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파고캐고 지질학자!] 운봉산에 쌓인 돌무더기, 사실은 빙하기의 증거!

5화

“교수님, 이 돌덩어리들은 다 뭐죠? 진짜 장관인데요!”
‘파고캐고 지질학자!’를 담당하는 이창욱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저와 이창욱 기자가 강원도 고성군의 운봉산으로 직접 지질 답사를 왔거든요. 
운봉산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돌 더미가 쌓여있어 처음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지요.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돌무더기가 빙하기의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운봉산 암괴류,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운봉산은 해발 285m의 야트막한 산이라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어요. 군부대 초입의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무지막지한 돌덩이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나옵니다. 작으면 농구공, 크면 건물 기둥만 한 돌이 마치 강이 흐르다 멈춘 듯한 모습으로 쌓여있어요. 직접 보면 잠깐 숨을 멈추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죠. 지질학자들은 이런 큰 돌을 ‘암괴’라고 부르고, 암괴가 모여있는 것을 ‘암괴류’라고 해요. 운봉산 사면에만 4~5개의 암괴류가 있어요.

 

 


이 돌들은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만들어진 현무암이에요. 운봉산은 약 700만 년 전, 화강암을 뚫고 올라온 마그마가 만든 화산이에요. 그런데 주변에 용암이 흐른 흔적은 없어요.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되지 않고 얕은 땅속에서 그대로 식었거든요.


이렇게 굳은 마그마가 ‘주상절리’가 되었습니다.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만들어지는 수직 기둥 모양의 구조입니다. 운봉산 암괴류는 주상절리가 부서지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암괴류 여기저기에서 기둥처럼 생긴 돌을 발견할 수 있죠.


기둥 모양 돌들은 암괴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발견됩니다. 산 위쪽에서 부서진 주상절리가 밑으로 내려오면서 더 작게 부서졌기 때문일 거예요. 실제로 산 위에는 주상절리가 온전히 묻혀있기도 해요.


현무암 기둥이 봉처럼 생겨서일까요? 한 전설에 따르면 이 산이 금강산이 되려고 돌을 모아 봉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미 금강산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엉엉 우는 바람에 ‘운봉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운봉산 암괴류, 얼음 미끄럼틀을 타고 쌓였다

 

운봉산의 암괴류는 주상절리가 기계적 풍화●를 받아 부서지며 만들어졌어요. 주상절리의 틈 사이에 물이 들어가서 얼면, 얼음의 부피가 커져서 틈이 벌어져요. 날씨가 바뀌면서 물이 얼었다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 틈이 점점 커지고, 이로 인해 주상절리가 깨져서 돌덩어리가 만들어지죠.


그런데 기계적 풍화만으로 암괴류가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부서진 돌들이 주상절리 주변에 흩어진 게 아니라 누가 옮겨놓은 듯 한 곳에 소복이 쌓였으니까요. 돌들이 먼 거리를 움직여 한 장소에 모인 것은 얼음 덕분입니다. 돌무더기 밑에 얼음이 얼면서 돌들이 얼음을 타고 비탈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졌어요. 마치 얼음 미끄럼틀을 타듯 말이죠. 지질학자들은 이를 ‘암석 빙하’라고 불러요. 운봉산에서는 암괴류가 암석 빙하의 형태로 흘렀다는 증거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어요.

 

 


첫 번째 증거는 암괴류를 따라 길게 나타나는 움푹 꺼진 자국이에요. 이곳은 암석 밑의 얼음이 두꺼워서 암괴가 가장 빠르게 흘렀던 자리예요. 기후가 따뜻해지며 얼음이 녹으면 돌무더기가 내려앉으며 고랑처럼 쑥 들어간 부분이 나타나게 되지요. 또, 암괴류의 아래쪽일수록 주상절리 조각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사실도 증거가 돼요. 주상절리 조각이 얼음을 타고 내려가면서 서로 부딪혀 깨졌을 테니까요.


운봉산의 암석 빙하는 한때 이곳의 기후가 매우 추웠다는 증거입니다. 암석 빙하가 존재하려면 일 년 내내 암괴류 아래에 얼음이 얼어있어야 하거든요.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약 10~14℃인데, 암괴류가 만들어지던 과거 운봉산은 일 년 내내 0℃ 이하인 빙하기였다는 것이죠.


나아가 암괴류는 강원도 설악산, 대구 달성의 비슬산, 광주의 무등산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나타나요. 이러한 사실은 강원도는 물론, 한반도 전체가 빙하기 동안 지금보다 몹시 추웠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암괴류는 그저 돌무더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질학자들에게는 과거 기후의 변화를 알려주는 소중한 지형이랍니다.

 

필자소개

 

 

우경식(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

2021년 10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우경식 지질학 교수
  • 사진

    이창욱 기자 기자
  • 에디터

    이창욱 기자
  • 일러스트

    강서현
  • 디자인

    정해인

🎓️ 진로 추천

  • 지구과학
  • 환경학·환경공학
  • 도시·지역·지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