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가 금성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형태와 원인은 다르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행성의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금성의 기후변화는 지구의 기후변화를 한 층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 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우주적 스케일로 바라보게 합니다. 따끈따끈한 금성의 기후변화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금성은 우리 태양계 내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크기와 질량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처럼 땅과 대기가 있으며 위치도 지구로부터 가장 가깝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많이 다릅니다. 대기가 지구보다 91배 두꺼우며, 그 대기의 96%가 이산화탄소입니다. 계산해보면 지구보다 22만 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켜 표면 온도가 460도가량으로 매우 높습니다.
두께 20km 황산 구름층 속에서 무슨 일이?
그런 금성에서도 지금 이 순간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다양한 관측자료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금성 탐사선 ‘비너스 익스프레스’와 ‘아카쓰키’가 보내온 데이터, 허블우주망원경의 관측결과와 수성 탐사선 ‘메신저’가 금성을 근접 통과하며 관측한 내용을 종합해보니 지난 10년간 금성의 태양빛 반사도(알베도)가 최저에서 최대까지 약 2배나 변했다는 사실을 2019년 8월 확인했습니다. doi: 10.3847/1538-3881/ab3120
이는 금성의 대기층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였습니다. 금성의 대기에는 지상 50~70km 지점에 두께가 약 20km인 두꺼운 황산 구름층이 있는데, 이것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고 산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황산 구름층 속에는 미확인 흡수체가 존재합니다. 미확인 흡수체는 행성 연구자들이 수십 년간 인공위성과 탐사선으로 조사했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황화합물이나 이산화황, 염화철(FeCl3), 혹은 구름 속에 부유하는 미생물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미확인 흡수체가 자외선부터 가시광선까지 넓은 파장대의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금성의 태양빛 반사도, 즉 태양에너지 흡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미확인 흡수체의 양이 늘면 반사도가 감소하면서 구름층이 있는 고도의 대기 온도가 올라가게 됩니다. 반대로 미확인 흡수체의 양이 줄면 반사도가 증가하면서 구름층이 있는 고도의 대기 온도가 내려갑니다.
이번에 발표한 금성 관측결과는 구름의 반사도가 60~70km 고도의 대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흔히 기후변화라고 하면 지표상의 변화를 떠올리는데 금성의 기후변화는 그것과 다른 셈입니다. 덧붙여, 금성의 기후변화가 행성에 유입되는 태양에너지의 변화로 발생하는 반면, 현재 지구의 기후변화는 지구 표면에서 방출되는 복사에너지가 대기의 온실가스에 가로막혀 발생합니다.
평소보다 45% 더 뜨겁고, 바람 30m/s 더 빨라져
이번에 관측된 금성의 태양빛 반사도 변화량은 놀라울 정도로 컸습니다. 대기 온도는 물론 바람의 세기를 좌우할 만큼의 에너지를 더하거나 줄일 수 있는 변화였습니다. 반사도가 최저일 때는 태양열에 의해 가열되는 정도가 10년 평균보다 45%나 늘고, 반사도가 최고일 때는 태양열에 가열되는 정도가 평소보다 25%나 줄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금성의 대기 대순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입니다. 반사도가 낮아지면 구름층이 태양열에 의해 더 많이 가열되고, 결과적으로 대기 대순환이 강해집니다. 대기 하층에서 상층으로 이동하는 에너지는 상층의 바람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전구수치모델로 계산해보니 관측된 반사도 변화량은 바람의 속도를 초속 30m나 더 빠르게, 또는 더 느리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실제 지난 10년간 금성에서 관측된 초강풍의 속도 변화량과도 일치합니다.
금성의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이 미확인 흡수체의 양을 바꾸는 걸까요. 몇 가지 의심되는 후보들은 있습니다. 태양의 11년 활동주기가 영향을 주거나, 태양계 외부에서 유래한 우주선 입자가 구름 형성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금성의 대기 중 이산화황 가스가 황산 구름층에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금성 관측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변화의 원인을 찾으면, 금성의 기후변화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추측도 가능해지겠죠.
금성이 기후변화를 겪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수 억 년 전에는 금성이 생명체가 발생하기에 적당한 기후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먼 과거에는 금성이 지구와 비슷한 양의 물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관측자료들도 존재하고요. 금성이 과거 어느 시점에 충돌과 같은 외부의 충격, 혹은 대규모 화산폭발 같은 내부 변화를 겪지 않았다면 지구처럼 생명체를 보유할 수 있는 기후를 유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반대로 현재 금성과 지구의 엄청난 차이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구형 외계행성들이 연이어 발견되고 있는 요즘, 금성의 기후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0월 우리 모두 금성 관측해요~
이번 금성의 기후변화 연구는 2014년에 시작했습니다. 논문으로 발표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공위성 한 기의 데이터만으로는 이것이 진짜 금성의 기후변화인지 관측 장비가 노후된 결과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공위성 네 기의 관측결과를 비교하고 분석해서 금성의 기후변화임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5개 나라 18명의 연구원들과 협력했습니다. 현대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행성 연구에서는 특히나 국제협력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진행하는 행성 탐사선이 아직 없고, 주로 해외의 탐사선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행성 연구자에게는 자립성도 필수 덕목입니다. 전 세계로 동료를 찾아가며 연구를 진척시켜야 하니까요. 외로운 생활이기는 하지만, 지구 밖의 관측자료를 세상에서 가장 먼저 다룬다는 쾌감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과학동아 독자분들 중에 만약 행성 연구자를 꿈꾸는 분이 있다면, 행성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분야는 정말 다양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주변만 봐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전공한 사람부터, 지질학, 화학, 생물학 전공자까지 다양합니다. 행성의 내부부터, 지표, 생물, 대기, 이온층, 태양풍과의 상호작용까지 아우르는 연구가 바로 행성 연구죠. 심지어 외계행성으로 연구 분야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와 수학, 영어 같은 기초 공부에는 꼭 투자하길 권유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저는 지금 흥미진진한 한 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과 2021년 8월, 유럽우주국(ESA)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개발한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가 수성까지의 여정 중에 금성 근접 관측을 실행하는데, 이 시기에 맞춰 금성 탐사선 아카쓰키와 지상 망원경으로 금성을 공동 관측하는 국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여러 관측지에서 금성의 밤과 낮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다양한 파장 관측은 금성의 자료를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행성 연구자를 꿈꾸는 과학동아 독자들, 한국의 전문가, 아마추어 천문가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