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우 미국 브로드연구소 교수팀이 모든 유전질환을 최대 89%까지 치료할 수 있는 최신 유전자 가위 기술인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2019년 10월 21일자에 발표했다. 브로드연구소는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 설립한 생명과학연구소다. 그간 가장 앞선 유전자 가위로 꼽혀온 ‘크리스퍼(CRISPR)-캐스9’는 유전자 교정 성공률이 10% 이내여서 사실상 유전자 치료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27년 벨기에에서 개최된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불확실성이 큰 미시세계를 구술하기 위해 당시 막 태동했던 양자역학의 논리를 부정하며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주사위 놀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실재하며 우연의 산물로 가득 차 있다.
생물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생명체가 사는 지구의 물리적, 생물학적 환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얼마나 변할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우연히 이뤄지는 것들이 많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몸속에서는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유전자 수준에서 돌연변이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돌연변이의 무작위성이 때로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전질환이 나타난다. 특히 체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그나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서 끝나지만, 생식세포에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쳐 질병이 대를 이어 유전될 수 있다.
현재 유전질환은 대부분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 있을 뿐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만약 돌연변이 유전자만 필요에 따라 조정해 정상 유전자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진화와 다양성이라는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속성은 보존하면서 유전질환이 주는 고통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 가위를 통한 유전자 교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 가위의 대명사 ‘크리스퍼’의 한계
흔히 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캐스’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 생체 분자 기계다. 크리스퍼는 자르고자 하는 목표 DNA 부위로 찾아가서 달라붙는 가이드 RNA이며, 이와 짝을 이루고 있는 캐스는 DNA를 실제로 잘라내는 단백질이다. 가령 ‘크리스퍼-캐스9’는 ‘캐스9’라는 단백질을 절단 효소로 쓴다는 뜻이다.
원래 크리스퍼-캐스 복합체는 박테리아에 침입한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박테리아가 갖춘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에 침입해 자신의 DNA를 주입하면 박테리아는 자신의 번식에 큰 타격을 입는다. 박테리아는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가 계속 증식하는 소위 ‘병참기지화’에서 벗어나는 체내 시스템이 필요했고,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 자신을 보호하는 면역체계의 일종으로 크리스퍼-캐스 복합체를 갖췄다.
여기서 크리스퍼의 중요한 특성이 하나 있다. 자신의 DNA와 바이러스의 DNA를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DNA의 염기서열(시퀀스)을 알아채고 이를 잘라낸다. 크리스퍼-캐스9와 같은 유전자 가위 기술은 DNA의 특정 시퀀스를 인식하는 능력을 활용한 것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약 30억 쌍의 DNA 시퀀스로 구성된 매우 복잡한 구조여서 필요한 부위를 정확히 잘라내고 원하는 유전자로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다. 그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원하는 DNA 부위를 잘라낼 수 있게 됐지만, 진정한 유전자 교정 기술로 부르기에는 두 가지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우선 원하는 DNA 시퀀스를 인식해 정확히 절단할 수는 있지만, 절단된 부위를 필요한 유전자로 바꾸기 위해서는 해당 DNA 시퀀스를 별도로 넣어줘야 한다. 유전자 교정이 DNA 시퀀스를 자른 뒤에 붙이고 봉합까지 해야 완성된다는 관점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불완전한 셈이다. 무엇보다 DNA 시퀀스를 별도로 넣어 교정한 성공률이 10% 아래로 낮다는 점도 문제였다. 성공률이 1%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프라임 에디팅으로 최대 89% 치료
그런데 리우 교수팀이 개발한 프라임 에디팅은 다르다. 크리스퍼-캐스9로 대표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단점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퍼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 중이던 ‘베이스 에디팅(Base editing·염기 교정)’의 단점까지 해결했다. doi: 10.1038/s41586-019-1711-4
베이스 에디팅 기술은 DNA의 염기서열을 인식해 자르는 크리스퍼-캐스9와 달리 염기 중 아데닌(A)과 시토신(C)을 각각 구아닌(G)과 티민(T)으로 치환하는 교정 기술이다. 이렇게 염기를 치환하면 해당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질환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인간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 베이스 에디팅 기술로 A-T 염기쌍이 G-C 염기쌍으로 변환됐고, 변환 효율이 최대 50%로 기존의 유전자 교정 기술보다 현격히 높아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doi: 10.1038/nature24644
하지만 베이스 에디팅 기술도 한계는 있다. 가령 아데닌(A)을 티민(T)으로 바꾼다든지, 시토신(C)을 구아닌(G)으로 바꿀 수 없다. 더군다나 몇 군데 비어 있는 DNA를 채운다든지, 불필요하게 중복된 부위를 제거하는 등 DNA를 다듬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리우 교수팀은 두 가지 기법을 적용한 프라임 에디팅 기술로 이런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다. 일단 DNA의 시퀀스를 자를 때 사용하는 절단 효소인 캐스9를 변형해 DNA의 이중나선을 모두 자르는 대신 한 가닥만 잘리게 했다. 또 캐스9는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와 복합체로 만들었다.
두 번째는 대체하고 싶은 시퀀스가 들어 있는 가이드 RNA를 사용했다. 가이드 RNA가 인식한 부위를 변형된 캐스9 단백질이 자르면, 역전사 효소가 가이드 RNA에 있는 시퀀스로 잘린 부위를 채워 넣었다. 특히 이렇게 하면 아데닌(A)을 티민(T)으로, 시토신(C)을 구아닌(G)으로도 바꿀 수 있다.
연구팀은 프라임 에디팅을 이용해 175가지 종류의 유전자 교정 실험을 진행한 결과 교정 성공률이 최대 70%에 달하며, 전체 유전질환의 89%를 치료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 예로 낭포성 섬유증이 있다. 이 병은 기도세포에 있는 ‘CFTR’이라는 유전자에서 508번 페닐알라닌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에 결손이 생겨 나타난다. 이로 인해 기도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면 기도가 좁아지고 병원균에 의한 감염이 증가한다. 또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세포에도 피해를 줘 당뇨 질환을 유발한다. 프라임 에디팅 기술로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기도나 췌장에서 결손 유전자를 복구할 수 있다.
또 염색체 11번에 있는 아데닌(A)과 티민(T)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낫 모양의 적혈구가 생성돼 심각한 빈혈을 유발하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중추신경계가 파괴되는 테이삭스병(Tay-Sachs disease) 등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유전질환 완치에 희망이 생긴 것이다.
시퀀스가 무작위로 바뀐다?
프라임 에디팅을 유전질환 치료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까. 프라임 에디팅 기술은 자동차에 비유하면 가솔린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로 바뀐 것만큼 획기적인 발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연료전지가 꾸준히 발전해야 하고, 충전소 같은 인프라도 설치돼야 한다. 프라임 에디팅 기술 역시 이런 기술 성숙화 기간이 필요하다.
리우 교수도 논문에서 프라임 에디팅 기술을 적용했을 때 원하는 시퀀스로만 교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시퀀스가 무작위로 변형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 기도나 췌장처럼 원하는 위치에 프라임 에디팅의 구성 요소들을 전달하는 기술도 부족하다.
현재 유전자 치료에서 전달체로 널리 사용되는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프라임 에디팅에 사용되는 유전자가 너무 커서 어렵다. 또 프라임 에디팅에 사용되는 각 단백질 성분이 사람의 것이 아닌 만큼 면역거부 반응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개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원천 기술이 개발된 뒤 이를 뒷받침할 보조 기술이 따라서 성장한다. 프라임 에디팅도 앞으로 보조 기술이 발전할 것이다. 유전자 교정 기술이 완성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유전질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혁신적인 유전자 치료제가 공급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