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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2022년, 인간 단백질 지도 완성한다”

세계인간프로테옴기구(HUPO) 2014 가보니



질병과 약의 비밀, 단백질로 푼다

“10년 내에 인간의 질병과 약에 대한 커다란 수수께끼를 풀어낼 것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윌리엄 행콕 HUPO 부회장(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은 “2022년 9월 ‘염색체 기반 인간프로테옴프로젝트(C-HPP)’가 완료되면 인간의 모든 단백질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질병이 발생하는 원리 규명과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테옴 연구의 발단은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생명의 설계도’로 불리는 인간 게놈이 해독되면서 과학자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각 유전자가 무슨 단백질을 만들고 어느 세포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설계도만으로는 인간을 구성하는 ‘부품’ 즉 단백질에 대한 정보까지 알 순 없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설계도가 가리키는 위치에 부품이 실제로 있는지, 각 부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2008년 남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인간프로테 옴프로젝트(HPP)’ 첫 번째 워크숍이 열렸다. 여기에는 간이나 뇌, 혈장 속의 단백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하지만 연구하는 부위나 방법이 다르다 보니 결과물을 공유하기 어려웠고 구체적인 계획을 설정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에 인간 게놈 연구 때 사용했던 전략을 활용해 유전자 순서대로 단백질을 분석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 결과 2012년 9월 10일 염색체를 기준으로 삼은 ‘염색체 기반 인간프로테옴프로젝트(C-HPP)’가 공식 출범했다. 이 프로젝트는 10년 뒤인 2022년 9월 9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현재 상염색체 22개와 성염색체인 X, Y 그리고 미토콘드리아를 분석하는 그룹까지 총 22개국 25개 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단백질을 만드는 인간 유전자는 2만300개인데, 유전자 하나가 약 10가지의 단백질을 만들고 상황에 따라 각 단백질의 특성이 마구 바뀐다는 점이다. 더구나 유전자가 가리키는 단백질의 ‘주소’를 따라가도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이번 학회에서는 ‘미확인(missing) 단백질’을 더 빨리, 더 많이 찾는다양한 기술이 소개됐다. HPP 회장인 길버트 오멘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지금까지 시료 속의 특정 단백질을 찾기 위해 질량을 분석하거나 항체 등을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RNA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미확인 단백질의 80%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장(IFEMA)에서 열린 ‘세계인간프로테옴기구(HUPO) 2014연례학회’에서 백융기 교수와 길버트 오멘 교수, 윌리엄 행콕 교수(가운데부터 오른쪽으로) 등이 인간프로테옴프로젝트의 연구방법을 표준화하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부위별 단백질 분석하고 초기 간암도 정확히 진단

이번 학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발표자는 아킬레시 팬디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였다. 마지막 날이었지만 팬디 교수의 발표장에는 200석 규모의 강의실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의 연구팀이 ‘네이처’ 5월 28일자에 인간프로테옴의 첫 번째 밑그림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팬디 교수팀은 성인 조직 17개와 태아 조직 7개,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 6개 등을 분석해 단백질을 만든다고 알려진 유전자의 약 84%에 해당하는 1만7294개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지 밝혀냈다. 팬디 교수는 “인간의 뇌, 간, 폐 등 각 장기에서 발견되는 특이 단백질을 확인한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결과 자체뿐만 아니라 방대한 시료를 분석한 연구 데이터를 완전히 공개했다는 점에서 이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데이터 처리가 부정확했다는 논란도 이어졌다. 오류발견율이 1% 미만이어야 하는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분석 과정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길이가 지나치게 짧은 것도 포함시켜 변이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번 HUPO에서는 이들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프로테옴 연구는 짧은 역사에도 벌써부터 실질적인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백융기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간암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표지 단백질(바이오마커)을 발견해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간암을 진단하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와 단백질을 활용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지고 간염, 간경화 등과도 구분이 안 됐다. 백 교수팀이 발견한 표지 단백질은 간암 환자에게만 발견된 것으로 초기 간암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세계 단백질 연구, 한국이 주도

HUPO 현장에서는 한국인 과학자의 리더십이 돋보인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HUPO의 창립 멤버이자 회장을 지낸 백 교수는 어디서나 환영과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현재 C-HPP 회장을 맡고 있다. C-HPP 본부가 설치된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의 정슬기 박사도 유명 인사였다. C-HPP의 25개 연구 그룹 가운데 한국 연구 그룹은 3개다. 백 교수팀이 13번 염색체를 맡았으며, 유종신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팀이 11번, 조제열 서울대 교수팀이 9번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연합하며 프로테옴 연구에서 한국의 힘을 과시했다.

앞서 소개한 팬디 교수팀의 연구도 김민식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가 제1저자로 연구를 이끌었다. 행콕 교수는 “한국인 과학자의 리더십과 추진력, 협력하는 능력이 젊은 과학자들의 뛰어난 역량과 결합하면서 C-HPP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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