨겨 놓았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음악가가 생전에 밝힌 것도 있지만, 엘가처럼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경우는 우연히 맞아 떨어진 걸 수도 있겠지요. 진짜 음악가의 의도를 찾을 것일 수도 있지만요. 또 아직 찾아내지 못한 비밀도 많이 있을 겁니다. 만약 지금까지 알려드린 악보 암호 만드는 법을 이해했다면 수학동아의 악보 퀴즈도 한번 맞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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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 기타

    [참고 자료]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6’, 매튜 산타와 찰스 리처드 산타의 ‘Solving the Elgar’s eni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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