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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죄가 없다 수학 교실을 재밌게!


 
최근 ‘수포자(수학 포기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9월 중 확정되는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을 놓고 수학 학습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쉽게 조금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시민단체, 수학자, 수학 교사 등 어른들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정작 교육 대상자인 학생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말 양이 줄고 수학이 쉬워지면 ‘수포자’가 줄어들까?

수학 흥미도 1위 국가는 수학 후진국!


201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성취도에서 OECD 34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반면 흥미도를 측정하는 두 지표, 내적 동기(재미)와 도구적 동기(유용성)에서는 각각 OECD 국가 중 27위와 32위를 차지했다.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을 잘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정말 배울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그러나 성취도와 흥미도 순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흥미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알바니아,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은 수학 성취도 면에서는 대부분 최하위권인 국가다. 수학에 대한 흥미도가 OECD 국가 중 1위인 멕시코의 경우, 수학 성취도는 34위로 꼴찌였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이들 국가는 대부분 아주 기초적인 수학만 가르치는 ‘수학 후진국’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국가 경쟁력도 많이 뒤처진다”고 말했다. 일본은 2000년대 초 수학 학습량을 줄였다가 이후 PISA의 조사 결과에서 성취도 순위가 떨어지자 2008년 내용을 되돌리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학생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주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핀란드 학생이 수학을 더 싫어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교육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핀란드도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하위권이었다. 수학을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를 나타내는 내적 동기는 우리나라보다도 낮았다. 흥미도와 성취도의 상관관계도 눈여겨봐야 한다. 2012년 PISA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흥미도와 성취도의 상관관계가 가장 높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수학에 대한 흥미가 높은 학생일수록 수학을 잘 한다. 흥미도만 높고 성취도는 떨어지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다른 나라보다 적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가 없는데도 암기식으로 억지로 공부해서 성적이 높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양이 줄고 내용이 쉬워진다고 수학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수학의 재미와 유용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교육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 용어, 일상적인 말로 바꿔야 할까?

연산, 기수, 서수, 기하, 소인수분해, 무리수와 유리수…. 이렇게 수학 개념을 배우면서 사용하는 용어는 일상에서 쓰는 말은 아니다. 이런 수학 용어 때문에 수학을 어려워한다며 용어를 일상적인 말로 바꿔서 학생들이 의미를 쉽게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수학 용어를 일상어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박형주 교수는 “어려운 개념을 가능한 한 쉽게 표현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제한된 어휘만으로 수학의 다양한 개념을 정의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수학 용어가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연수의 비율(분수)로 나타낼 수 있는 수와 그 수의 음수를 포함하는 유리수(有理數; 이치가 있는 수)는 영어의 ‘Rational Number’(합리적인 수)를 직역한 것이다. 수를 세는 개념(자연수)에서 출발해 만들 수 있어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자연수의 비율로 얻어낼 수 없는 수는 합리적이지 않은 수(Irrational Number), 즉 무리수(無理數; 이치가 없는 수)다.

또한 영어에서 비율을 뜻하는 ‘ratio’와 합리적인 것을 뜻하는 ‘rational’은 모두 논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log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연수의 비율로 나타낸다는 것은 곧 자연수를 합리적으로 다룬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유리수의 집합을 비율을 뜻하는 라틴어 ‘quotiens’의 첫 글자인 Q로 표시하기도 한다.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정수인 ‘소수(素數; 근본이 되는 수)’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Prime Number’(주요 수)를 직역한 것이다. 모든 자연수를 소수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소수는 자연수를 구성하는 주요 수라는 뜻이다. 박 교수는 “수학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언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용어가 만들어진 이론적·역사적 배경을 몰라서”라고 말했다.


 

일상어 때문에 더 헷갈려!

수학 개념을 담고 있는 용어를 일상어로 바꾸면 일상어의 원래 의미가 간섭을 일으켜 학생들에게 오히려 잘못된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채꼴’은 부채 모양이라는 일상어다. 수학에서는 원에서 반지름 두 개와 호 하나로 둘러싸인 영역을 뜻한다.

그런데 부채 모양을 떠올리다보면, 부채꼴의 중심각이 180°보다 작은 경우만 떠올리기 쉽다. 중심각이 180°보다 큰 부채꼴은 우리가 흔히 아는 부채와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전문 용어로 수학 개념을 정의해 주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스토리텔링 수학, 진짜 이야기 들려줘야

관련된 이야기를 알면 생소한 용어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다.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자는 취지로 도입한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는 수학 개념을 이야기로 가르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현재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수학 개념의 배경이나 역사를 알려주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도 수학 개념은 잘 남지 않는다. 중학교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홍창섭 경희고 수학 교사는 “수학 교사들이 정해진 단원에 맞춰 이야기를 끼워 넣다 보니 내용이 억지스러워지는 경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소재를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길고 어려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에야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김명환 교수는 “지금처럼 수학 개념을 어렵게 꼬아 놓기만 한 스토리텔링 수학은 오히려 수학 개념의 학습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사는 “어원이나 역사적 배경 등을 잘 설명해 주면 학생들이 어려운 용어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수학 용어를 억지로 줄이는 바람에 학생들이 개념을 익히는 데 방해를 받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수학이 쉬우면 학원 안 다녀도 될까?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치기 때문에 사교육이 성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와 미국(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 일본, 싱가포르, 영국, 독일, 핀란드의 수학과 교육과정을 비교분석한 결과로 지난 5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선진국보다 평균 18.3개 항목(26.9%)을, 중학생들은 17.5개 항목(29.2%)을 더 이르게 배우거나 많이 접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교육과정의 학습량을 모두 항목 수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빨리 배우는 항목 수와 우리나라에만 있는 항목 수를 더하고, 여기서 우리나라가 늦게 배우는 항목 수와 비교 대상 국가에만 있는 항목 수를 뺀 값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소단원 항목을 기준으로 비교 대상 국가의 교육과정에 이 소단원이 있는지, 있다면 몇 학년에 등장하는지를 알아본 수치다. 국가마다 과목과 대단원, 소단원을 다르게 분류한다는 점을 반영하지 못한다. 또 같은 소단원이라도 배우는 양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했다.

김명환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단원을 세세하게 나누는 편”이라며 “교육과정 항목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배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항목 수만 세어서는 정량적인 분석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이공계의 경우 대학교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수학의 일부만을 비교해 우리나라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론을 정해 놓고 조사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난이도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야 하는 게 문제

배워야 하는 양이 줄고 시험이 쉬워진다면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매년 60만 명의 학생들을 줄 세우는 대학 입시가 수학에 큰 비중을 두는 한, 쉬운 내용을 갖고 학생들은 또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발표한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에 따르면 2018년부터는 시험도 어렵게 낼 수 없다. 언뜻 반가운 소식 같지만, 자칫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박 교수는 “난이도가 낮은 시험에서는 조금만 실수해도 등수가 밀려나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소모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수능 수학은 꾸준히 난이도가 낮아졌다. 그래서 점수가 비슷한 학생을 가려내기 위한 만점방지용 문항은 더 어려워졌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주로 이과생이 선택하는 수학 B의 1등급 커트라인이 만점이었다. 1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쉬운 문항을 빨리 풀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 고난도 문제를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암기 위주의 과도한 사교육을 줄이려면 과정과 활동 중심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학 개념의 역사와 배경, 실생활에서 쓰이는 수학, 사회에 영향을 끼친 수학 같은 다양한 내용을 조사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박형주 교수도 “시험문제도 단순히 유형을 암기해서는 풀 수 없는 서술형 문제 위주로 내야 수학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09월 수학동아 정보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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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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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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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창섭 수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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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남 교수
  • 도움

    박경미 교수
  • 도움

    최수일 대표
  • 일러스트

    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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