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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형 인간이 손해 보는 세상

똑같은 기상 시간을 강요하지 말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부지런함=성공’이라는 공식은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 속담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만들어 낸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새에게 잡아먹힌다”는 말처럼 억지로 일찍 일어나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과연 아침형과 저녁형 중 누가 더 나은 건지, 그저 다른 유형일 뿐인 건지 살펴보자.

얼마 전 눈길을 끄는 기사가 한바탕 인터넷을 달궜다. 저녁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보다 더 영리하며 장차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에는 해롱거리다가도 밤만 되면 정신이 맑아지는 저녁형 인간(바로 기자다)이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학술지 ‘성격과 개인 차이’에 이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12~16세의 청소년 887명을 아침형/저녁형으로 분류했다. 대상 학생 중 아침형은 26.5%, 저녁형은 31.6%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유형이었다. 이들의 귀납추리능력과 학업 성적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연구팀은 저녁형이 귀납추리능력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귀납추리능력은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직업과 관련이 있는 지능이다. 그러나 학업 성적은 아침형이 더 좋았다.





누가 더 뛰어날까?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위 연구를 소개하며 대표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토마스 에디슨, 나폴레옹, 어네스트 헤밍웨이, 저녁형 인간으로 찰스 다윈, 버락 오바마, 윈스턴 처칠등을 꼽았다. 이들은 서로 유형은 다르지만 제각기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아침형인지 저녁형인지는 그 사람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뜻일까. 먼저 저녁형과 아침형 인간이 서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자.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영국 서레이대, 호주 퀸즈랜드대 등으로 이뤄진 공동연구팀은 사람의 생체리듬 유형에 대한 리뷰 논문을 학술지 ‘국제 시간생물학’에 발표했다. 저녁형과 아침형 인간은 성인 중에서 약 40%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생리적, 심리적, 정신의학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 차이를 보였다.

아침형과 저녁형은 잠이 오게 만드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하루 농도 주기부터 달랐다. 아침형은 멜라토닌 분비가 시작되고,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드는 주기가 저녁형보다 평균적으로 3시간 빨랐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뒤의 코티솔 농도는 아침형이 저녁형보다 높았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오는 호르몬인 코티솔은 기상 직후에 많이 나왔다가 낮동안 서서히 줄어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을 개운하게 만들고 하루를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호르몬이다. 게다가 코티솔 농도가 높아지는 시간은 아침형이 더 빨랐다. 이런 호르몬의 차이는 아침형 인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덜 피곤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인지 능력에도 차이가 있었다. 아침형과 저녁형에게 하루 동안 일을 시킨 뒤 비교해보면 두 유형 모두 오후에는 정신이 맑았고, 인지 능력도 좋았다. 하지만 아침형은 오전에 성과가 좋은 반면, 저녁형은 저녁에 더 좋았다. 저녁형 인간은 저녁에 가까워질수록 인지 능력이 좋아졌고, 아침형은 반대로 오전 이후 계속 떨어졌다. 이런 경향은 낮동안 최대 12시간까지 이어졌다. 점심을 먹은 이후 성과가 크게 떨어지는 경향은 아침형에게서는 뚜렷했지만, 저녁형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낮 동안 인지 능력이 변하는 게 좌뇌/우뇌의 활동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오른손잡이를 대상으로 서로 다른 시각에 순간주의력측정 시험을 한 결과 좌뇌형은 오전에, 우뇌형은 저녁에 유리했다. 이후 연구에서 아침형은 논리적·분석적인 좌뇌형, 저녁형은 직관적인 우뇌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둘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아침형이 유리했다. 저녁형은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다. 낮 동안 햇빛을 적게 받고 밤에 빛(조명)을 많이 받으며, 생활이 불규칙해 생체시계와 환경 사이에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침형·저녁형은 유전이 50%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으로, 혹은 그 반대로 습관을 바꿀 수는 없을까. 어떤 사람이 아침형이나 저녁형이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 살아가면서 유형이 변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말처럼 청소년 시기에 저녁형이었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침형에 가까워진다. 보통 청소년기에는 저녁형 성향이 두드러진다. 12살이 넘으면 점점 저녁형 성향이 증가하다가 20세쯤 멈추고 아침형 성향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시기를 사춘기가 끝나는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저녁형 성향이 극대에 이르는 시기가 이르다. 여성이 더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다.

성별 역시 영향을 끼친다. 상당수의 연구가 남성이 저녁형인 경우가 더 많다고 보고했다. 여성의 생체시계가 남성보다 짧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체시계는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흥미롭게도 태어난 계절이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낮이 짧은 가을과 겨울에 태어난 아이는 아침형이 되는 경향이 있었고, 봄·여름에 태어난 아이는 반대였다.

최근에는 유전자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수면 유형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발견했다. PER3가 대표적이다. 2003년 사이먼 아처 영국 서레이대 교수팀은 PER3의 길이가 길면 아침형이고, 짧으면 저녁형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4년 뒤에는 PER3의 영향이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후속 연구를 내놨다. 청소년 시기에는 유전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아침형이나 저녁형이 되지만, 40대에는 유전자보다 주변 환경이나 해야 하는 일 등 사회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40대 이전까지는 남성은 저녁형이, 여성은 아침형이 많지만, 40대부터는 그런 성별의 차이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여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는 CLOCK, PER1, PER2, PER3 등 아직 소수다. 게다가 이들이 어떤 원리로 저녁형/아침형을 결정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자의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쌍둥이 연구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저녁형과 아침형의 차이는 50% 정도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2006년 한국쌍둥이연구센터의 허윤미 박사(당시 서울대 의학연구센터)는 쌍둥이 977쌍을 각각 아동, 청소년, 청년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아침형이면 다른 한 명 또한 아침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유전자가 절반만 같은 이란성 쌍둥이는 그럴 확률이 낮았다.



저녁형이 아침에 시험 보니 잘 될리가

유전자에도 새겨진 특성을 바꾸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다시 앞에서 언급한 연구로 돌아가 보자. 저녁형 학생이 귀납추리능력이 더 뛰어남에도 정작 학교 성적은 아침형 학생이 더 좋았다. 학자들은 학교 수업을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가장 손꼽히는 원인은 수면 부족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저녁형 학생들은 잠자리에 늦게 들기 때문에 충분히 잠을 자기가 어렵고, 낮 동안 피로감 때문에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중에 못 잔 잠은 그대로 수면빚으로 쌓이고, 주말에 몰아서 자다 보면 생활리듬이 깨지기도 쉽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인지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도 자기가 최적의 상태인 시간대에 시험을 봐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 대부분 시험은 오전에 몰려 있다. 창의적인 성향이 강한 저녁형 학생에게 일률적인 학교 수업이 잘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학교와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이처럼 개인의 생활리듬과 사회 환경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 즉 생체시계와 사회적 시계의 불일치를 사‘ 회적 시차’라고 부른다.

지난 2006년 독일 뮌헨대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사회적 시차가 일으키는 문제를 연구한 결과를 학술지 ‘국제 시간생물학’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큰 사회적 시차를 겪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또한, 술이나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많이 마시는 편이었으며, 우울증 증상도 더 많이 겪었다.

저녁형 인간, 혹은 밤늦게 활동해야 하는 아침형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손해를 보는 셈이다. 학교든 회사든 구성원이 각자 최적의 시간대에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이익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는 속담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잘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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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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