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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무실_공간 혁명은 사무실에서 시작된다

무한대로 확장되는 똑똑한 사무실

컴퓨팅의 보편화를 뜻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은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고 다니며 수시로 이용하는 휴대폰은 초창기의 대형 컴퓨터를 능가하는 계산 능력과 네트워킹 파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휴대폰을 부담스러운 컴퓨터로 생각하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게임기, 중고등학생들이 가슴에 품고 다니는 MP3 플레이어, 대학생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PDA와 디지털 카메라 역시 고도의 컴퓨팅 파워를 내장한 기기들이다. 멀리 떨어진 출장지에서 집에 홀로 있는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인터넷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첨단 개밥그릇이 등장했다는 점은 이미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어느 시대에나 쿠데타는 도시 한가운데서 이뤄지듯, 정보화 혁명은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무실에서 시작된다. 정보기기가 집결한 곳이 사무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화 혁명에 대한 전문가의 예상이 빗나가는 곳 역시 사무실이다. 정보화 혁명으로 인해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종이 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의 사무실 역시 기대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사무실의 시대가 어떻게 개막될지는 짐작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던 마크 와이저가 제기한 기본 명제들 속에서 미래 사무실의 모습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구시대 유물된 컴퓨터
 

미래에는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이란 말이 사라지게 된다. 사진은 책상 위에 펼처진 컴퓨터.


현재의 데스크탑 컴퓨터는 사무실의 가장 중요한 책상 위의 거의 모든 면적을 차지하고 덩그러니 앉아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사무실에서는 이런 데스크탑 컴퓨터가 사라질 것이다.

20세기 전반의 사무실에는 2가지 필수적인 기계가 있었다. 계산기능을 담당하는 주판과 문서기능을 담당하는 타이프라이터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수십대의 타이프라이터가 힘찬 소음을 내는 곳이 에너지가 넘치는 활력있는 사무실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주판과 타이프라이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마찬가지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에는 책상 위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데스크탑 컴퓨터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시계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보편적으로 온 천지에 컴퓨팅 기능과 통신 기능을 펼쳐 놓는 것, 그로 인해 컴퓨팅과 통신을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지만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는 것, 사람이 컴퓨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널리 흩어져 있는 컴퓨터들이 사람에게 스스로를 맞추는 것, 이것이 바로 마크 와이저가 꿈꾸던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의 사무실이다.

마크 와이저의 두번째 명제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물리적인 사물과 컴퓨팅의 연계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데스크탑 컴퓨터가 사라지는 대신 거의 모든 물리적 기기에 컴퓨터가 심어진다. 휴대폰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고, 새로운 뉴스와 증권가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거대한 컴퓨터와 인터넷 장치를 갖춘 원격회의실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카메라가 부착된 휴대폰은 어느 곳에서나 원격회의를 가능하게 한다.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명함을 주고받는 대신 자신의 디지털 명함에 상대방의 명함 정보를 수신받아 저장한다. 일과가 끝나고 나서 명함을 검색하여 오늘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리한다. 이런 일을 하는데 더이상 육중한 컴퓨터는 필요없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거대한 컴퓨터는 사라지고 일상의 사물들이 이를 대체한다.

물리적 사물과 컴퓨팅 파워를 연결시킨 대표적인 시도는 독일의 TecO(Telecooperation Office)사가 개발한 ‘미디어 컵’(MediaCup)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컵은 ‘스마트 잇츠’(Smart It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된 기기다. 스마트 잇이란 일상적인 사물들에 내장시키기 위해 만든 초소형 디바이스다. 스마트 잇츠는 초소형 디바이스이지만 여기에는 컴퓨팅 기능은 물론이고 무선 네트워크 기능도 들어있다. 문자 그대로 스마트 잇을 내장한 사물들(Its)은 스마트(smart)해진다. 미디어 컵은 일상적인 머그 컵에 ‘스마트 잇츠’ 기기를 내장한 제품이다.

사무실 안에서 직원들은 각자 자신의 미디어 컵을 들고 다닌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책상에 컵을 놓아 두고 일할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다른 직원의 책상에 가서 노닥거릴 수도 있으며, 또다른 사람들은 회의실에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토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직원들의 움직임이 미디어 컵에 의해 포착된다. 직원들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가 일목요연하게 포착되고 기록되고 정리된다.

그러나 미디어 컵은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 위해 제작됐다. 회의실 문을 열어보지 않더라도 회의실 안에 누가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긴급하게 필요한 직원이 지금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미디어 컵은 일상적인 사물인 머그컵에 칩을 내장시킴으로써 사무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짐작하게 해주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컴퓨팅의 장소가 보편적인 공간과 사물로 확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정보화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사무실 책상의 한 공간을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는 데스크탑 컴퓨터에 계산 기능, 문서작성 기능, 통신 기능 등이 집적돼 있다. 현대인은 뭔가 작업을 하려면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고, 사무실에 놓여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한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업무는 컴퓨터를 통해 이뤄진다.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확산된 인터넷의 보급은 업무 뿐만 아니라 오락까지도 컴퓨터를 통하게 만들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PC방에 놓여있는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서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은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정보화가 가져온 이런 모습을 변화시킨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컴퓨터에 집적된 기능들을 물리 공간과 사물들에게 이양시키고자 한다. 사무실과 공부방의 한 공간을 독재자처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컴퓨터로부터 지적인 기능들을 환수해 물리적인 공간과 사물들에게 넘긴다.
 

사무실 안의 통신기기 미디어 컵.


자신의 존재 알리는 서류철

물리적인 공간과 사물들을 지능화시키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공간에 지능을 펼침으로써 기존의 바보 공간(dumb space)을 지능 공간(smart space)으로 탈바꿈시켜준다. 그렇기 때문에 유비쿼터스 시대의 사무실은 똑똑한 사무실(smart office)로 불린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인간 중심의 컴퓨팅을 의미한다. 기술을 위한 기술, 첨단성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아는 기술을 지향한다.

마크 와이저가 주장했듯이, 고도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보다도 자기 자신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아는 컴퓨터가 더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대한 지식과 엄청난 처리용량을 지닌 인공지능 컴퓨터일지라도 사용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에는 서가에 꽂혀있는 백과사전과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처리용량이 작은 칩이라고 할지라도 사용자가 좋아하는 커피향을 알고 있는 머그컵에 식재된 칩이 훨씬 큰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물리적인 사물에 칩이 내장됨으로써 사무실 안에서 물건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소란피우는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자신의 미디어 컵을 화장실에 놓고 왔다는 사실은 언제나 검색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검색을 의미한다. 즉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에는 공간 검색 서비스(Surfing Space Service, SSS)가 가능해지고 보편화될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보고했던 서류들이 어느 캐비넷에 있는지, 반쯤 읽다만 책이 서가의 어느 곳에 굴러다니고 있는지, 콘크리트 못을 박을 드릴이 사무실의 어느 구석에 있는지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처럼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의 사무실은 컴퓨터가 주인인 사무실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인인 사무실로 바뀔 것이다. 한때 주판을 잘 놓는 사람, 타이프를 잘 치는 사람이 사무실의 주인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이 사무실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에는 주변적인 업무가 아니라 본연의 업무 그 자체를 잘 처리하는 사람이 주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고도의 컴퓨팅을 약속하지 않는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본연의 업무가 제자리를 차지하는 업무 중심적인 사무실, 인간 중심적인 사무실을 약속한다. 컴퓨팅 기술이 주변으로 밀려가고, 본연의 업무가 중심으로 등장하는 사무실이야말로 마크 와이저가 제안했던 유비쿼터스 시대의 사무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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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동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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