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 세상에 없는 색을 만들다 '올로'

    Shutterstock, 이한철

     

    어두운 곳에 앉아 있는 당신의 눈으로 레이저가 발사된다. 회색 배경 위로, 반짝이는 레이저 사이로 곧 색이 보인다. 초록색이지만 이전에 본 적 없는 색,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초록색이다. 4월, 렌 응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전자공학·컴퓨터과학과 교수팀은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색, ‘올로(Olo)’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새로운 색을 찾았을까. 
    인류는 다른 새로운 색도 볼 수 있을까. 
    연구를 파헤쳐봤다.

     

    Shutterstock

     

    당신의 기억 속 가장 밝은 초록색을 떠올려 보라. 봄철 햇살을 받아 빛나는 연한 나뭇잎들? 이 색은 그 초록보다 밝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던 열대 바다? 이 색은 그 초록보다도 밝다. 이 색은 너무나 높은 채도의, 인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초록색이다. 4월 18일, 렌 응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전자공학·컴퓨터과학과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그들이 새로 찾아낸 이 색에 ‘올로(Olo)’라는 이름을 붙였다. doi: 10.1126/sciadv.adu1052 


    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을 만들어낸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서 빨간 사과를 비췄다고 가정해 보자. 손전등에서 나온 백색광은 사과의 표면에서 반사된다. 이때, 사과 표면에서 다른 파장의 빛은 흡수되고 빨간색을 만들 긴 파장의 가시광선만 반사된다. 


    이렇게 사과 표면에서 반사된 빛 중 일부가 우리의 눈을 통과해 영화관의 스크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망막까지 들어온다. 망막에는 빛 신호를 감지하는 약 1억 개의 시각세포가 대기하고 있다. 빨간색 사과의 이미지가 망막에 맺히면, 시각세포들이 빛을 감지해 신경 신호로 변환한다. 이 신경 신호가 시신경을 통해 뇌의 시각 피질로 전달되면 우리가 빨간색 사과를 인지하게 된다.


    색깔을 인지하는 일은 망막의 시각세포 단계에서 일어난다. 시각세포 중 밝은 빛의 색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원뿔세포’다. 원뿔세포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들이 반응하는 빛의 파장대가 서로 다르다. 과학자들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이 원뿔세포들에 L형(Long·555~565nm), M형(Middle·530~570nm), S형(Short·415~430nm)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대략 L형은 빨강, M형은 초록, S형은 파랑을 인식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 세 가지 원뿔세포가 받은 자극의 총합으로 우리가 보는 색이 결정된다.


    레이저로 특별하게 한 종류 세포만 자극하다


    서론이 길었다. 그러면 응 교수팀은 어떻게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 것일까? 비밀은 ‘한 종류의 원뿔세포만 자극하기’다. L형, M형, S형 원뿔세포 중 M형만 자극해 색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가지 원뿔세포만 자극을 받는 일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정확히 구분된 파장의 빛을 감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프로 그려보면, 세 원뿔세포가 감각하는 빛의 파장대가 상당히 겹쳐요.” 5월 28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인공시각 연구실에서 만난 임매순 책임연구원이 그래프를 보면서 설명했다.


    “실제로 파란색을 인식하는 S형의 경우 감각하는 빛 파장대가 다른 종류의 원뿔세포와 많이 떨어져 있지만, M형과 L형은 감각하는 파장대가 상당히 많이 겹치는 걸 알 수 있죠.”


    그러니 우리가 감각하는 초록색은 사실 M형과 L형 원뿔세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M형 원뿔세포만 자극을 받았을 때의 색은 지금까지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셈이다. 이번에 응 교수팀은 레이저로 M형 원뿔세포만 인공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먼저 실험 참가자의 망막을 고해상도로 스캔해 망막에 분포한 시각세포를 종류별로 분류한 망막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이 회색 배경에 시선을 고정하는 동안, 참가자들의 망막에서 M형 원뿔세포만 골라서 정밀 녹색 레이저를 쏴줬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우 밝은 초록색을 봤다고 응답했다. 연구팀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빛을 섞어 그들이 본 색을 재현하게 했지만 누구도 똑같은 색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참가자들이 봤다고 말한 색은 인간이 보는 색 영역의 바깥에 존재했다. 가장 비슷한 색은 백색광을 많이 섞은 초록색이었다. 응 교수팀은 본인들이 새로운 색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이 색에 올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간 망막에 있는 세 종류 원뿔세포(S형, M형, L형)의, 빛의 파장대에 따른 민감도 그래프. M형 세포와 L형 세포는 감각하는 빛의 파장대가 서로 상당히 겹침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색’을 보는 방법


    응 교수팀이 만든 올로는 새로운 색이지만, 분명히 인간이 감각하는 400~700nm 사이 가시광선 파장대의 빛이다. 혹시 가시광선 파장대 밖의 빛을 볼 방법은 없을까. 몇몇 동물들은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조류는 네 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지고 있어 자외선 영역대를 볼 수 있다. 적외선이나 자외선이야말로 인간이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색’일 것이다. 기자의 질문에 임 책임연구원은 “2019년에 중국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셀’에 실었던 논문이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doi: 10.1016/j.cell.2019.01.038


    이 연구를 이끈 티안 쉐 중국과학기술대(USTC) 생명과학대학 교수팀은 생쥐가 근적외선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생쥐 또한 파장 700nm 이상의 근적외선을 볼 수 없는 포유류다. 연구팀은 생쥐의 안구에, 980nm 파장의 근적외선을 흡수하고 더 짧은 535nm 파장의 녹색 빛을 뿜는 나노입자를 주입했다. 일단 안구에 들어간 나노입자는 생쥐 망막의 시각세포에 단단히 결합했다. 그 결과, 생쥐의 시야에서 근적외선은 녹색으로 나타났다. 생쥐가 볼 수 없는 근적외선이 생쥐도 볼 수 있는 녹색으로 ‘번역’된 것이다. 이후 실험에서 나노입자를 주입받은 생쥐는 근적외선으로만 볼 수 있는 숨겨진 패턴을 볼 수 있었고, 근적외선을 볼 때 풀 수 있는 미로 문제도 해결했다. 연구팀은 나노입자를 통한 근적외선 시력이 최대 10주까지 지속됐다고 밝혔다.


    5년이 지난 올해 5월 22일, 쉐 교수팀은 이전의 연구를 업그레이드한, 인간이 적외선을 볼 수 있게 만든 새로운 연구를 ‘셀’에 발표했다. doi: 10.1016/j.cell.2025.04.019 이번에는 나노입자를 콘택트렌즈나 안경에 삽입해, 착용자가 적외선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콘택트렌즈 속의 나노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한 뒤 사람이 볼 수 있는 파장대의 가시광선으로 변환시켜 뿜어내는 것이다. 쉐 교수팀은 나노입자를 포함한 안경을 제작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글씨를 읽어보게 했다. 그 결과,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땐 흑백으로 보이던 글자들이 안경을 쓰자 선명한 색깔로 바뀌어 보였다. 
    이 연구의 재미있는 점은 쉐 교수팀의 콘택트렌즈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적외선을 더 잘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교수팀은 눈꺼풀이 더 강한 빛인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적외선은 파장이 길어서 조직 투과성이 높다.

     

    우리는 어떻게 색을 볼까?

    Shutterstock , Science Advances, 이한철

    ❶ 백색광이 사과를 비추면 표면에서 긴 파장의 빛만 반사돼 흩어진다.
    ❷ 이 빛이 눈으로 들어와 망막의 시각세포를 자극한다. 시각세포는 빛 자극을 전기 신경 신호로 바꾼다.
    ❸ 시각세포는 어두운 곳에서 형태를 보는 막대세포와,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인지하는 세 가지 원뿔세포로 이뤄졌다. 긴 파장의 빛은 세 가지 원뿔세포 중 L형 원뿔세포를 주로 자극한다.
    ❹ 자극을 받은 원뿔세포는 신경 신호를 시신경을 통해 뇌의 시각중추로 보낸다. 시각중추에서 해석된 신경 신호가 빨간색을 인지한다.

     

    새로운 색, 올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Shutterstock, 이한철

    M형과 L형 원뿔세포는 반응하는 빛의 파장대가 많이 겹친다. 우리가 보는 초록색은 실제로는 M형과 동시에 L형 원뿔세포가 반응해서 만들어진 색이다.

     

    Shutterstock, 이한철

    미세 조정 레이저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M형 원뿔세포만 골라서 자극하면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밝은 초록색, 올로를 관찰할 수 있다.

     

    “다른 색을 봤다”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노입자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근적외선 ‘색’을 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원리상 나노입자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근적외선 파장을 사람에게 보이는 가시광선 파장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콘택트렌즈나 안경을 통해서 인간이 실제로 보는 색은 다 가시광선 파장이다. 결국 이런 기구를 통해서 인간은 근적외선 파장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근적외선 색을 본다’고 할 수는 없다.


    ‘색맹’이나 ‘색약’으로 불리는 색각이상인이 색을 감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경도 새로운 색을 보게 해주지는 않는다. 색각이상은 색을 분간하는 원뿔세포의 기능에 이상이 있을 경우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세 가지 종류의 원뿔세포 중 긴 파장을 인식하는 L형 세포가 작동하지 않으면, 빨간색을 인식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빨간색과, 빨간색과 가까운 파장대의 초록색을 구분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색각이상인의 색 인식을 돕는 렌즈는 빨간색과 초록색 사이의 특정 파장을 흡수하는 광물을 사용해 두 색이 더 잘 구분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즉 빨간색과 초록색의 명암이나 밝기 차이를 키워서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새로운 색을 보게 해주지는 않는다. 


    실제로 색각이상인용 장비에 관해 미국 안과학회 또한 “색맹 교정 안경은 색각이상이 발생한 사람들의 색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Science Advances

    올로를 본 실험 참가자가 올로의 색깔 위치를 표시한 결과. 삼각형 내부의 색채는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을 영역으로 나타낸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이 감각한 올로는 이 삼각형 범위의 바깥에 있다.

     

    ‘올로’가 열어준 인공 시각의 미래


    색은 어디서 오는가? 올로는 ‘색의 기원’이라는 오래된 수수께끼를 다시 한번 환기했다. 17세기의 대표적인 자연철학자인 아이작 뉴턴(만유인력을 발견한 그 뉴턴, 맞다)은 1704년에 발표한 저서 ‘광학’을 통해 색은 빛의 파장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즉, 색은 몸 바깥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속성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뉴턴의 관점에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독일의 작가였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다. 괴테는 19세기 초 펴낸 ‘색채론’에서 색은 색을 인식하는 사람의 심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인식하는 색깔이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었다.


    올로는 이 두 주장 사이 어딘가에서 기묘하게 발견된 색 같다. 올로를 만들기 위해 쏘아준 레이저는 평범한 녹색이었지만, 이를 한 형태의 원뿔세포에만 쏴 실험 참가자들이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색을 감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올로는 색이 물리적인 현상임과 동시에 생리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감각임을 보여준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공시각을 연구하는 임 책임연구원에게는 올로 연구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임 책임연구원은 망막의 시신경에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인공 망막’을 부착해 인공 시각을 만드는 연구를 했다. 


    전기로 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의 문제점은 높은 해상도의 인공 시각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기로 자극하면 전류가 자꾸 원하는 세포의 주변 세포로 퍼져나가서 해상도가 낮아져요. 그런데 이번 연구에 쓰인, 초고해상도 레이저로 망막 세포를 자극하는 기술이 발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기 대신 빛으로 망막을 자극하는 인공 시각을 만들면, 고해상도 인공 시각을 구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망막 세포를 자극하는 장치가 일반 안경과 비슷할 정도로 작아져야 쓸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미 임 책임연구원은 광유전학을 이용해 인공 시각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래에 인공 시각이나 다른 기술들을 사용해 새로운 색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의학 분야에서는 색각이상인에게 유전자 치료를 시행해 원뿔세포를 복구하려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인공 시각을 사용해 아예 새로운 색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쉽지 않을 겁니다. 현재 수준의 인공 시각 연구로는 아직 흑백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어렵습니다. 색을 만드는 것은 원뿔세포는 물론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훨씬 다양한 세포들의 협동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임 책임연구원은 답했다. 어쩌면 올로는 앞으로도 한동안 인간이 찾아낸 새로운 색으로 유일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Shutterstock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5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 디자인

      이한철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