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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광물이야기11 ‘생얼’이 더 아름다운 광물 형석(Fluorite)




나태주 시인이 쓴 이 시구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 실은 누구나 사랑받을 만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본질’을 알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에게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광물이 있다. 바로 ‘형석’이다. 형석은 칼슘과 불소가 결합한 할로겐광물로, 열을 가했을 때 마치 촛농처럼 녹아 흘러내리는(flow) 특성에서 그 이름(fluorite)이 유래했다. 원자번호 9번인 불소(fluorine)의 이름도 형석에서 따 왔고, 자외선을 비추면 형광 빛이 나오는 형광현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광물도 형석이다. 그래서 형광현상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자체가 ‘fluorescence’다. 형광등도 바로 이 형광현상의 원리를 이용한 조명이다.

사진의 표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 케이프 주의 리엠바스마크(Riemvasmaak)에서 산출된 것이다. 에메랄드 빛의 밝은 색상도 아름답지만, 피라미드 모양의 결정 내부에서 은은히 비쳐 보이는 또 다른 결정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결정 모양이 내부에서 겹겹이 비쳐 보이는 것을 유령현상이라고 하는데 투명한 광물 결정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리엠바스마크 형석은 2006년 뮌헨 광물 보석 전시회에 등장해 광물 수집가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사실 이 광물은 1970년대에 이미 요하네스 지질박물관에서 먼저 선보였다. 하지만 그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필자도 1987년 요하네스 지질박물관에 들러 훌륭한 광물 표본들을 볼 수 있었고, 아마 이 형석도 봤을 것이다. 하지만 매력이 없었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광물도 화장이 필요하다

30년이 넘게 무명으로 지내던 이 형석이 갑자기 인기몰이를 하게 된 이유는 누군가 이 광물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처리 방법을 알아 낸 덕택이다.

처음 선보였을 당시 리엠바스마크 형석은 생성 과정에서 이차적으로 형성된 석영의 미세결정에 뒤덮여 본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손상을 막기 위해 왁스로 보호막을 입히고 형석 표면을 덮은 석영 막을 용해시키자, 그동안 감춰졌던 아름다운 형석의 ‘생얼’이 세상에 나타났다.

사람은 약점을 감추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목적으로 화장을 한다. 때로는 얼굴 윤곽 자체를 바꾸기 위해 성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형미인’, ‘자연미인’이라는 표현도 생겼다. 하지만 수집용 광물은 성형 같은 인위적인 조작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자연미인만 인정받는다. 자연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표면 오염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정도만이 허용될 뿐이다. 사람의 화장과는 반대로 숨겨진 민낯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광물의 화장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수집용 광물은 채굴된 상태에서 이런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리엠바스마크 형석은 뒤늦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나의 손으로

수집의 결정적 요소는 인연이다. 공산품이 아닌, 자연의 예술품인 광물은 특정한 시간, 바로 그 장소에서 수집 대상물과 마주쳐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그 수집 대상물에 대한 가치와 비용을 저울질할 수 있는 안목이 그 기회를 잡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필자가 이 표본을 손에 넣은 곳은 방문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니고 훌륭한 표본들을 선보이는 뮌헨 광물 전시회 같은 곳도 아니다. 2011년 어린이날을 전후로 딱 한 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광물 전시회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난 것이다. 이 표본을 보자마자 필자는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자리에서 갖고 있던 중국산 형석 두 점과 약간의 현금을 독일에서 온 광물 딜러에게 얹어 주고 표본을 얻었다.

형석은 보라색에서 붉은 색까지, 무지개같은 다양한 색상과 교과서 같은 기하학적결정을 가져 광물 수집가들의 인기 수집 대상이다. 겉모습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쓰임새도 다양하다. 주로 화학 약품인 불산과 충치 예방용 치약에 들어가는 불소를 추출하는 원료 광석으로 쓴다. 순수하고 투명한 형석은 초미세 가공이 요구되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장비인 스태퍼(stepper, 반도체 기판에 회로 패턴을 가공시키기 위한 장비)용 초정밀 카메라 렌즈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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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지섭 민 자연사연구소장
  • 사진

    김인규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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