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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1000년의 역사 앙코르 와트 신화 속으로 떠난 신비한 숫자 여행

매스투어




 
힌두교 신화와 부처의 가르침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신비의 땅 캄보디아에는 10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앙코르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코르 와트를 비롯해 앙코르 톰, 타 프롬, 반테이 스레이 등 유적 1000여 개가 수백 km에 걸쳐 흩어져 있지요.

해마다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이곳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것’이라 할 만큼 웅장하고 섬세합니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 더욱 신비스럽게 보입니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여러 부조★에 얽힌 힌두 신화뿐 아니라 당시 건축 철학에 담긴 수비학★을 이해해야 하지요. 그럼 과거 화려했던 크메르 제국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앙코르 유적지로 숫자 여행을 함께 떠나 볼까요?

[부조
★ 평면에 형상이 입체적으로 나타나도록 조각하는 기법.
수비학★ 우주의 질서나 사물의 본성,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 미래 등을 수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학문.]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의 소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사원이에요. 캄보디아의 공식 언어인 크메르어로 ‘앙코르’는 도시, ‘와트’는 사원, 즉 ‘도시의 사원’이란 뜻이지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인도의 타지마할처럼 앙코르 와트도 왕이 세상을 떠난 뒤 신의 세계로 가기 위한 무덤이었어요. 앙코르 와트를 건축했던 수리야바르만 2세는 자신을 비슈누(세상을 유지하고 보호해주는 힌두의 3대 신 중 하나)라 말하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답니다.

앙코르 와트를 둘러싼 거대한 해자(저수지)는 신화 속 바다를 상징합니다. 사원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면서 미움과 불만, 노여움 같은 나쁜 마음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만 신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원으로 들어서면 세 개의 단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고, 각 단은 회랑(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가장 높은 단에는 탑 다섯 개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의 탑 다섯 개는 신들이 살고 있는 메루산(중앙탑)과 주변의 봉우리를 상징하지요.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이 바로 각각의 단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입니다.
 

‘도시 사원’에서 만난, 세상을 창조하는 수 5

신과 대왕의 세계라 여겼던 최상단의 탑이 다섯 개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또 있습니다. 바로 힌두교의 창조설인데요, 힌두교와 불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베다 경전에 따르면 세상은 공간과 공기, 불, 물, 흙의 다섯 가지 원소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때 첫 번째 원소인 공간은 원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윤회설을 믿었던 힌두교 사람들은 공간을 돌고 도는 원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우리 조상들도 만물의 운행 원리를 다섯 가지 원소 나무, 불, 물, 흙, 쇠로, 기원전 400년경 플라톤도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를 불, 물, 흙, 공기로 설명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캄보디아에서는 지금도 새해가 되면 우주를 구성하는 5가지 원소와 윤회 사상을 상징하는 장식물을 문 앞에 걸어놓는다고 합니다.

신화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인 이 다섯 개의 탑으로 가려면 경사가 70°에 가까운 계단을 기어오르다시피 해야 합니다. 지금은 좀 더 가파른 동쪽이나 북쪽 계단이 아닌, 비교적 완만한 남쪽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중앙탑으로 가는 계단을 이토록 가파르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일반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70°라는 각은 정오각형 별에서 보이는 72°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

궁금함을 뒤로하고 다음 장소인 앙코르 톰으로 가기 전에, 첫 번째 회랑에 있는 부조를 감상하고 갑시다. 앙코르 톰에 있는 숫자의 상징성을 이해하려면 여러 부조 가운데 특히 ‘우유 바다 젓기’ 신화의 내용을 알아야 하거든요.



‘거대한 도시’의 우주를 담은 신성한 수 108

앙코르 톰은 앙코르 시대의 세종대왕이라고 불리는 자야바르만 7세 때 지어졌어요.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이름에 어울리게 10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살았지요. 앙코르 톰 안에는 바이욘과 바푸온, 피미아나카스 같은 사원을 비롯해 왕궁 터와 사신을 접대하던 테라스, 연못 등이 남아 있습니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승리의 문을 포함해 모두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는 남문으로 들어가다 보면 해자를 지나는 다리 양 옆으로 신과 아수라가 뱀의 몸통을 끌어안고 열심히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바로 앙코르 와트 부조에서 보았던 ‘우유 바다 젓기’ 신화입니다. 그런데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신과 오른쪽에 있는 아수라의 수를 세어 보면 그 수가 54개로 같습니다. 신과 아수라의 수를 합하면 108이지요. 108은 힌두교나 불교 심지어는 다른 종교에서도 매우 신성시하는 수입니다. 이렇게 신성한 108명의 신과 아수라가 성문 다섯 개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앙코르 톰은 자야바르만 7세의 바람대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수 있었겠지요?



성문을 지키는 인자한 표정의 4면 불상을 지나면 앙코르 톰의 중심인 바이욘이 나옵니다. 바이욘 사원을 멀리서 바라보면 수많은 돌덩이를 쌓아 올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돌무더기가 부처의 얼굴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상적인 불교 국가를 꿈꿨던 자야바르만 7세는 이 바이욘 사원에 동서남북 네 방향을 바라보는 4면 불상을 54개나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비록 37개만 남아 있지만 세상의 구석구석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놓고 백성들을 지켜보았던 216개의 부처님 얼굴이 앙코르 제국을 자비로움으로 가득 물들였을 거예요.

바이욘을 둘러싼 회랑의 부조도 자세히 감상해 보세요. 바이욘에는 내부와 외부 회랑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외부 회랑의 부조는 당시 사람들의 평범했던 삶을 잘 보여 준답니다. 우리 조상들이 서당에서 공부하던 모습과 비슷한 풍경도 볼 수 있지요.

바이욘 사원 옆에는 바푸온 사원이 있어요. ‘아들을 숨긴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바푸온은 원래 바이욘보다 더 높은 사원이었다고 합니다. 5층의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로 지어진 바푸온 사원도 계단 경사가 약 70°나 되지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정상에 올라서면 다른 사원에서 보지 못한 숫자들을 볼 수 있답니다. 1/1, 1/2, 1/3, 1/4, 1/5, 1/6이나 26/28, 26/29, 26/30, 26/31과 같은 분수지요. 프랑스가 베트남 사이공에 세운 인문과학연구기관인 극동학원에서 이 숫자를 바탕으로 보수를 진행하던 중 내전이 일어났는데, 공사를 중단한 사이 건물 일부가 무너져 버렸다고 합니다. 애써 맞춰놓은 퍼즐이 다시 흩어진 것이지요. 다행히 지금은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지만,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돌덩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중앙의 산’의 시간을 가르는 수 12

야소바르만 1세는 수도를 앙코르 지역으로 옮기면서 최초의 사원인 프놈바깽을 지었어요. ‘중앙의 산’이라는 뜻이지요. 이 주변에 있는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와트는 프놈바깽을 중심으로 지어진 셈이랍니다. 프놈바깽은 정사각형 모양의 단 다섯 개를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사원 자체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요. 하지만 언덕 정상에 지었기 때문에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저 멀리 앙코르 와트의 다섯 탑을 보니, 밀림 속에 숨어 있던 1000년의 세월을 슬쩍 엿보는 기분이 듭니다. 프놈바깽에는 어떤 수가 숨어 있는지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먼저 사원으로 올라가기 전에 지상층을 한번 살펴봅시다. 지금은 부서져 붉은 사암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과거엔 프놈바깽의 지상층에도 탑이 44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네 면을 둘러싼 탑이 44개니까 각 면에는 11개씩 있었지요. 이제 한 단 한 단 올라가며 작은 탑의 개수를 세어봅시다. 그러면 정사각형 모양의 각 단에는 모서리에 있는 네 개의 탑을 포함해 작은 탑 열두 개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탑 열두 개가 다섯 개 단에 걸쳐 있으니까 총 60개의 탑이 서 있는 것이지요.

이때 12라는 수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를 별자리에 따라 나눈 황도 12궁이 됩니다. 결국 1년이 열두 달이라는 뜻인 셈이지요. 최상단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면, 가운데 시바신을 모신 중앙신전을 중심으로 탑 네 개가 정사각형의 모서리 부분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프놈바깽에는 도대체 탑이 몇 개나 있었을까요? 지상층부터 차례로 세어 보면 탑의 수는 모두 108개(지상층 44개 + 5개 단에 60개 + 최상단 4개)가 됩니다. 108이란 수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신기하네요! 게다가 이 108개의 탑은 한 면을 바라볼 때 33개만 보인다고 합니다. 지상층에 11개, 5개의 단에 20개(각 단에 4개씩×5단), 그리고 최상단에 2개가 한 면에서 보이는 것이지요. 이렇게 한 면에 33개의 탑이 보이도록 설계한 이유는 힌두교의 주요 신이 33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수들은 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앙코르의 신화와 건축 속에 숨겨진 ‘수’를 찾는 여행이 재미있었나요? 여행을 하다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앙코르 유적지에 올 때는 더 많이 공부해서 더 큰 감동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앙코르 유적지에는 앙코르 와트나 앙코르 톰, 프놈바깽 외에도 멋진 사원들이 정말 많답니다. 거대 신전의 모델이 된 바꽁 사원이나 스펑나무의 거대한 뿌리에 뒤덮여 생사를 함께 하고 있는 타 프롬, 앙코르 초기 시대의 대표작이자 ‘여인의 사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반테이 스레이 사원도 꼭 들러 보세요.



2015년 06월 수학동아 정보

  • 문태선 수학교사
  • 사진

    문태선 수학교사
  • 기타

    <신들의 도시 앙코르 왓>, <천년의 신화 앙코르 와트를 가다>, <앙코르 와트, 월남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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