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날짜로 2031년 9월 15일. 화성에 도착한 지 8개월이 지났다. 나는 지금 위대하고 기나긴 일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 나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발걸음이 될 어떤 일을. 우리 세대에는 결코 이룰 수 없고, 수백 수천 년이 걸려도 이루지 못할 도전. 바로 ‘테라포밍(terra-forming)’이다. 테라포밍은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문득 오래 전에 봤던 영화 ‘토탈리콜’의 아름다운 엔딩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는 2084년이 배경이었는데, 두 주인공 퀘이드와 멜로나는 온갖 고생을 해가며 공기제조 장치를 가동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장치에서 내뿜는 공기로 화성에는 곧 지구와 같은 대기가 만들어졌고, 영화는 그 장면에서 끝났다. 지금 화성 바이오돔을 건설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공기제조장치가, 한 순간에 대기를 만들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지구보다 아름다운 화성의 노을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화성의 노을은 아직 지구와 달리 파랗고 낯설다.
지구 대기 가져가 화성에 심는다
나는 우리가 지은 바이오돔을 바라보고 있다. 바이오돔은 지표면 위에 마치 뚜껑을 덮은 듯한 폐쇄형 시설이다. 이 시설을 지은 가장 큰 목적은 자원의 재사용이다.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화성에서는 산소, 물, 식량과 같이 필요한 모든 자원을 재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기술만으로 화성 전체라는 넓은 지역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먼저 우리가 거주하는 곳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다. 바이오돔 안에서 우리는 완벽한 재활용, 재사용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영화에서와 같이, 공기제조 장치를 이용하면 얼마간의 산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약간 달라서,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살기에 충분한 양의 산소를 만들 수 없다. 대부분의 산소를 다른 방법으로 얻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지구에서와 같이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얻는 것이다. 돔에 거주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산소로 바꿔주고,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산소를 호흡한다. 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에는 나무의 잎을 먹고 자라 우리에게 천연섬유인 명주를 주고, 또 사람들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해 준다. 오래 전 사람들이 먹던 ‘번데기’가 2030년대에 화성에서 다시 부활할 줄이야! 처음에는 모양이 징그러워 못 먹었는데, 가공하거나 요리를 했더니 원래 모양이 없어져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또 화성에서는 단백질 공급원이 귀해 먹지 않고는 견딜 재간이 없다. 다행히 지금은 익숙해져서 즐기면서 먹는 상태다.
우리가 만든 폐기물과 우리의 배설물 역시 철저히 재활용된다. 이들은 주로 퇴비화 과정을 거쳐 식물의 성장에 활용된다. 퇴비화는 심비오박테리움 서모필룸(Symbiobacterium thermophilum)이나 고온성 바실러스(Bacillus) 등의 미생물을 이용한다. 소변은 증류 또는 여과를 해 물로 재사용하고, 요소는 비료로 이용하거나 암모니아로 전환시켜 연료전지에 사용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유기물은 미생물로 퇴비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유기물은 산소와 탄소, 그리고 질소 등으로 분해가 되는데, 이 때 나오는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 데 활용되고 나트륨과 칼륨 등은 해조류를 키우는 데 쓰인다. 해조류는 물론 우리의 식량이다. 해조류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질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바이오돔 안에서, 물질은 남거나 버릴 것이 없다.
▲ 지구에서 실험한 바이오돔 ‘바이오스피어2’. 지금은 미국 애리조나대가 소유하고 있다.
생존의 또다른 핵심인 산소와 물은 어떻게 얻을까. 화성의 토양에 있는 성분을 이용한다. 이 방법은 이미 2020년에 달과 화성에서 실험해 성공을 거뒀다. 달의 경우, 탐사용 로버(Rover)를 이용해 흙을 가열하면 수소와 산소, 수증기를 얻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면 물을 만들 수 있다. 화성의 경우, 토양에는 물이 약 2% 포함돼 있다. 따라서 토양에 열을 가하면 바로 수증기 형태의 물을 얻을 수 있다. 산소는 궁극적으로는 식물을 이용하겠지만,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얻거나, 화성 표면에 마치 비처럼 내리는 과산화수소를 화학적으로 변환해 얻을 수도 있다. 아직은 어렵지만, 미래에는 화성의 극지대에 있는 물과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서도 산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질만 얻는 게 아니다. 드라이아이스를 이산화탄소로 바꾸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 것이고, 화성 지표의 기온 역시 서서히 올라갈 것이다(화성의 기후에 대해서는 PLUS 참조). 이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산소로 바꿔줄 수 있다. 식물을 통한 광합성과 산소 생성! 바로 테라포밍의 핵심이자 완성이다. 테라포밍을 더 앞당기기 위해 아예 지구의 공기를 화성으로 가져가려는 계획도 있다. 화성은 지구보다 작기 때문에 지구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만큼(지구 대기의 약 20% 정도)만 가져간다면, 화성의 대기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또 지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화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화성의 차세대 탐사로봇 엑소마스는 ESA가 2018년 발사한(실제로는 발사할 계획인) 화상탐사계획의 로버다. NASA의 큐리오시티 등 드릴 장치를 지닌 기존의 로버가 겨우 10cm 미만의 깊이를 시추했던 데 비해, 무려 2m까지 시추할 수 있는 첨단 탐사선이다. 적외선 분광기(ISEM), 팬캠(PanCam), 유기분자분석기(MOMA), 지면관통레이더(WISDOM)등을 장착해 지면 아래 얼음이 존재하는지 탐색하고 퇴적물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사진은 인공환경에서 실험하는 모습.
테라포밍의 시작 바이오돔
바이오돔에서 필요한 전기는 태양광발전이나 미생물 연료 전지를 이용해 얻는다. 한 때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이 논의됐지만, 안전성 문제로 접은 상태다. 물론 태양광발전이 쉽지는 않다. 화성은 지구보다 태양에서 1.5배 멀리 떨어져 있고, 먼지폭풍이 심해 태양광의 강도가 낮다. 따라서 우리는 먼지폭풍 위로 태양전지 풍선을 올린 뒤 케이블을 통해 전기를 내려 받는 방법을 개발했다. 풍선은 화성대기 밀도(0.015kg/m3)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로 채웠고, 표면에는 광전지를 붙였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광전지를 청소하거나 교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정도 수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 2018년 화성에 온 유럽우주기구(ESA)의 무인탐사선 엑소마스(ExoMars)를 찾기 위해 거주시설 밖으로 멀리까지 나가곤 한다. 차량에서 바라본 화성의 붉은 토양은, 지구의 흙에서 느꼈던 생명력과는 거리가 먼 황량함이 묻어난다. 화성의 지표면은 지구의 사막과 비슷하다. 고운 모래가 가득 덮여 있고, 군데군데 수십 센티미터 크기의 돌들이 흩어져 있다. 화성의 돌은 바람에 날린 먼지나 모래, 물에 의해 침식된다. 물이 흘렀거나 홍수가 발생했던 지역에서 침식된 돌은 모나지 않고 둥근 반면, 바람에 침식된 돌의 표면은 거칠고 곳곳이 패여 있다. 이 돌들의 광물질 성분은 질소, 인, 칼슘, 마그네슘, 철 등 지구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유기물이 없을 뿐이다. 문득 한국이 세운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 주변에서 봤던 지의류가 그리워진다. 지구의 극지역은 이곳에 비하면 얼마나 풍요로운가. 이곳의 흙도 지구처럼 비옥할 날이 올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먼지 속에 파묻힌 로버를 발견했다. 엑소마스다! 최첨단 장비를 지녀서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는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받은 녀석이다. 하지만 먼지폭풍으로 태양전지가 작동되지 않아 10여 년 간 방치돼 있었다. 수리해 사용하면 아이스브레이커(Icebreaker)로 코어를 얻는 것보다 화성의 지질 탐사 및 바이오돔 건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임무를 마치고 거주시설로 복귀했다. 다른 나라 대원들이 함께 모여 지구에서 보내온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화성에 최초로 거주하고 있는 우리 대원들이 올해의 인물 후보로 추천됐다는 소식도 있다. 우주개발의 큰 도약을 이룬 주인공이란 이유에서다.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 우리와 교대하기 위해 우주정거장을 출발해 이곳으로 오고 있는 다음 대원들의 연락이 두절됐다. 현재 지구 기지에서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작년 우리도 이곳에 오는 도중 몇 번이나 지구와 교신이 두절된 적이 있었는데 올해도 같은 현상인 것 같다.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두려움과 기대 속에 화성의 파란 노을이 저문다.
▶ 필자 주 | 이 글은 2030년대 시점에서 쓴 가상의 글이다. ▶ 최종일 교수(choiji01@chonnam.ac.kr) |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전남대학교 생물공학과에 재직중이다. 미생물을 이용한 유용물질 생산을 전공했지만, 우주나 극지와 같은 극한환경에서 미생물이 어떻게 대응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 한세종 박사(hansj@kopri.re.kr)| 극지 등 극한 환경의 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1999년 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남극세종과학기지 제24차 월동연구대로 참여했고, 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에서 극지생물분자공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