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향한 긴 여행이 시작됐다. 8월 5일 오전 8시 8분(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 한국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가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시 48분 다누리가 팰컨9 발사체에서 분리됐고, 9시 40분 지상국과 교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 있는 다누리 관제실에서는 스페이스X로부터 전달받은 발사체 분리 속력, 분리 방향 등의 정보를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다누리가 발사체로부터 정상 분리돼 목표 궤도에 진입한 것을 확인했다.
다누리는 앞으로 135일 동안 595만 6000km를 이동한 뒤 올해 12월 17일께 달 궤도에 안착할 예정이다. 향후 1년간 달 착륙 후보지 탐색을 비롯해 달 표면 전체 편광지도, 달 궤도 우주인터넷 연결 등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탐사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현재 무인 달 착륙에 성공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3개국이다. 달 궤도선 탐사에 성공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6개국이 전부다. 이번 탐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일곱 번째로 달 궤도선 탐사에 성공한 국가가 된다.
앞서 6월, 한국은 최초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를 발사해 위성을 저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 다누리는 누리호 대신 팰컨9에 실려 발사됐다. 누리호는 최대 고도 800km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데, 다누리는 달의 궤도까지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더 높이 쏘아 올릴 수 있는 발사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30년에는 누리호 기술로 만든 차세대 발사체로 달 착륙선 발사를 시도할 계획이다.
3일이면 가는데 135일 걸쳐 돌아가는 이유
다누리가 달까지 가는 궤도에는 특징이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 직선거리는 약 39만 km로, 사흘이면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다누리는 굳이 15배가량 먼 길을 돌아간다. 이동시간도 10배 넘게 걸린다.
얼핏 보면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연료를 절감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탄도형 달 전이궤적’이라 하는 이 궤적은 발사체가 밀어준 힘으로 우주로 향하고, 태양, 지구, 달 등 주변 천체들의 중력 효과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다. 미국과 일본만 성공했을 정도로 매우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실제로 다누리는 발사된 뒤 태양 중력에 이끌려 지구와 멀어져 L1 라그랑주 점 근처까지 항행한다. 여기서 지구 방향으로 궤적을 수정한다. 달이 지구 남쪽에 있을 때 달과 함께 지구 반 바퀴 정도를 돌고, 달이 지구 북쪽에 오게 되면 달 궤도에 진입한다. 박재익 항우연 위성항법팀 선임연구원은 “달에 진입할 때 이미 속도를 줄이고 있는 상태라 직진으로 향할 때보다 연료를 20%가량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누리는 탐사선치고 작은 편이라 효율을 높여야 한다. 일본 달 탐사선 셀레네가 3t(톤)이었던 반면 다누리는 678kg으로 5분의 1 수준이다. 연료도 260kg으로 상대적으로 조금 들어간다. 다누리가 달까지 가려면 연료를 아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돌고 도는 궤도가 탄생했다.
직선 경로로 가지 않고 탄도형 달 전이궤적으로 항해하는 덕에 약 150만 km 떨어진 심우주에서 지상국과 통신 기술을 검증할 기회도 생겼다. 박 선임연구원은 “항법, 통신기술, 궤적 설계 기술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장”이라며 “달에서 1년간 과학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해야 정말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누리로 세계 최초의 편광지도 제작
다누리는 크게 본체와 탑재체로 구성된다. 탑재체는 총 6기가 실렸다. 이 중 5개는 국내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만들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했다. 목표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 달의 극지방을 지나는 원궤도를 따라 돌면서 6종의 탑재체로 달을 관찰할 예정이다.
본체는 임무 궤도를 유지하고, 탑재체가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탑재체에는 광시야편광카메라, 우주인터넷탑재체, 감마선분광기, 영구음영지역카메라, 자기장측정기, 고해상도카메라 등 고성능 장비 6종이 있다.
달 표면 전체 편광지도를 만드는 시도는 세계 최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광시야편광카메라를 이용해 달 표면의 고해상도 티타늄 지도와 편광지도를 제작할 예정이다. 우주탑재체에 편광이 들어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민섭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선임연구원은 “태양빛이 표면에 부딪힌 다음 돌아올 때 반사된 면의 특징에 따라 편광되는 정도가 달라진다”며 “편광카메라로 표면을 관측하면 그 표면의 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편광카메라로 토양의 입자 크기와 밀도 등을 알 수 있다. 정 선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달의 공극률은 70~90%, 지구는 50~60% 사이인데, 이를 분석하면 달 표면의 온도를 분석할 수 있다”며 “달에 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와 함께 태어난 달은 풍화작용이 없어 보존이 잘 돼 있다. 정 선임연구원은 “달 표면은 한 번 사건이 생겨 지형이 바뀌거나 용암이 분출되면 그대로 남아있다”며 “달을 관측하면 지구의 과거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달 탐사의 상징 곡은 ‘다이너마이트’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ng the stars ♬
(나를 달로 보내주오, 별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게)
아폴로시대를 상징하는 곡은 단연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다. 아폴로 계획은 NASA의 달 탐사 계획으로, 탐사가 진행된 1961년부터 1972년까지를 흔히 아폴로시대라고 부른다. 달 표면에 찍힌 닐 암스트롱 발자국이 이 시기에 나왔다.
이 곡은 원래 달 탐사와 상관이 없었다. 1954년 ‘다시 말해서’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달 탐사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1964년 편곡했다. 아폴로 10호와 아폴로 11호는 이 곡을 녹음한 테이프를 싣고 달로 떠났다. 그리고 달 궤도선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미국 달 탐사의 상징곡으로 남아있다.
한국 달 탐사의 상징 곡은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누리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우주인터넷탑재체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ETRI 홍보영상, 심우주탐사용우주인터넷 기술 설명 영상을 비롯해 다이너마이트 음원 파일이 들어있다. 이 파일을 재생해 지구로 보내는 시험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는 향후 국제 우주탐사 때 궤도선, 착륙선 등의 통신에 적용될 예정이다.
이외에 경희대 연구팀이 설계한 자기장측정기로는 태양과 지구, 달 사이 우주환경을 연구한다. 달의 자기장을 분석하고 자기장 이상 지역을 파악해 ‘달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달 표면 자기 이상 지역의 진화와 기원’ 등을 밝힐 예정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만든 감마선분광기로는 산소, 철, 칼슘, 티타늄, 규소, 라돈, 자연방사성원소 등 다양한 원소를 분석해 원소 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원소 지도가 있으면 달 착륙 때 현지에서 확보할 자원을 가늠할 수 있다.
달궤도선 다음은 달착륙선과 유인 우주선
항우연이 개발한 고해상도카메라는 달착륙선 착륙 후보지를 탐색한다. 정부는 2030년대 초까지 한국형 달착륙선을 발사할 예정이다. 이번 탐색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향후 달착륙선 개발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유일한 외국산 탑재체인 NASA 영구음영지역카메라는 해상도 1.7m의 카메라를 이용해 달 남북극지역의 충돌구 속에서 일 년 내내 햇빛이 들지 않는 영구음영지역을 촬영한다. 달 극 지역은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물이 얼음 상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유인 탐사 후보지로 꼽힌다.
NASA는 2025년까지 달에 우주인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임무를 준비 중이다. 다누리는 달 유인 착륙에 적합한 후보를 선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한다. 한국과 미국 사이 첫 우주 협력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는 한국도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한 달 환경 관측 장비 ‘루셈(LUSEM)’이 2024년 달로 떠날 예정이다. 기존에 관측하지 않았던 영역의 에너지를 측정한다. 다누리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누리의 현재 위치는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109쪽 QR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