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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Disable? This Able!] ABLE TO TRAVEL | AI 기반 자율이동 보조 로봇 글라이드

▲Glidance

 

시각 장애인은 외출 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곳곳에 끊긴 점자 블록, 그 위의 각종 장애물로 안전하게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이동 보조 기술이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4에 처음 공개됐다.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이동 보조 로봇 ‘글라이드(Glide)’다. 2월 7일 제조사인 글라이던스의 창립자 에이모스 밀러를 화상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보조공학은 신체의 한계를 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술입니다. 보조공학의 발전은 장애의 경계를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 현재 주목받는 기술들과 이들이 이끌어낼 변화를 살펴봅니다.

 

▲Glidance
글라이던스 사가 개발한 ‘글라이드’는 시각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첨단 이동 보조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24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처음 공개됐다. 뜨거운 관심 속에 2025년 하반기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팡이요?(웃음) 지팡이보다는 안내견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아요.” 두 개의 바퀴에 지지대와 손잡이가 달린 ‘글라이드’를 무심결에 지팡이에 빗댄 기자에게 글라이던스의 CEO 에이모스 밀러는 웃으며 말했다. 글라이드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등 보다 능동적인 이동 보조 기술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사용자가 글라이드의 손잡이를 잡고 목적지를 말하면, 음성 안내와 함께 막대 끝에 달린 바퀴가 사용자를 살짝 당긴다. 글라이드가 당기는 방향으로 사용자가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 글라이드는 인공지능(AI) 기반 내장 카메라를 활용해 주변을 스캔하면서 실시간으로 보행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밀러 CEO의 설명을 듣고 보니 실제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의 역할과 유사하다. 

 

글라이드는 2024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처음 공개됐다. CES에 참석한 기술 전문가들과 관람객들은 “이제 시각 장애인의 이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혁신적인 기술에 찬사를 보냈다. 이듬해에도 CES 2025에 참가한 글라이드는 미국의 NBC ‘투데이 쇼’에서 CES 2025 최고의 제품 중 하나로 소개됐다.

 

글라이드가 길을 안내하는 방법
글라이드는 내장된 카메라와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분석한다. 또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바퀴를 움직여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경로를 안내한다.
1. 내장된 2개의 카메라를 통해 보행 가능한 경로와 장애물을 감지
2. 사용자가 손잡이를 밀면, AI 및 각종 측정 기기들이 사용자의 이동 속도를 분석해 바퀴 회전
3. 사용자가 장애물 가까이 접근하면, 햅틱 피드백(진동)과 음성 안내를 통해 경고
4. 갑작스러운 장애물이나 위험한 지형이 감지되면, 바퀴에 자동 브레이크가 작동해 속도 조절

 

시각장애인이 만든, 시각장애인을 위한 혁신

 

글라이드를 개발한 밀러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최고 명문 공대인 테크니온 이스라엘 공대를 졸업했다. 그는 자신을 “어릴 때부터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런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살 무렵이었다. 5살 때 진단받은 색소망막증이 악화돼 20대에 이르러 완전히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각 장애가 그를 보조공학 전문가의 길로 이끌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밀러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시각 장애가 제 인생을 바꾼 것은 별로 없었어요. 시각 장애를 앓지 않았더라도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됐을 테니까요. 다만 시각 장애 경험이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을 더 잘 해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 건 분명해요.”

 

그는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리서처 넥스트 이네이블’ 팀에서 제품 전략가로 일했다. 밀러는 이곳에서 시각 장애인의 이동을 소리로 돕는 앱인 ‘사운드스케이프’를 개발했다. 밀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돕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며 “어떻게 시각 장애인을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약 15년 전만 해도 보조공학 기술 전시회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제품이라 해봐야 말하는 전자레인지 정도가 전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AI와 첨단 기술이 발전하며 시각 장애인을 위한 수백 가지의 도구와 기술이 개발됐죠. 그럼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바로 시각 장애인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입니다.”

 

실시간 판단하고, 가본 길 기억하는 AI

 

CES 2025에서 글라이드가 주목받은 이유는 시각 장애인에게 완벽한 독립 보행을 선물하는 기술력에 있다. 글라이드의 손잡이에 달린 두 개의 카메라 중 하나는 정면을, 하나는 보행자가 걷는 길 쪽을 보고 실시간으로 주변을 감지한다. 실시간으로 인식된 이미지는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되고 서버에서는 업로드된 이미지를 분석하고 처리해 최적의 보행 경로를 제안한다. 이때 글라이던스만의 AI 이미지 인식 기술이 활용된다. 

 

“공원에서 같은 높이의 보행로와 잔디밭 길이 있을 때 어떤 길이 걷기에 더 편할지 AI가 판단합니다. 또 횡단보도나 엘리베이터 같은 주요 지점을 인식해 사용자에게 적절한 길을 안내하죠. 기존에 출시된 GPS 기반의 지팡이와는 차별화된, 글라이드만의 기술입니다.” 

 

글라이드는 저장된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길에 대한 판단을 제공한다. 이런 기술 덕분에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실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AI는 한 번 지나간 경로를 학습하는 능력도 있다. 만약 사용자가 병원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이후 글라이드는 자동으로 해당 경로를 기억하고 안내할 수 있다. 밀러는 “(글라이드에는) 머신러닝 기술이 탑재돼 사용자들이 더 많이 사용할수록 학습량이 많아지고 더욱 똑똑해진다”고 설명했다. 

 

글라이드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사용자의 걸음걸이에 맞춰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밀러는 이 기술을 “옆에서 사람이 부축해서 걸을 때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눈을 감고 옆 사람의 보조에 발맞춰 걷는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살짝 힘을 줘 옆으로 가려 하면 보조하는 사람은 그 의도를 파악하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방향을 틀어준다. 하지만 내가 향하는 방향에 위험한 장애물이 있다면 보조하는 사람은 내 팔을 살짝 잡아끌어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글라이드는 이렇게 사용자의 걸음 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조절하는 관성 측정 장치와 위험한 상황에서 급정거할 수 있는 동적 속도 조절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

 

▲Glidance
글라이던스의 CEO이자, 글라이드 개발자인 에이모스 밀러(가운데). 그는 20대에 색소망막증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실사용자의 피드백이 발전의 원동력

 

밀러는 영국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협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협회 내 시각 장애인들에게 글라이드 시제품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의견을 받아 기술 개선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용자 중 한 분이 글라이드를 가지고 마라톤에 나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요구였죠. 이전까지 글라이드는 보행 보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사용자의 보행 속도를 감지하는 기능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요청을 받고 나서 속도 감지 및 조절 기능을 추가했어요. 이제는 글라이드와 함께 안전한 트랙을 달리는 것도 가능하죠.”

 

글라이드를 사용한 사람들은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개선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중에는 전설적인 ‘맹인’ 음악가 스티비 원더가 제안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원더는 “이 기기(글라이드)를 사용하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글라이드는 주로 안전한 환경에서 시험해서 위험 상황 대비는 깊이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시각 장애인이 혼자 이동하는 상황에서 공격을 받거나, 글라이드를 탈취하려는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요.” 원더의 질문을 바탕으로 개발팀은 긴급 호출 기능을 가진 ‘원더 버튼’을 추가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보호자나 긴급 구조 서비스에 자동으로 연결되며, 사용자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사용자의 보행 속도를 감지해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 언덕길에서 속도를 조정하는 브레이크 시스템 등 실사용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밀러는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하고 남긴 의견이야말로 글라이드 발전의 핵심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글라이드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거의 마쳤다. 2025년 하반기,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초기 판매가는 1499달러(한화 약 210만 원)로 책정됐다. 시각 장애인의 이동을 혁신할 기술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만큼, 개발자의 기대 또한 클 것이다. “글라이드가 시각 장애인들에게 어떤 의미이길 바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밀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오늘날 시각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외출하는 방법은 지팡이나 안내견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활용하는 사람은 전체 시각 장애인의 약 2%에 불과합니다. 즉, 98%는 가족의 도움에 의존하며 혼자서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로 인해 고립과 우울증을 겪고 있죠. 저는 글라이드를 통해 시각 장애인들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주저함 없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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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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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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