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년 된 불상, 661년 된 단청.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박물관에서, 사찰에서 곱게 나이 든 문화유산을 본다. 그 뒤에는 문화유산이 보낸 춘추를 존중하는 조심스런 손길이 있다. 보존과학은 문화유산이 세월과 자연, 사람에 의해 손상되지 않도록 방지하고, 원형을 유지하는 학문 분야를 말한다. 보존과학자의 연구실은 병원과 같다. 환자는 불상이나 단청, 불화, 그리고 건물까지 다양하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찾아온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현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오래된 것을 이어 나가는 새 기술, 그리고 새 기술로 세월의 자락을 붙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사선 조사실을 찾은 검진자의 정체는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지장암목조불상). 1622년 당시 재위 중이던 광해군의 정비인 장열왕비가 조성했다고,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쓰여 있다. 보존과학자들은 올해로 404세를 맞은 이 검진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내부를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직경이 1.4m나 되는 원통형 CT(Computed Tomography·컴퓨터단층촬영)를 통해서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는 7월 14일, 새로운 장비로 지장암목조불상을 진단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CT로 유물을 찍으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왔다.
부처님이 원통형
CT 장비에 누운 이유
7월 1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높이 1.2m의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지장암목조불상)이 좌대에 실려 원통형 CT(Computed Tomography·컴퓨터단층촬영) 장비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스캐너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금빛 불상을 감싸고 저속으로 회전하는 동안, 모니터에는 나무 표면 아래 감춰진 형상이 한 겹씩 쌓여 올라간다. 옷 주름 사이 빈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자리 잡은 낯선 실루엣까지. 불상의 배를 가르지 않고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복장(불상 등의 내부 공간에 봉안된 물품)의 흔적이다. 이달 새로 도입된 세계 최대 규모의 원통형 CT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형 목조불상의 속을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불상이 몸을 누인 이 장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한 여러 비파괴 진단 장비 중 가장 최근에 들어온 막내다. 2017년 도입된 기존 CT가 촬영 가능한 크기는 가로 80cm에 세로 110cm가 최대. “직경 1.4m의 원통형 장비는 9년간 이어진 크기의 한계를 깨뜨렸죠. 그 첫 주인공이 지장암목조불상이었고요.” 8월 11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양석진 학예연구사가 거대한 차폐막을 열며 안내했다.
이내 양 학예연구사가 짚은 모니터 화면을 보자 불상의 속내가 훤히 드러났다. CT는 물체를 X선에 360도로 투과시킨 후 프로그램으로 촬영 데이터를 재구성해 물체 내부의 단면 및 3차원 영상을 얻는 정밀 영상 진단이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의사는 곧장 손대지 않는다. 먼저 영상의학과로 보내 첨단 장치들로 몸속을 비춰본다. 어디가 부상당했는지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담당 분과의 의사가 배정되고, 이내 치료가 시작된다. 수백 년째 풍파를 겪어온 불상과 유물을 마주하는 보존과학자들도 다르지 않다. 손상 부위를 만지거나 유물을 열어보기 전에, 겉을 깎지도 속을 가르지도 않고 안을 읽는 기술부터 동원한다.
불상은 조성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배 안에 여러 물건을 넣는 ‘복장’ 의식을 진행한다. 경전이나 부처님의 진리 소리를 불어넣는다는 후령통 등이 들어간다. 꺼내려고 불상을 건드리면 손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에 사람 장기를 찍던 CT를 문화유산에도 활용했던 것이다.
다종다양 문화유산 맞춘
각양각색 비파괴 장비
보존연구실에는 새로 들어온 CT 장비를 포함해 5대의 분석 장비가 있다. 양 학예연구사는 “모두 없어선 안 될 존재”라 설명했다. “X선은 에너지가 크면 밀도가 높은 물질도 투과할 수 있지만, 그만큼 초점 크기가 커져서 해상도가 떨어져요. 반대로 에너지가 작으면 해상도는 좋아지는데 밀도 높은 물질로 만들거나 두꺼운 유물은 아예 투과를 못 하죠.” 크고 무거운 불상, 작고 정교한 장신구는 서로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 중 ‘나노 CT’는 길이 15cm, 무게 20kg 이하의 작은 유물을 마이크로미터(μm·100만분의 1m) 단위로 들여다보는 데 쓰인다. 특히 진주나 종이처럼 미세한 구조가 중요한 유물이 주 검진 대상이다. 실제로 이 장비로 촬영한 진주 한 알에서는 5~6mm 두께 안에 겹겹이 쌓인 층상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옆에 위치한 60kV(킬로볼트·1000V)급 ‘연 X선(soft x-ray)’ 장비는 불화나 탱화처럼 평면이지만 폭이 넓은 유물에 투입된다. 필름을 대신하는 영상판(CR)을 바닥에 깔고, 엑스선원을 X·Y·Z축으로 움직여 가며 구역별로 촬영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300kV급의 ‘강 X선(hard x-ray)’ 장비와 600kV 및 225kV를 각각 발하는 듀얼 CT 장비가 어울리고 있었다.
문화유산은 거대한 건축물과 불상부터 미소한 보석, 얇은 종이까지 재질과 크기, 물성이 끝없이 다종다양하다. 유물의 크기와 밀도, 궁금한 정보의 종류에 맞는 X선의 에너지와 해상도를 저울질하는 유물의 영상의학, ‘비파괴 진단’부터 시작하는 이유다.
불상 ‘내외부’ 꿰뚫는 비파괴 진단
불상 ‘외부’를 본뜬 3D 스캐닝
3D 스캐닝은 사물에 레이저나 빛을 쏴 표면의 모양과 거리 정보를 읽어 3차원으로 만드는 기술로, 문화유산 연구에서도 활발히 사용된다. 아래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왼쪽)을 본뜬 3D 스캔 이미지(오른쪽)이며, 이를 통해 불상이 만들어질 때 어떤 부분이 어떻게 접합됐는지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불상의 입체 설계도 격인 ‘결구도’를 그릴 수 있다.
CT로 ‘내부’를 들여다본 불상
CT를 활용하면 이제 불상의 내부를 면밀히 살필 수 있다. CT는 360도로 회전하며 촬영하기 때문에, 정면을 비롯한 측면과 후면 등 전방위의 내부 구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래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해부하기 전, CT 장비를 통해 내부의 복장물 종류과 위치를 선제적으로 파악한 이미지다.
원자도 꿰뚫는 비파괴의 눈
위조도 잡아낸다
비파괴 진단이 다루는 대상은 유물의 형태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단이 원자 단위까지 내려가면, 구조는 물론 위조 유무까지 걸러낸다. 대표적인 진단이 중성자 영상 촬영 기법이다. 엄영랑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원자의 힘을 쓰면 가짜 문화유산도 잡아낸다”며 2025년 조선시대 동전인 상평통보 위조품을 중성자 촬영 기법으로 가려냈던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공동연구팀은 조선시대 19세기 동전으로 추정되는 상평통보와 2015년 서울 인사동의 유물보관소에서 입수한 상평통보 진단에 나섰어요. 중성자로 원자 단위까지 분석하니, 수백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부식된 진품과 인위적으로 녹을 입힌 위조품의 내부 기공 구조가 마이크로미터 단위에서 뚜렷하게 갈렸죠.” 그 결과는 2025년 4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서 발표됐다. doi: 10.1038/s41598-025-99235-x
이처럼 중성자 분석법은 원자로나 입자 가속기에서 발생시킨 중성자 빔을 시료에 통과시켜 내부 구조를 비파괴적으로 관찰한다. 금속은 잘 투과하지만 물이나 유기물 같은 가벼운 원소는 잘 차단하는 중성자의 성질을 이용해 금속 부품 내부의 수분이나 문화유산 속 유물을 선명하게 촬영한다. 덕분에 청동이나 철로 만든 유물 안에 숨어있는 목재, 직물, 종이, 수분까지도 금속을 그대로 둔 채 확인할 수 있다.
“X선으로는 겉면 금속에 가려 깜깜하게만 보이던 영역에서, 중성자 단층 촬영을 통해 두꺼운 외피 속 한지의 결과 미세한 섬유, 흑미 같은 씨앗의 배치가 3차원으로 선명하게 피어났던 그 순간의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김태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실제 유물 대신 구리 사리함 모사품에 한지로 감싼 좌불상과 그 안에 든 작은 동자불, 쌀을 넣어 하나로(HANARO) 원자로에서 촬영했던 실증 연구를 이렇게 회고했다.
흩어진 비파괴 진단의
데이터를 잇다
한 번의 비파괴 촬영은 곧 방대한 데이터를 남긴다. 유물이나 X선이 360도로 회전하며 얻은 수천 장의 단면 이미지를 층층이 쌓아 재구성(reconstruction)하면, 연구자는 이 데이터를 원하는 방향으로 자르거나 회전시켜 특정 부위만 확대해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촬영 화질에 따라 한 유물에서만 적게는 1000장에서 많게는 6000장가량의 이미지가 나오는데, 이 이미지 파일과 그 이미지가 무엇을 보여주는지 설명하는 메타정보가 제각기 분리돼 있다.
“지금은 이미지 정보를 분석한 정보들이 따로 취합됩니다. 흩어진 정보들이 어디 있는지 만든 사람만 알아요.” 8월 10일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에서 만난 송정일 학예연구사는 데이터 통합에 뛰어들고 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파괴 진단 데이터의 표준 포맷을 개발해 2026년 4월 논문으로도 발표한 바 있다. doi: s40494-026-02480-0 유물의 다각도 정보와 이미지 정보를 하나의 구조로 묶고, 여기에 주어·목적어·관계를 구분하는 태그(CIDOC CRM)를 부여해 인공지능(AI)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 연구는 이미 특허 등록을 마쳤고, 국제 특허협력조약(PCT) 출원까지 완료됐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문화유산 비파괴 진단 분야에서 정확하게 표준화된 데이터 포맷이 없어요. 저희가 먼저 국내 표준에 도전해보고, 이후에 국제 표준화까지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송 학예연구사는 이 작업이 자리를 잡으면, “고려시대 불상 중 결구 방식이 다른 불상을 찾아 줘” 같은 자연어만으로 원하는 유물 정보를 검색하고, 나아가 AI가 새로운 유물의 결함을 스스로 진단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마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수 시간에 걸쳐 촬영 정보를 분석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AI로 수 분 안에 진단을 내리는 모습이 문화유산 진단에서도 실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비파괴 진단의 미래는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사찰이 소장한 불상이나 건축물처럼 기관으로 옮겨올 수 없는 ‘부동산 문화유산’은 비파괴 진단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를 위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야외에서도 검사 가능한 ‘이동형 비파괴 진단 장치’ 개발에 힘쓰고 있다. 송 학예연구사는 이동형 장치 개시 시기를 2027~2028년 사이로 점쳤다.
보존과학의 비파괴 진단은 육안과 경험에 의존하던 진단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진단으로 바꿔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데이터를 잇는 단계에 와 있다. 엄 책임연구원은 이 흐름이 향하는 곳을 “문화유산의 성분이나 내부 구조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손상 원인을 진단하고 보존 상태를 예측해 실제 보존처리까지 연결하는 방향”이라고 짚었다. 부수지 않고 들여다보는 기술에서 시작해, 언젠가 유물이 앞으로 겪을 변화까지 미리 읽어내는 기술이다. 보존과학의 눈은 지금도 유물의 더 깊은 곳을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