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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셨나요? 서울대 통계학과 학생 37명은 배우 신민아가 노트북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같은 설문에 응했습니다. 단, 신민아가 배우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조사에 응하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 결과 26명이 ‘전문직 여성이고, 미혼일 것이다’에 투표했습니다. ‘가정주부일 것이다’ 또는 ‘사치스러울 것이다’에는 한 명도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노트북을 든 젊은 여성은 가정주부가 아닐 거라는 선입견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 결과는 확률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선 사건 A를 ‘미혼일 것이다’, 사건 B를 ‘전문직 여성일 것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 ‘A 교집합 B’는 ‘전문직 여성이고, 미혼일 것이다’가 됩니다. 이를 확률로 나타내면 P(A)는 미혼일 확률, P(B)는 전문직 여성일 확률,
P(A∩B)는 전문직 여성이고 미혼일 확률이 되지요. 응답자가 총 37명이니 P(A)는 7/37 이고, P(B)는 4/37 , P(A∩B)는 26/37 입니다.
이제 뭐가 이상한지 보이나요? 바로 전문직이고 미혼일 확률 P(A∩B)=26/37 이 미혼일 확률 P(A)= 7/37 과 전문직 여성일 확률 P(B)= 4/37보다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A 교집합 B는 두 집합 A와 B에 공통으
로 속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P(A∩B)가 P(A)나 P(B)보다 절대 클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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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이 부른 이야기 짓기 오류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요? 전혀 상관없는 두 사건이 서로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심리 때문입니다. 레바논 출신 미국 수학자이자 월스트리트 투자 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이런 경우를 일컬어 ‘이야기 짓기 오류’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오류가 생긴겁니다. 직감을 내세워 관련 없는 두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이 같은 오류는 UC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캐너먼 교수와 아모스 트베르스키 교수의 실험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두 교수는 미래 예측 전문가를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아래 두 상황 중에서 어떤 경우가 발생 확률이 높은지 즉석에서 판단해 보라고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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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2번의 발생 확률이 더 높다고 대답했습니다. 지진을 재난의 원인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사망자가 많을 거라고 여긴 겁니다. 그런데 이는 착각이 낳은 틀린 답입니다. 1번이 더 많은 원인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록적인 폭우나 화산 폭발로 대홍수가 일어날 수도 있을 뿐더러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대홍수 사건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직감은 착각을 잘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착각할 여지가 있는 질문은 해서는 안 되지요.
질문 순서에 따라서도 다른 답!
질문의 순서도 답변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아닐 것 같다고요? 다음 실험을 보세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하워드 슈만과 스탠리 프레서는 두 집단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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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두 집단 모두 마지막으로 제시한 보기를 고르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즉 첫 번째 질문을 들었을 때는 ‘지금처럼 해야 한다’를, 두 번째 질문을 들었을 때는 ‘더 어려워져야 한다’를 많이 선택한 것이지요. 이렇게 가장 최근 접한 정보를 선택하는 걸 인지심리학에서 ‘최신 효과’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기억 용량에는 제한이 있어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정보를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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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최신 효과는 전화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가장 많이 생깁니다. 종이로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보기 항목을 끝까지 읽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앞의 질문을 많이 선택합니다. 미국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한 질문지 작성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모르겠다’를 꼭 넣어야 하는 이유
슈만과 프레서는 질문의 보기가 몇 개인지에 따라서도 설문조사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보기에 ‘모르겠다’, ‘그저 그렇다’, ‘보통이다’와 같은 중간 항목을 넣은 경우와 없는 경우의 결과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보통이다’와 ‘모르겠다’를 찍는 사람들은 이 항목이 없을 때 ‘못했다’, ‘별로다’처럼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선택합니다.
이 같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때는 ‘보통이다’라는 항목을 설문 문항에 넣고,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때는 빼는 일이 실제로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대통령이 나랏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물을 때 조사 기관의 성향에 따라 입맛에 맞게 보기를 만들곤 합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지요. 지금은 중간항목을 반드시 포함한 5점 척도와 3점 척도를 설문조사의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설문조사에 응해 봤을 겁니다. 어떤 독자는 직접 설문조사 질문지를 만들어 반 친구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질문이, 혹은 내가 하고 있는 설문조사의 질문이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는 건 아닌지, 애초에 문제 차제가 잘못된 건 아닌지 따져 본 적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꼼꼼히 따져 설문조사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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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블랙스완>;, <;벌거벗은 통계학>;, 조지 비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