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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펭귄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구촌 사람들의 신기한 습성을 소개하는 과학 다큐멘터리 ‘펭귄이 본 인간사회’입니다. 오늘 주제는 줄지어 걸어다니는 습성입니다. 사람도 우리 펭귄처럼 떼지어 걸어다니는 습성이 있는데요, 복잡하거나 좁은 곳을 지날 땐 질서 정연하게 줄을 지어 걷는 영리함을 보인답니다. 오늘 찾아가 볼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나라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곳 사람들이 최근 특이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어린이들과 관련이 많은 문제라고 하니 어린 펭귄들은 눈을 크게 뜨고 봐 주세요.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이슈 소개
이제부터는 우측보행


이 곳은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요즘 걸어갈 때 이용하는 길의 방향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어요. 길 왼쪽에 서서 걷던 오랜 습관을 바꿔서 길의 오른쪽으로 걷자는 이야기인데요, 이 나라 사람들은 1921년부터 길 왼쪽에서 걸어왔다고 해요. 자동차는 사람과 반대로 찻길의 오른쪽에 붙어 달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이라는 구호를 배웠다는군요.
그런데 지난 4월 29일, 이런 ‘좌측보행’ 규칙을 길 오른쪽으로 걷는 ‘우측보행’으로 바꾸기로 결정했어요. 좌측보행보다는 우측보행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며 국제적인 기준에도 맞다는 이유였지요. 물론 국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결정된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반대하는 의견이 없다면, 빠르면 올해 안에 우측보행을 새로운 보행 규칙으로 정할 예정이랍니다.

명예기자 설문조사

 


이슈분석
❶ 좌측보행, 어떻게 시작됐을까?


오른쪽, 왼쪽을 별로 구분하지 않는 우리 펭귄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방향을 따지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사람도 나름 생각을 하는 동물이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데 조사를 해 보니 이 나라에서 ‘자동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으로 가는 원칙을 정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라는군요. 100년도 더 전인 1905년, 이 나라가 ‘대한제국’이라고 불릴 때만 해도 사람은 우측보행이 원칙이었다고 해요. 그러다 일제시대인 1921년, 일본과 똑같이 자동차와 사람 모두 좌측통행을 하도록 바꿨지요.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1946년에는 자동차가 다시 우측통행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걷는 방향에 대해서는 따로 정하지 않다가, 1961년에 ‘도로교통법’을 만들 때 그냥 그 전에 하던 것처럼 좌측보행을 원칙으로 정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좌측보행, 이런 점이 문제!

전문가들은 우측보행을 하면 이런 점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해요.
❶ 인도에서 좌측보행을 하면 자동차가 뒤에서 달려와 사고 위험이 높고 무섭다.
❷ 자동차는 우측통행, 횡단보도에서도 우측보행인데 도로 옆 보도에서만 사람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하니 헷갈린다.
❸ 회전문과 에스컬레이터도 대부분 우측보행이다. 왼쪽으로 가다가는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뒤섞이게 돼 불편하다.

여기서 잠깐!

좌측보행은 원래 모든 도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었어요. 골목길처럼 찻길과 인도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지킬 규칙인데, 질서와 안전을 위해 모든 길에 적용됐답니다.

이슈분석
❷우측보행, 과학적으로 따져 보자!


그럼 이 나라 사람들 4700만 명이 갑자기 습관을 바꿀 정도로 우측보행에 장점이 많은 걸까요?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우측보행의 장점을 알아본 연구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결론
부터 말씀 드리면, 우측보행을 하면 좌측보행을 할 때보다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해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 결과가 우측보행 자체가 좌측보행보다 더 좋다는 뜻은 아니에요. 자동차와 사람이 같은 방
향으로 다니기만 하면 좌측보행이든 우측보행이든 지금보다 걷기 편할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1⃞ 통계로 확인된 안전!

인도에서 사람이 좌측보행을 하면, 찻길 가까운 쪽에서는 자동차가 보행자의 왼쪽 뒤에서 달려오기 때문에 보행자는 자동차를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자동차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사고를 당하기 쉽다. 실제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낸 통계를 보면, 뒤에서 오는 차 때문에 당한 사고가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한다.
만약 인도에서 우측보행을 하게 되면, 차도와 가까운 쪽을 걸을 때 자동차가 앞쪽에서 다가오게 되기 때문에 자동차가 혹시 인도를 침범하더라도 미리 보고 피할 수 있다. 사람은 눈으로 자동차를 보고 피하라는 뇌의 명령을 받아 몸을 움직이는 데 최소 0.1초가 걸린다. 0.1초면 시속 60㎞로 달리는 자동차가 1.7m를 달려오는 시간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멀리서 차를 발견하면 그만큼 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명예기자 설문조사
 

2⃞ 편할 때 나오는α파!

좌측보행과 우측보행 중 자신도 모르게 더 편하게 느끼는 방향이 있을까? 이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교통연구원과 한양대학교 인체공학연구센터에서는 사람에게 자동차와 사람이 좌측, 또는 우측통행하는 사진을 순서 없이 보여 주며 뇌파의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자동차가 우측통행할 때는 사람도 우측보행을, 반대로 자동차가 좌측통행할 때는 사람도 좌측보행을 해야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에서 알파( α)파가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알파파는 마음이 편안할 때 나오는 뇌파로, 자동차가 달리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걸을 때 더 안정적인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시설물은 우측보행을 좋아해~

회전문이나 에스컬레이터 등의 시설물도 우측보행이 유리하다. 회전문은 거의 시계 반대방향, 즉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시설물 앞에서 좌측보행을 하면 회전문에서 나오는 사람과 부딪힐 확률이 높고 동선도 서로 엉켜 속도도 느려진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 오른쪽으로 피하기 때문에 순간 좌측보행이 깨지면서 혼란이 더 커진다.
실제로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를 해 본 결과, 우측보행을 하면 걷는 속도는 평균 1.2배 빨라졌고 길을 가다 서로 부딪히는 횟수는 2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전문 앞에서 우측보행을 한 모습(위)과 하지 않은

"이번 실험은 사람과 자동차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때보다 같은 방향으로 갈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을 뿐, 우측보
행 자체가 좌측보행보다 더 좋다는 증거는 아니랍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는 사람의 보행 방향을 바꾸는 게 혼란이 적기 때문에 우측보행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거예요."
김정룡(한양대학교 교수. 인체공학연구센터장)

이슈분석
❸우측보행, 무조건 좋을까?


여러 가지 연구 결과 사람이 걷는 방향과 자동차가 가는 방향이 서로 같을 때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낀다는 사실이 증명됐어요. 사람과 자동차가 같은 방향으로 가려면 자동차를 좌측통행으로 바꾸거나 사람을 우측보행으로 바꿔야 하는데, 자동차의 통행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는 사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좀더 쉽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었지요. 그래서 우측보행을 하자는 주장이 나온 거예요.
하지만 이런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에요. 걷는 방향을 자동차와 같은 오른쪽으로 바꿔서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조심해야 할 점도 있거든요.

1⃞ 모두를 위한 시설물인데 강제로 바꾸는 것은 위험해!

짐을 든 사람에게 장애물을 피하게 하는 실험을 해 보면 70%의 사람이 오른쪽으로 피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다섯 배 가까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체공학자들에 따르면 이 말은 근거가 약하다. 자라는 동안 굳어진 습관이나 학습 때문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른손잡이가 많다는 이유로 우측보행을 주장할 수는 없다. 더구나 왼손잡이 등 사회적으로 수가 적은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최근 추세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2⃞ 좌측통행이 불편해? 바꾸는 건 더 불편해!

좌측보행을 우측보행으로 바꾸는 것은 오래된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꿔야 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이 따른다. 따라서 좌측보행이 가져오는 작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큰 불편함을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보행 습관을 바꿀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한 인체공학적인 연구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보너스 이슈
자동차는 왜 우측통행이 많을까?


사람이 걷는 방향도 나라별로 다르지만, 자동차가 가는 방향도 나라별로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자동차가 길 오른쪽으로 달리지만, 영국이나 호주, 일본은 왼쪽으로 달린다. 이것 역시 어떤 과학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연히 선택된 결과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에 마차를 몰던 습관이 그대로 굳어져 지금의 자동차 이동 방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과학과 기술이 꼭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일상 생활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데, 자동차의 이동 방향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빨간 색)와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파란색)의 분포도.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가 더 많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신기한 습성을 재미있게 보셨나요? 어린이들은 혼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편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한 과정이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문 하나! 사람들은 왜 왼쪽, 오른쪽을 구분해서 이렇게 머리 아픈 일을 겪을까요?
2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을 분석해 보면 당시에 이미 오른손잡이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이것은 사람이 진화하면서 정교한 동작과 언어를 담당하는 왼쪽 뇌가 더 발달했기 때문이에요. 덩달아 왼쪽 뇌의 지배를 받는 오른손도 발달해 오른손잡이가 생겨난 거지요. 즉,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오른쪽, 왼쪽을 구분하게 된 거랍니다.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에요. 오늘도 바다에 다이빙하거나 빙판 미끄럼을 타실 분들은 다른 펭귄과 접촉사고를 내지 않도록 유의해 주세요. 그러자 면 한 방향으로 줄서서 이동하는 것, 잊지 말아야겠죠?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2009년 11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유정복 연구위원
  • 도움

    김정룡 교수
  • 도움

    배현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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