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제13회 세계 과학기자대회(WCSJ· World Conference of Science Journalists)가 열렸다. 과학기자대회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 행사로 과학 언론인과 연구자, 기관이 모여 과학기술 보도의 방향성을 논하는 자리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79개국 450여 명이 모여 닷새 동안 뜨거운 토론을 이어갔다. 과학 언론의 최전선에선 어떤 문제의식이 나왔을까. 대회에서 직접 보고 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키워드 3개로 정리했다.
사회 정의
“전쟁터에서 과학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폭격으로 농업 기반이 파괴된 가자 지구에서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농학자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가자 지구 전역을 돌아다니며 남아있는 작물 종자를 모아 재배하고 있었죠. 유튜브로 영상을 공개하고 두세 달 뒤, 그가 이스라엘군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이집트의 과학 언론인 암르 라게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12월 2일 오전 세션인 ‘포화에 둘러싸인 보도: 갈등 지역과 권위주의 정권에서의 과학 저널리즘’에서 나온 발표였다. 예멘, 팔레스타인, 레바논, 나이지리아 등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과학 언론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경험을 나눴다. 압둘라흐만 아보탈렙 예멘 과학 네트워크 편집장은 “내전 중인 예멘에서 가뭄 실태를 취재하는 도중 댐 사진을 찍자마자 군인들이 날 감옥에 가뒀다”며, “며칠 후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다 빼앗긴 채로 풀려났다”고 밝혔다. 그는 “내전이 격화되면서 납치, 구금, 살해 등의 위협도 심해졌다”며 “취재를 위해서는 언론인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숨겨야 했다”고 고백했다.
올해 열린 과학기자대회의 주제는 ‘과학 저널리즘과 사회 정의’다. 분쟁 지역의 과학 보도는 정말로 사회 정의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세션에 참여한 언론인들은 취재와 기사 작성에 따라붙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하면서도, 분쟁 지역에서 과학 저널리즘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분쟁 지역에서도 과학 활동이 꾸준히 진행 중일 뿐만 아니라, 분쟁 지역을 넘어 더 넓은 곳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화에 둘러싸인 보도’ 세션의 사회를 맡은 리처드 스톤 사이언스 매거진 선임 국제 특파원은 전쟁 중인 2024년 11월, 우크라이나에 퍼지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에 관해 보도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전장에서 항생제가 남용되면서 강력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생겼습니다. 이는 주변국으로도 전파될 수 있죠. 그러니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의 확산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스톤 특파원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퍼진 결핵도 한국 등 주변국의 보건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과학 보도의 시선을 선진국뿐만 아닌 더 넓은 범위에 둘 것을 강조했다.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과학이 아닌 소통의 문제”
“많은 정치인이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현 대통령 또한 기후위기 부정론자죠.” 노라 베르 전 아르헨티나 과학 저널리즘 네트워크 회장이 12월 4일 열린 전체 회의 ‘어려운 시기: 정치가 기후위기를 부정할 때 기후변화 전달하기’에서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 과학기자대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의 문제가 된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가짜 정보 등으로 인해 과학적 합의가 사회적으로 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언론인들은 과학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논의했다. 기후 관련 보도가 실생활과 동떨어진 주제로 여겨져 아직까지도 소극적으로 다뤄지는 한국의 경향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같은 세션에 참여한 파울로 아르탁소 브라질 상파울루대 교수는 2025년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에서 겪은 경험을 공유했다. “COP30에 화석연료 산업계 관계자들이 대규모로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늦추기 위해 가짜 정보를 퍼뜨렸어요.” 아르탁소 교수는 “기후위기는 과학이 아닌 소통의 문제”라며 과학 언론의 대응을 촉구했다.
베르 회장은 과학 언론이 기후위기 대응을 경제적 부담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인식하도록 내러티브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입안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이 경제적 손해를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드는 비용이, 대응하지 않을 때 드는 비용보다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글로벌 사우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어야”
회의장에서는 닷새 내내 다양한 억양의 영어만큼이나 스페인어와 스와힐리어가 자주 들렸다.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린 과학기자대회 답게,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 불리는 남반구의 비서구권, 개발도상국 국가에서 온 과학 언론인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글로벌 사우스 과학 언론인들의 보도는 우리가 익히 접하던 보도와는 방향도, 문제의식도 달랐다. 기존에 한국에서 접해온 과학 보도는 최신 연구 성과나 주요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과학 선진국의 연구가 주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에서도 과학 연구와 활동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남아공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파천문학 프로젝트인 ‘평방킬로미터 간섭계(SKA·Square Kilometer Array)’가 진행 중이었다. 여기에 더해 남아공은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전파천문학 연구를 후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과학 연구를 이끌어가려는 의지가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글로벌 사우스 과학 언론인들은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조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과학과 삶을 연결하고, 여러 사회 문제를 극복하려는 문제의식도 특히 강하게 드러났다. 나이지리아 신문 ‘데일리 트러스트’의 기자인 후세이니 가르바 모하메드는 기후위기가 나이지리아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기사로 다뤄온 경험을 공유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모래나 석유의 불법 채굴이 성행합니다. 채굴을 시킬 사람들을 납치하는 일도 빈번하죠. 기후위기가 심해져 기존의 생활 방식이 파괴될수록 이러한 돈벌이는 더욱 늘어날 거예요. 기후위기가 수많은 불법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사우스에서 모인 과학 언론인들의 통찰이었다. 이들은 생태와 기후위기 등 여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은 물론, 원주민과 취약계층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12월 2일 진행된 ‘기후위기 취약계층 취재’ 세션에서 남아공의 레오니 주베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는 “기후위기는 오랜 시간 서서히 진행되는 ‘느린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원주민의 경험과 이야기를 듣자”고 촉구했다. 그는 남아공 전역을 돌아다니며 원주민들에게 직접 기후위기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 방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한 지역에서 대대로 살며 지역의 특성과 생태를 깊게 파악했기 때문에, 과학이 놓친 부분을 메꿔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과학에 영향을 미치고, 기후위기를 타개할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다음 제14회 세계 과학기자대회는 2027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남아공에서의 닷새는 런던까지 남은 2년 동안 과학 보도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기대를 품게 하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