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미테이션 게임’과 영드 ‘셜록’의 공통점은?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을 다룬 영화와 최고 인기의 탐정이 나오는 영화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거지, 라고 고민한다면 실망스럽다. 답은 간단하다.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인공을 맡았다. 자폐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연기로는 당대 최고인 이 배우가 발명왕 에디슨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커런트 워’에 출연한단다.
오늘의 주인공은 전기니 아쉽지만 베네딕트는 떠나보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에디슨이 사랑했던 전기로 돌아가는 세계다. 그런데 표준과학자들은 뭔가 찜찜하다. 전류의 단위인 암페어(A)의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보자. 1 A는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 중에서 1미터의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두 도체 사이에 매 미터당 2×10-7 뉴턴(N)의 힘이 생기게 하는 일정한 전류’라고 돼 있다(국제도량형총회 1948년 기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전류를 왜 이렇게 복잡하게 정의해야 하는가. 전기는 전자가 이동하기 때문에 흐른다. 그렇다면 1 A는 ‘이만큼 많은 전자가 흘렀을 때 전류의 세기’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는 걸까. 아쉽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전자 하나가 흘러갈 때 얼마나 약한 전류가 흐르는지 도대체 측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류를 다루는 표준과학자들은 미터같이 간단하면서도 정교한 단위를 볼 때마다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답은 간단했다. 전류는 전자 하나의 전하량(e)과 주파수( f )의 곱이다. 주파수는 매우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자 하나의 전하량을 상수로 보고, 전선을 통과하는 전자의 개수만 정밀 측정하면 된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전자 하나만 흘려보내는 펌프
“이 안에 전자 하나만 흘려보내는 장치가 들어 있어요.”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의 배명호, 김남 연구원은 막대기 모양의 20 cm 길이 장치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금속 막대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단일전자 펌프’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전자 하나하나를 가뒀다가 통과시킨다. 일정한 시간 안에 몇 개의 전자가 통과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으니 전류를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새로운 전류 표준의 목표는 소수점으로 치면 8번째 자리까지 전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류(암페어)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것은 물론 전류를 정의하는 것도 매우 쉬워진다. 두 평행한 도체가 어쩌구 할 필요가 없다.
“단일전자 펌프는 양자역학을 이용해 만든 장치예요. 양자점이라고 하는, 전자 하나만 빠질 수 있는 우물 모양의 소자를 만든 뒤 앞뒤로 장벽을 만들죠. 이 장벽의 한쪽만 낮추면 전자가 양자점으로 들어오고, 다시 반대쪽 장벽을 낮추면 전자가 빠져나가요.”
2012년 영국에서 최고 수준의 단일전자 펌프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표준연이 올해 2월 공개한 이 펌프도 성능이 같은 수준이다. 배명호, 김남 연구원은 “전자는 양자역학에 따라 희한하게 움직이는데 높게 쌓은 장벽을 뚫고 나갈 때도 있다”며 “이걸 막기 위해 4 K(영하 269 ℃)의 초저온에서 제품을 만들고 실험한다”고 설명했다. 두 연구원이 만든 단일전자 펌프에 대한 연구는 올해 이 분야의 최고 전문지인 ‘메트롤로지아’ 2월호에 실렸다.
나노반도체 개발에 필수
꼭 이런 정밀한 장치를 만들어야 할까. 사실 정의만 좀 복잡할 뿐 지금도 암페어를 정밀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배명호, 김남 연구원은 고개를 저었다. 암페어를 전자 하나 단위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건 ‘측정’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 반도체죠? 반도체가 나노 단위로 작아지면서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세한 전류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반도체의 성능도 정확하게 맞추고 불량률도 낮출수 있어요. 수익률에서 큰 차이를 낳지요.”
더구나 미래에는 전자 하나를 이용한 전자소자가 개발될 것이다. 양자컴퓨터나 양자정보통신 기술 말이다. 이른바 양자공학의 세계가 열린다. 두 연구원은 “이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 하나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수”라며 “2018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단일 전자 펌프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