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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시사기획] 황우석의 22년, 최고과학기술인상 철회가 남긴 질문

    ▲Getty Images, GIB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이 철회됐다. 2026년 7월 15일, 정부는 황 전 교수의 수상 취소를 재가했다. 200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지 22년 만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황우석’이 오르내렸고, 언론은 일제히 ‘사필귀정’이라는 표현을 내걸었다. 22년이나 걸린 이 취소가 한국 과학계의 오래된 숙제를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22년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들은 모두 같은 지점에서 질문을 다시 던졌다. 22년이 정말 늦은 걸까. 과학동아가 이들을 만나 직접 묻고 들었다.

     

    우상에서 몰락까지, 22년

     

    2004년 2월
    황우석 교수, 인간 배아줄기세포 논문 발표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추출 성공 소식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2004년 4월
    황우석 교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황우석 전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고건 당시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200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2006년 1월
    사이언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철회 결정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황우석 전 교수가 2004년 및 2005년에 연이어 게재한 줄기세포 추출 관련 논문이 조작된 사실을 인지한 뒤 이를 즉각 철회했다.

     

    2006년 4월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교수직 파면 확정

    2005년 11월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 윤리 문제가불거졌고, 12월에는 앞선 논문의 조작 여부까지 드러나며 서울대는 이듬해 황 전 교수를 직에서 파면했다.

     

    2014년 2월
    대법원, 황우석 전 교수에게 실형 선고

    2006년 5월 기소된 황우석 전 교수는 8년의 형사재판 끝에 2014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26년 7월
    황우석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취소

    2004년 수여 이후 22년 만에 수상이 공식 취소됐다. 2020년, 정부는 취소를 추진했으나 법적 근거가 부족했고, 이를 보완해 이재명 대통령이 재가했다.

     

    2005년 11월, 하나의 프로그램이 전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황우석 당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중 난자 체취 과정에서 일어난 비윤리적 사실을 사회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이 폭로한 것이다. 이후 황 전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세포 사진이 조작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고, 더 나아가 줄기세포는 태초부터 아예 없었던 허상으로 드러났다.


    여파는 적잖았다. 이 사건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황 전 교수는 순식간에 장관급 대우에서 사기꾼으로 몰락했다. 황 전 교수의 조작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연구 윤리를 돌아보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황 전 교수의 조작 사건에 관한 전말이다.


    ‘황우석 사건’은 한국의 후진적 과학 체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여태 인식돼왔다. 한국 과학계에는 연구 윤리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고, 그 덕에 부정을 걸러낼 자정 작용을 하지 못해 거대한 사기극에 일조했으며, 후속 조치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이후 22년 지난 지금, 당시를 돌아본 연구자들은 이 세 가지 논점에 관해 조금 다른 시각을 전했다.

     

    ▲Science
    2005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줄기세포 2번과 3번 사진. 이후 조사에서 논문 속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2006년 사이언스는 해당 논문을 게재 철회했다.

     

    논점 1
    과학계, 논문 조작 제대로 대응 못했다?

     

    먼저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의 대응에 관한 사실관계를 다시 짚을 필요가 있다. 황 전 교수 사건에 대한 실질적 조치는 신속했다. 2005년 12월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논문 조작을 발표한 뒤 사이언스는 2006년 1월 두 편의 논문을 공식 취소했다. 황 전 교수는 2006년 4월 파면됐고 정부 역시 연구비와 지원금 잔액을 환수했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황우석 사건에 대한 처리는 그 당시로는 비교적 깔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황우석 사건이 일어난 직후 과학계 전반의 연구 윤리 규정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든 인물이다.


    심지어 2007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1회 세계연구윤리학회에서는 한국의 대응이 모범 사례로 거론됐다. 박 위원은 “황우석 교수의 사건을 계기로 국제적인 연구윤리학회가 2007년 처음으로 열렸다”며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서울대 교수들이 성명서를 내고 자체 조사로 진실을 밝혀낸 데 대해, 참석자들이 ‘한국 과학계의 자정 능력을 인정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생명윤리학자이자 연구 윤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레스닉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원에게 묻자 그 역시 “초기의 법적, 제도적 대응이 신속했다”는 의견을 전했다. 황 전 교수 이전에도 1998년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논문을 쓴 영국의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 등 거대한 연구 조작 사건은 존재해왔다. 웨이크필드 사건의 경우 논문 철회까지 7년이란 기간이 걸렸고, 이후 ‘백신 음모론’이라는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체돼 있었던 것은 황 전 교수가 2004년 받은 최고과학기술인상이라는 ‘상징’이었다. 왜 이제서야 수상이 취소됐을까. 원인은 단순하다. 2006년 당시에는 국가 포상을 취소할 근거 규정 자체가 없었다. 정부는 2020년에야 규정을 마련해 취소를 결정했지만, 황우석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의견 제출 기회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며 절차상 하자를 인정했고 2023년 4월 대법원에서 정부 패소가 확정됐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국가가 수여한 상을 취소한 해외 사례가 적다는 점이다. 박 위원은 “노벨상도 수상자가 후에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있었지만, 수상 자체가 취소된 적은 없다”며 “이번 황우석 수상 취소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영역”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번 취소는 전례가 드문 제도를 22년에 걸쳐서라도 관철시킨 이례적인 사례로 다시 읽을 수 있다.

     

    ▲동아 DB
    2005년 11월,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 과정 중 난자를 연구원 등에게 착취했다는 의혹을 받자 이를 해명하고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논점 2
    조작 공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았다?

     

    반면 정작 22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문제가 있다. 황 전 교수 개인은 신속히 처벌받았지만, 그를 둘러싼 공동연구자와 조력자들의 책임은 상당 부분 흐지부지돼 한국 과학계 면면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위원이 짚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작된 논문의 제2 저자였던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당시 별다른 처벌 없이 교수직을 유지했다. 그는 훗날 연구비 부당 사용 및 인건비 유용 등의 비위로 결국 해임됐지만, 황우석 사건 자체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25년 ‘황우석 전 교수의 부정과 과학적 실천’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고원태 서울대 학부대 교수의 입에서는 또 다른 이름이 나왔다. 훗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된 박기영 당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와 무관한 생리학 전공자였음에도 2004년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고 교수는 “박 전 보좌관이 황 전 교수에게 연구비를 배정해 준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적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왜 공범 추궁은 이렇게 부실했을까. 박 연구위원은 여기서 법적 한계를 지적했다.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만, 대학의 조사위원회는 그런 조사 권한 자체가 없습니다. 누가 얼마나 알았는지 구체적으로 가려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처벌했다가는, 정말 몰랐던 사람까지 억울하게 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소극적이었던 거죠.” 결국 책임질 권한과 조사할 권한 사이의 괴리가, 정점에 있던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집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동아 DB
    1 2006년, 황 전 교수의 지지자들이 지지 집회를 여는 등 황우석 사건으로 국민들의 국론 분열마저 일어났다.

     

     

    ▲과학동아
    2 황 전 교수는 2004년 3월 과학동아 표지를 장식하는 등 당대의 스타였으나, 이런 맹목적 지지가 연구 부정을 가리는 데 한몫했다는 과학계의 비판 의식이 존재한다.

     

    논점 3
    황우석 사건 이후로 연구 윤리가 생겼다?

     

    세 번째 재구성이 필요한 지점은 “황우석 사건 이전에는 한국 과학계에 연구 윤리가 없었고, 사건 이후 비로소 제도화됐다”는 서사다. 고 교수의 논문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황 전 교수 사건 이전에도 서울대 연구윤리위원회(IRB)는 이미 존재했다. IRB는 의학이나 생물학 등 인간이 참가하는 연구에서 인권 침해 등의 윤리 위반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조직이다. 2000년대 초 당시 서울대 수의대에도 IRB가 설치돼 있었고, 심지어 황 전 교수가 그 구성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고 교수는 “황우석 사건 이전에는 윤리가 없었고 이후에 생겼다고 보는 시각은 비대칭적인 접근”이라며 “황우석 연구팀은 오히려 윤리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의 연구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고 교수의 논문 ‘황우석의 과학적 실천과 연구윤리’는 이를 과학적 사실과 윤리적 규범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 나중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뒤섞인 채 함께 만들어진다는 관점에서 반박한다. 이 틀에서 보면 황 전 교수 사건의 핵심은 ‘윤리의 부재’가 아니라, 난치병 치료라는 사회적 명분과 국가적 성과를 향한 정치적 압력이 뒤엉킨 상태에서 연구가 설계되고 정당화됐다는 데 있다. 고 교수는 “황 전 교수는 한국 연구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아무도 못하는 연구를 세계 최초로 해내고 그걸 사이언스에 싣는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던 인물”이라고 정리했다.


    이 관점은 규정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유사 사건을 막을 수 없다는 함의로 이어진다. 2005년 황 전 교수 사건 이전부터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윤리연구팀 소속으로 황 전 교수 인근에서 일했던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생명윤리정책협동과정 교수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연구 윤리를 규정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며 “규정은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내린 잠정적 결론일 뿐이고, 신진 연구 분야에서는 오히려 제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아 DB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전폭 지지할 만큼 전 국가적 지지를 받으며, 황 전 교수를 ‘신화적’ 인물로 만들었다.

     

    황 전 교수가 남긴 교훈, 규정을 뛰어넘는 문화

     

    세 사람의 진단을 종합하면, 국가 포상 제도의 절차를 정비하는 것만으로 이 사건의 교훈이 완결되지는 않는다. 박 연구위원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논문 한 편에 부정행위가 조용히 끼워 넣어지는 것, 그리고 그런 사례들이 누적되며 연구 생태계 전체를 잠식하는 상황에 되레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년 전 황 전 교수 사건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서 벌어졌기에 오히려 적발이 쉬웠다. 지금 한국 과학계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부정행위는, 화려한 조명 없이 조용히 이뤄지는 쪽일지 모른다는 경고다.


    이들은 그 답을 제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교육에서 찾고 있었다. 고 교수는 서울대에서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연구윤리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 강의가 선택이 아닌 필수 이수 과목이 된 것 자체가 황 전 교수의 영향이라고 했다. “황우석이라는 인물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분명 큽니다. 바로 연구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단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연구를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죠.”


    그는 이 질문이 대학원 신입생에게도, 20년 차 베테랑 교수에게도 생애 주기마다 반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정을 만드는 일은 22년이 걸렸어도 언젠가 끝이 난다. 반면 그 규정을 사람들의 관심과 습관에 붙이는 일에는, 애초에 끝이라는 게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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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9월 과학동아 정보

    • 박동현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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