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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내손으로 조선에서 과학 혁명?!] 제 7강. 생태조선 만들려다 인류세 조기 입성?

추운 겨울엔 아랫목에서 뜨끈하게 빵처럼 구워지는 것, 한국인의 DNA 속에 새겨진 겨울나기 방법입니다. 그런데, 구들장 온기는 공짜가 아닙니다. 이번 현장학습에서 대학원생 공구성은 추운 날씨가 아주아주 오래 이어지던 1791년 조선으로 향합니다. 온돌을 달굴 땔감이 부족해진 조선을 구하려는 공구성의 발버둥, 함께 살펴보시죠.

 

 

 

▲GIB
연탄은 석탄 가루와 점토를 섞어 찍어낸 연료다. 1950년대 중반부터 가정의 난방에 연탄이 널리 활용되다가,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사용량이 줄었다.

 

예습 
뜨끈한 찜질방에서 에너지 전환을 상상하다

 

“아으흐흐, 역시 난방만큼은 서양조차 한국을 따라올 수가 없다니까.” 양머리 수건을 뒤집어쓴 공구성이 찜질방 바닥에 등을 지지며 탄성 섞인 신음을 냈다. 구성은 지난 3월 초에 지도 교수를 따라 미국 뉴욕 버팔로에 방문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투덜댔다. 


“세상에, 영하로 떨어지는 북미의 겨울밤을 그 알량한 라디에이터 하나로 버티라니. 추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덜덜 떨었잖아. 내가 서양 문명 보편론자지만, 난방 하나만큼은 서양인들이 한국의 온돌 시스템을 배워가야 해. 내가 근대 초기 서양으로 회귀하면 이 위대한 온돌 문화부터 전수할 텐데!” 


옆에서 맥반석 계란 먹으러 나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가 핀잔을 줬다. “야, 온돌로 덥히는 데 땔나무 엄청나게 들어가는 거 몰라? 내가 게임 많이 해봐서 아는데, 전근대 문명에서 산림 자원을 소비하는 건 초반 부스팅에는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생태계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라고.”


“아, 장작이 없으면 석탄을 쓰면 되잖아, 석탄! 연탄 찍어내서 아궁이에 밀어 넣으면 산림도 살고 방도 뜨끈해지는 데 뭐가 문제야?” 
구성의 말에 친구가 침을 튀겼다. “참 나, 너 지난주 대전 학회에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 듣고 와서 나를 계몽시킨다 어쩐다 하더니 이런 말을 하냐? 네가 과거로 회귀해서 일찍부터 이산화탄소 배출해 봐라. 지구온난화가 수백 년은 더 빨리 오겠지. 과학사 전공자가 탄소 부채를 일찍부터 지구에 지우려고 들어?” 


“아, 적당히 쓰면 되잖아, 적당히! 그리고 인마! 추위에 장기간 노출되는 것도 만병의 근원이야. 무릇 위정자라면 미래의 기후보다 지금 당장 얼어 죽는 백성들의 안녕과 생계부터 살펴야 하는 법이라고!” 
“얼씨구, 아주 목민심서 쓰시네.” 친구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무 땀을 흘렸는지 정신이 혼미해진 구성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현기증 난다. 안 되겠다, 나가서 시원한 살얼음 식혜나 한 사발 마셔야지. 그리고 네가 노래하던 계란 먹….” 그 순간 찜질방의 노란 조명이 일그러지더니 구성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또.

 

과제 
산림 황폐화 없이 온돌의 따뜻함 누리기

 


“…우상 대감, 정신이 드십니까? 대감!”


눈을 떴을 때 구성은 화려한 관복 무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구성의 의식 속으로 번암 채제공이라는 정조 시기 조선 최고 원로 대신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집무실 밖으로 나선 구성은 한양 도성을 둘러싼 사산(四山, 북한산·남산·인왕산·낙산)의 풍경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저게 정녕 도성의 산이란 말이냐?” 공구성의 눈에 비친 인왕산과 남산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붉은 속살과 화강암반이 흉측하게 드러난 민둥산이었다. 


지난 번 공구성이 조형에 빙의했다 목격했던 경신 대기근이 보여주듯, 17세기 전후 지구를 덮친 소빙기의 이상 저온 현상을 한반도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여름에도 동해가 얼어붙을 정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조선의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방바닥을 데워야 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온돌은 움집에 사는 최하층민부터 사대부, 그리고 대궐의 나인과 국왕의 처소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널리 깔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빙기 특유의 한랭한 기후는 수목의 생장 속도 자체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산림 자원의 자연 회복력이 마비된 상황에서 왜란을 걱정하며 지속적으로 군선을 건조하느라 막대한 목재가 소비됐다. 여기에 매일 아침 셀 수 없이 많은 아궁이가 땔나무를 집어삼키니, 한반도 남부의 모든 산의 초목이 벗겨져 민둥산이 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대감, 올여름에도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사산의 모래와 자갈이 개천으로 쏟아져 내려 도성 중심부가 무릎까지 물에 잠길 터인데, 백성들의 도랑 치기 부역을 어찌 다스려야 할지 막막하옵니다.” 한성부의 관리가 장부를 들고 와 한숨을 쉬었다. 


숲이 파괴되자, 빗물을 머금지 못하는 붉은 흙더미는 매년 여름 장마철마다 흘러내려 청계천 바닥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쌓였다. 하천의 바닥이 얕아지자, 조금만 비가 와도 도성 중심부를 수심 1m에 육박하는 거대한 물바다로 만들어버리는 환경 재난이 일어났다. 


“산림 파괴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땔감을 가장 비효율적이고 대량으로 집어삼키는 난방 연료 체계부터 석탄으로 대체해야 해!” 구성이 생각한 해결책은 불에 타는 돌, 석탄이었다.

 

▲산림청
1971년 경기 광주에서 진행된 식목일 기념행사.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에 사람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전국의 산림은 일제의 목재 수탈과 전쟁 등으로 황폐한 상태였다. 1960년대 초부터 정부는 ‘치산녹화’ 정책을 추진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꿨다.

 

보고서 
적정 기술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이고 허리야… 빙의한 몸 중에 가장 나이 든 몸 같네. 그러나저러나, 내가 지난 실습에서 대차게 깨지면서 배운 게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허허.” 집무실에 앉아 아픈 허리를 두드리던 구성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인쇄기나 미터법처럼 현대의 완성된 관념을 조선에 통째로 이식하려다가는 시스템의 저항과 사대부들의 반발을 맞기 딱 좋다는 것은 몇 번의 현장실습으로 체득했다. 정치를 움직이려면 명확한 선례와 현실적인 조달 방책, 그리고 안보라는 명분이 필요했다. 


구성은 정조와 대신들이 모두 모인 엄숙한 편전 연석에 들어 주청을 올렸다. “전하, 신이 평양 부윤을 지낸 문사 윤유가 저술한 ‘평양속지(平壤續誌)’를 읽고 깊이 고찰하다가 작금의 송정(松政) 문제를 타개할 뜻밖의 방책을 얻었사옵니다. 기록에 이르기를, ‘평양부 동쪽 미륵현에 석탄(石炭)이 있는데, 우리 동방에서는 이를 쓸 줄 모르니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전쟁이 나서 성을 지켜야 할 때가 되면 성안에서 땔감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니, 이 검은 흙을 파내어 황토와 섞고 물을 부어 이겨낸 뒤 햇볕에 바짝 말려 쓰면 맷돌만 한 크기로도 한 끼 아침밥을 지을 수 있다’고 그 비방을 적어두었습니다.” 


구성은 어조를 높였다. “더욱이 신이 확인한바, 평양 남부의 강줄기를 따라 이 석탄이라는 것이 땅 위에서 긁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가득하다고 하옵니다. 이곳에서 조심스럽게 채취하여 대동선에 실어 내리면 석탄을 한성부까지 조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사옵니다. 또 신이 평양속지의 비방을 따라 직접 이 석탄을 시험해 보았사옵니다.” 구성이 이어서 말했다. “다만 흙을 맷돌처럼 통째로 크게 뭉치니 속까지 불이 잘 붙지 않고 연기만 매캐했사옵니다. 그리하여 신이 그 덩이에 구멍을 아홉 개 뚫어 불길이 숨을 쉬며 통하게 하였더니, 그 화력이 장작 서너 가마니보다 뜨겁고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신은 이를 구공탄(九孔炭)이라 이름하였습니다.” 1980년대 서울을 데우던 연탄을 200년 전으로 끌고 온 것이다. “송정은 곧 군무(軍務)”라며 국방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정조와 대신들에게 구성의 제안은 솔깃했다. 난방용 땔감을 구공탄으로 대체한다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면서도 군선 건조에 투입할 목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정조는 우의정이 바친 구공탄을 직접 손이 까매지도록 만져보다 이내 어명을 내렸다. “우상의 방책이 실로 탁월하도다. 당장 평양 남부에서 석탄을 일부 채취하게 하되, 백성들에게 역을 강제하지 말라. 묘당과 호조는 조달된 흑토로 구공탄을 찍어내 우선 도성 내 한성부 서부의 주민들에게만 시범적으로 공급하게 하라.” 


머지않아 한성 서부의 시범 구역 백성들에게 구공탄이 보급되었다. 나무를 베지 않아도 구공탄 몇 덩이면 한기를 기막히게 버틸 수 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신기해했다. “보아라 산신령! 이번엔 완벽한 적정 기술이자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성공이다! 엣취…! 노구인데 계피와 회향으로 몸을 덥혀야지 흘흘….” 늙은 몸에 웃음소리도 늙어버린 구성은 승리를 예감하며 사랑방에서 계향차를 들이켰다. 


일부 구역에 소규모로 시범적으로 보급했지만 연료 체계의 변화는 기존 도성의 시전상인들과 이들과 결탁한 시목전(柴木契·땔나무를 파는 가게)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이들은 소빙기 한랭화로 땔나무 가격이 평시보다 서너 배 이상 폭등한 상황에서 큰 이득을 취해 왔다. 그러다 공구성이 빙의하기 직전, 채제공이 주도한 시장개혁으로 인해 시전의 금난전권이 대거 혁파되면서 상인들은 시장 독점과 물가 담합을 못하게 되어 이를 갈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구공탄이 보급되자자 땔나무 시장마저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상이 시상들의 수문(手門)을 막아버리더니, 이제는 평양의 검은 흙을 들여와 우리를 아주 굶겨 죽이려 한다!” 시상과 시목전 무리들은 조정 안팎의 세력가들과의 인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채제공을 탄핵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여보, 좀 일어나보시오! 왜 눈을 못 뜨오!” 


설상가상으로 보급이 보름째 되던 날, 시범 구역의 백성들 수십 명이 급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연탄에서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이었다. 조잡하게 만든 움집 온돌은 구조적으로 진흙 구들장에 균열이 잦았고,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밀폐 구조였다. 기존의 땔나무 연기와 달리 구공탄이 뿜어내는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했기에 백성들은 소리 없이 중독되어 숨을 거두었다. 


채제공을 무너뜨릴 기회만 엿보던 상인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백성들을 선동했다. “우상 대감이 상인들을 밟아 죽이더니, 이제는 평양의 귀신 돌을 들여와 백성들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백성들은 폭발했다. 가뜩이나 가혹해진 송정에 불만이 많았던 백성들은 구공탄 가마터를 부수었을 뿐만 아니라, 도성 주변에 금산으로 지정된 소나무들도 밤사이에 도벌해 버렸다. “우상이 가져온 검은 돌은… 귀신 들린 돌이었구려.” 보고를 받은 정조는 구공탄 보급을 전면 중단시켰다. 조선을 울창하고 따뜻하게 만들려던 계획이 수포가 되는 순간이었다. 

 

▲국가유산청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나온 열기가 방바닥에 깔린 구들장 아래를 지나가게 해 바닥을 데우는 한국 전통 난방 방식이다. 17세기 소빙하기가 찾아오며 온돌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결과
조기 인류세의 피해자는 바로 회귀자?

 

구성이 참담한 마음을 다스리려 빙의 전 채제공이 쓴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를 따라 길눈이 밝은 노비와 관악산으로 들어서던 찰나에 산신령이 스윽하고 나타났다. 본인 앞마당이라 그런지 왠지 수염에서 윤기가 나는 것 같았다.


“산림 황폐화를 막겠다고 석탄을 들여왔으나, 벼랑 끝에 몰린 시목 상인들의 욕망과 민초의 주거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사산을 더 붉게 물들였구나.” 늘 그랬듯이 산신령의 훈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네 놈의 죄는 바로 그 안일함에 있느니라. 인류세에 대해 배워놓고도 조선 후기의 생태 문제를 해결하겠답시고 미래의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탄소 부채의 양을 늘리려 했지? ‘지금은 도성 안 일부에만 소규모로 쓰니까 괜찮다’며 내뱉은 그 안일한 변명이 인류세의 출발점을 앞당기는 것이니라. 화석연료 사용을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이를 앞당기려는 회빙환 웹소설류가 놓치는 문제를 네놈도 동일하게 겪는구나. 자, 오늘도 F 학점이다.”  


“산신령 영감! 콜록 콜록! 당장 사산이 동탁화되어 청계천이 막히고 홍수가 나 백성들이 물에 쓸려 가는데, 몇백 년 뒤의 탄소 배출까지 계산하라는 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알잘딱깔센이라는 말도 모르느냐? 기후위기가 더 일찍 시작되었다면 네놈이 식혜를 먹는 세상을 기대할 수나 있겠더냐? 쯧쯧…” 산신령의 혀 차는 소리가 구성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현재환 교수와 소설 뜯어보기

조선 후기 온돌의 보급과 산림 황폐화 위기
역사학자 김소라에 따르면 17세기 전후 전 세계를 덮친 소빙기는 조선의 주거 환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방바닥을 데우는 온돌 문화의 확산은 막대한 땔나무 소비를 야기했습니다. 숲이 사라져 표토가 장마철마다 흘러내렸고, 그 결과 개천이 막혀 조금만 비가 와도 도성 중심부가 성인의 무릎 높이까지 잠기는 홍수 피해가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영조 대 이후 계속해서 청계천 준설 사업이 이뤄지는 생태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인류세의 출발점과 회귀물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만큼 커다란 지질학적 힘을 갖게 된 시대를 뜻합니다.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이 지수함수적으로 급증한 1950년대 이후 대가속 시기는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널리 지지받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산업혁명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들이 인류세 진입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고 말합니다. 사실 조선에 석탄을 도입하려던 공구성의 시도와 산업혁명기 화석연료 기반의 대규모 산업화는 규모 면에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화에서 구공탄 소동을 인류세와 연관 지어 다룬 것은, 에너지 체계를 화석연료로 전환해 조기에 근대화를 달성한다는 웹소설의 전개가 종종 간과하는 기후 윤리적 맹점을 짚어보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공구성이 공략을 위해 봤으면 좋았을 글들
김소라, “불과 물: 조선후기 이상저온 현상 속 한성부의 온돌 확산과 청계천 준설,” 한국시대사학보, 2022.
노성룡, 배재수, “조선후기 송정(松政)의 전개과정과 특성: 국방(國防) 문제를 중심으로,” 아세아연구, 2020. 
여민주, “조선후기 서울의 땔감 유통,” 서울과 역사, 2020.

 

▲G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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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현재환 한양대 철학과 교수
  • 에디터

    김소연
  • 만화

    신성호
  • 디자인

    박주현,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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