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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천문학자] 블랙홀 딸기쉐이크

 

어느 날, 막내 아이가 잠들기 전에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잠이 안 와요. 블랙홀이 우리를 삼키면 어떻게 해요?” 저녁에 잠깐 읽은 과학 만화에서 주인공이 블랙홀에서 간신히 탈출한 장면을 보고 무서워졌나 봅니다. 

 

시공간에 구멍이 뚫렸다?

 

 

 

▲NASA
2017년 지구에 있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으로 촬영한 블랙홀 사진. 지구에서 약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블랙홀이다.

 

저는 “우리 주변에 가까운 블랙홀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를 달래주었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잠에 들었죠. 아이에게 블랙홀은 이렇게 무서운 이미지이지만, 저는 블랙홀이라고 하면 20년 전 대학교를 다닐 때가 떠오른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교에서는 봄마다 친구들끼리 딸기를 잔뜩 사서, 잔디밭에 앉아 같이 먹으며 노는 딸기 파티를 했어요. 하루는 물리학과 친구들과 단체로 딸기 파티를 하던 중 영국에서 오신 이안 스튜어트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당시에 흔치 않았던 외국인 교수인 데다가 괴짜로 유명한 분이었어요. 수업 첫 시간부터 다짜고짜 학생들에게 물리학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학생들이 대답할 때까지 30분이 지나도록 끈질기게 기다리기도 했죠.

 

이런 교수님이 딸기 파티에 오시니,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지만 곧 맛있는 딸기를 먹으며 분위기가 조금 편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교수님이 우리에게 물었어요. 

 

“이 딸기를 블랙홀에 던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미국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1차원 시간, 3차원 공간이 합쳐진 4차원 시공간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해요. 시공간에 놓여 있는 물질이나 에너지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시공간은 휘어지거나 크기가 달라질 수도 있거든요. 이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몰리면 시공간이 휘어지다 못해 구멍이 뚫립니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지요. 그런 시공간의 구멍에 딸기가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GIB
블랙홀 근처의 딸기는 빠르게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중심에 도착하기 전에는 길게 늘어지다가 딸기 쉐이크처럼 잘게 부서진다.

 

블랙홀 경계에서 멈춘 딸기

 

 

모든 블랙홀에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있습니다. 가수 윤하의 노래 제목으로도 유명하죠.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 안과 밖의 경계선이에요. 블랙홀의 중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죠.

 

우리가 블랙홀에 딸기를 던진다면, 딸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해 블랙홀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때 블랙홀은 엄청나게 강력한 힘으로 딸기를 끌어당기는데, 딸기 꼭지와 열매 사이에도 각기 다른 크기의 중력이 작용하죠. 이 중력 차이 때문에 딸기는 블랙홀의 중심에 닿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마치 쉐이크처럼 잘게 분해돼요.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번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친 빛은 절대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없어요. 바깥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은 딸기가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는 것이죠. 블랙홀은 여전히 검은 구멍으로만 보이고, 딸기는 점차 느려지면서 사건의 지평선에 한없이 가까워지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요. 딸기에서 나오는 빛도 점점 길어지면서 원래 빨간색인 딸기가 훨씬 더 빨갛게 보이고요.

 

블랙홀은 딸기뿐만 아니라 별과 별 주위의 물질까지도 빨아들이는 천체입니다. 아주 조그만 부피의 블랙홀에도 태양 여러 개와 맞먹는 양의 물질이 담겨 있을 수 있어요. 즐거운 딸기 파티에서 이토록 무시무시한 블랙홀 이야기를 하다니! 그럼에도 저는 스튜어트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블랙홀 안쪽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그 안에는 분명 딸기 쉐이크 말고도 더 신비로운 일이 숨어 있을 것 같거든요. 

 

 

필자소개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우주론과 외계생명 등을 연구하는 천문a학자로,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인 우주거대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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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일 어린이과학동아(15호) 정보

  •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에디터

    조현영
  • 디자인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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