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게임으로 하나 된 우리
“쫘르륵~.” 3만 개나 되는 도미노 칩이 물결치듯 넘어간다. 자기가 세운 칩이 무사히 다 넘어가자 탄성을 지르다가도, 다음 팀으로 이어진 칩에 눈길이 간다. 여기저기 환호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모든 학생이 서로 얼싸안으며 감격한다.
경원대 과학영재교육원의 여름과학캠프는 도미노 게임으로 시작한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도미노 칩을 배열할 밑그림을 함께 그린다. 자기 팀만의 독특한 그림을 논의하다 보면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칩을 세우는 과정에서 집중력과 인내심을 키울 수 있다. 한 사람의 실수로 공들여 세운 칩이 와르르 무너지지만 그때마다 서로를 다독이며 다시 세울 힘을 얻는다. 모든 칩을 세우고 도미노 게임을 완수할 때 느끼는 감동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끈끈한 팀워크가 바탕이 되니, 이어지는 과학 10종 경기부터는 일사천리다. 너 나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주어진 과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경기는 한 코스당 15분씩, 총 10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A4 용지를 접어 물에 띄울 때, 가장 많은 추를 실으라는 코스에선 팀마다 다양한 전략을 선보인다. 종이를 물에 띄우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추를 놓는 데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색 읽기’ 코스에서는 머리가 어지럽다. ‘빨강’이라는 글자가 파란색으로 적혀 있는 카드는 ‘파랑’ 이라고 읽어야 한다. 글자가 아니라 색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카드가 빠르게 바뀔 때마다 글자가 아니라 색을 읽어야 한다고 되뇌어 보지만 헷갈리기 십상이다.
칠판에 길게 적힌 숫자 암호를 해독하는 코스도 있다. 휴대전화의 문자판이 열쇠다. 숫자에 해당하는 영문을 찾아 암호를 풀어야 하기에 시간이 빠듯하다. 깃발로 신호를 주고받는 코스에서는 속이 터진다. 시작하기에 앞서 깃발의 움직임마다 신호를 정했지만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12가지의 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과학세계일주’ 도 인기다. 모든 학생에게 과학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여권을 나눠주고, 각 나라를 여행한 뒤 도장을 받게 하는 방식이다. ‘아이랜드’ 에서는 오징어의 눈을 직접 관찰한 뒤 눈이 보이는 원리를 탐구한다. ‘화성나라’ 에서는 발사할 수 있는 로켓을 직접 만들며 로켓의 원리를 배운다.‘찌지직나라’에서는 전기와 자기가 발생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과학캠프 프로그램은 이곳 학생에게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유명하다. 경원대 영재교육원은 지역교육청 영재교육기관이나 학교 영재학급을 위해 캠프를 운영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해외에도 소개해 외국의 영재들이 이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도록 할 계획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두 관점
영재교육원에서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나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일어난 현상을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학자가 됐을 때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바른 가치관은 중요하다. 경원대 영재교육원은 해마다 과학논술대회를 개최해 학생들의 눈과 귀를 열어 준다.
대회에 앞서 과학적이거나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도서를 선정해 추천한다. 이때 하나의 주제에 두 권씩을 선정한다. 같은 이슈를 다루지만 서로 다른 관점으로 쓴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학생은 여러 관점을 동시에 살피며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대회에서는 추천 도서에서 언급한 주제를 문제로 내고, 자신이 정한 주장에 맞춰 1시간 동안 원고를 작성한다. 학생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를 찾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논문을 쓰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한다.
연극으로 배우는 과학
“그래도 지구는 돈다.” 경원대에서 종교재판이 벌어졌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고집하는 교황청을 상대로 태양중심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이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여름캠프에서 열린 심화과정 학생의‘과학연극’ 장면이다. 이 연극에서는 교황 앞에 선 갈릴레이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했다.
과학연극은 과학자의 삶이나 고민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유전법칙이나 전기 발생현상과 같은 과학적 사실도 연극으로 재구성하면 깊게 이해할 수 있다. 학생들은 연극 소재를 고르고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한 뒤, 역할을 나눠 연습한다. 학부모뿐 아니라 각 분야의 지도교수 앞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엄격한 사실과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다. 연극을 하는 과정에서는 오늘날 과학자에게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발표력과 연출력까지 함께 익힐 수 있다.
미니 인터뷰
여러 학문 연결해 차세대 리더 교육
안녕하세요. 경원대 과학영재교육원 박찬웅 원장입니다. 제가 처음 물리학과 교수가 된 뒤, 시대 흐름에 맞고 활용가치가 높은 물리교육을 하려다 보니 컴퓨터를 빼놓을 수 없더군요.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던 때, 경원대에 인터넷을 깔기 위해 앞장섰습니다. 인터넷으로 물리를 배울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해 상도 받았어요. 미국 스탠퍼드대 영재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교육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죠. 이것을 확장하다 보니 물리교육뿐 아니라 과학영재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5년 경원대 과학영재교육원이 개원할 때부터 원장으로 있으면서 ‘창의적인 영재교육’ 을 강조했습니다. 학문의 융합시대에 맞춰 여러 학문을 연결하는 교육도 중요합니다. 소리과학이라고 하면 물리학이지만, 생물학에 적용하면 목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구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동물원에 가서 사자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사람과 사자의 성대를 비교하는 식이지요.
환경이나 건강이 중요한 시대에 부엌에 숨은 과학을 찾아보고, 식품첨가물을 공부한 뒤 직접 분리하는 실험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창의성 위에 사회에 대한 책임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