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지난 3월 20일, 유럽우주기구(ESA)는 과학위성 ‘플랑크(PLANCK)’의 첫번째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플랑크는 태초의 우주가 남긴 흔적인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R, 우주배경복사)를 정밀하게 관측하기 위한 위성으로, 1989년의 코비(COBE), 2001년의 더블유맵(WMAP, 이상 미국)에 이어 2009년 발사됐다.

코비, ‘빛의 화석’에서 은하의 씨앗을 발견하다
먼저 코비의 임무를 살펴보자.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는 빅뱅 이후 약 38만년 뒤 생겨난 빛의 화석이다. 그 전의 우주는 흙탕물처럼 물질로 가득했는데,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하며 우주가 ‘맑아지는’ 바람에 빛은 처음으로 직진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빛은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저주파로 바뀌어 마이크로파가 됐는데, 전체 우주에 걸쳐 고른 온도를 보이고 있음이 지상 관측 결과 확인됐다. 이것이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다. 그런데 우주배경복사에는 이론상 10만분의 1 정도로 아주 미세한 온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코비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갔다(1파트 참고).

왜 10만분의 1의 온도차를 찾으려 했을까. 바로 우리가 보는 은하나 별 등 우주의 ‘씨앗’이 초기 우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구에 눈이 내리려면 눈의 씨앗이 될 만한 먼지가 있어야 한다. 우주도 마찬가지라서 은하나 별이 태어나려면 조금이라도 물질이 불균일하게 뭉쳐 있어야 가능하다.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직접적인 수단이다. 빅뱅 이후 38만 년 뒤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물질에 가려져 있던 빛이 최초로 물질을 뚫고 빠져 나왔다. 그런데 만약 우주의 물질 분포가 불균일했다면 어땠을까.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는 순간은 전국에 동시에 왔더라도, 칼 찬 일본군 순사가 더 많은 마을은 적은 마을보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해방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초의 빛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물질이 많은 부분은 광자가 조금 더 물질과 부딪치다 나왔고, 반대로 적은 부분은 더 쉽게 나왔다. 이 작은 차이가 최초의 빛의 온도를 아주 미세하게 높거나 낮게 만들었고, 그 흔적이 빛의 화석인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에도 남아 있다 (물질이 많은 곳이 에너지를 더 빼앗겨서 온도가 낮아졌다).

따라서 이 이론이 맞다면 코비가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에서 온도차를 발견할 것이고, 당시의 물질에 약간의 밀도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된다. 거기에서 은하 등이 생겼다는 이론도 증명된다. 왜 하필 10만분의 1인지도 이론천체물리학자들이 제시했다. 은하 탄생에 적절한 값이기 때문이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천문연구센터 박사는 “이 값보다 크면 지금까지 관측한 것보다 우주가 고밀도여야 하고, 작으면 은하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비는 임무를 멋지게 성공했고, 그 공로로 코비를 주도한 두 과학자 조지 스무트 UC버클리 교수와 존 매더 NASA 연구원은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WMAP, 우주에 퍼진 ‘메아리’를 찾다
두 번째 관측위성인 WMAP은 뛰어난 능력으로 현재 플랑크가 하고 있는 측정 작업을 거의 다 했다. 우주의 나이를 비롯해 허블상수, 물질과
암흑물질의 구성비 등 핵심적인 우주 수치들을 구했다. 9년 동안의 관측 데이터를 축적한 뒤 분석해 작년에 최종 결과를 공개했다.

WMAP에서 나온 결과 중에서는 ‘각파워스펙트럼’이라는 그래프(아래)가 중요하다.
이명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온도차가 나는 부분이 얼마나 뭉쳐 있는지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인구가 20만 명인 도시의 수, 50만 명인 도시의 수, 1000만 명인 도시의 수를 기록한 것과 같다. 이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내용이 숨어 있다. 바로 암흑물질과 물질 사이의 줄다리기와, 그로 인해 울려 퍼진 초기 우주의 ‘메아리’다.

암흑물질은 오직 중력과만 상호작용하는 물질로, 아직은 가상의 물질이지만 대부분의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급팽창)이 끝난 우주에서 특이한 현상이 생겨났다. 당시 우주에는 물질과, 이보다 5배쯤 많은 암흑물질이 있었다. 암흑물질은 중력과만 상호작용하므로 예나 지금이나 ‘무게’만 잡았다. 즉 우주 가운데에 웅크리고 앉아 물질을 끌어 당기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물질이 문제였다. 아직 물질이 홀로 존재하지 못하던 때로, 광자와 상호작용하느라 안쪽으로 끌려들어오지 못했다. 더구나 물질과 암흑물질을 제외하고 우주의 나머지 70%는 광자 등에 의한 복사에너지였는데, 이 에너지는 압력으로 작용해 물질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중력과 광자가 벌이는 우주의 줄다리기 때문에 물질은 결국 새우등이 터졌다. 못 견디고 한번씩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되돌아오며 요동을 쳤는데, 이 요동이 우주 전체에 마치 음파처럼 진동을 일으켰다. 이 요동에 밀려 초기 우주에서는 물질이 압축하며 진동했다. 그 결과 우주에는 마치 나이테처럼 물질이 압축해 몰린 지역이 생겼다.

이 이론이 맞다면 우주에는 물질이 몰린 나이테가 발견돼야 한다. WMAP는 이 나이테를 3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플랑크, “놀랄 게 없다는 게 가장 놀랍다!”
세 번째 관측 위성인 플랑크는 WMAP이 관측한 자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놀랄 게 없다는 게 가장 놀랍다(막스 테그마크 미국 MIT 교수의 ‘사이언스’ 인터뷰)”고 말할 정도로 이번 결과에 이변이 없다고 본다. 플랑크의 관측 결과는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주류 우주론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이번 발표에서 기존보다 눈에 띄게 다른 수치는 네 가지다. 나이가 조금 더 길어졌다. 이전에는 우주의 나이를 137억 년 남짓이라고 했지만, 플랑크는 138억 년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아직은 참고만 할 수준이다. 이석영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137억 또는 138억 년이라고 해도, 천문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값은 대략 140억 년에 오차 10억~20억 년 정도”라며 “WMAP 결과와 비교할 때 플랑크의 결과는 실제적으로 같은 값”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물질과 암흑물질의 비율이다. 기존 추정에 비해 물질(바리온) 비율은 비슷하지만(5%), 암흑물질의 비율이 약 3% 늘어났고(27%) 반대로 암흑에너지는 3% 줄어들었다(68%). ‘무게를 잡는’ 암흑물질은 중력을 일으켜 우주를 수축시키고, 우주를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는 반대 역할을 한다.

따라서 둘 사이의 차이가 줄어들었으니 뭔가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역시 아니다. 이명균 교수는 “기존 계산도 근사치이기 때문에 이 정도 미세 조정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인 허블상수에는 꽤 미묘한 문제가 있다. 이번에 67km/s/Mpc로 측정됐다. WMAP가 9년 동안 측정해 얻은 69km/s/Mpc보다 약간 작다. 그런데 문제는 허블상수가 측정 방법과 연구자에 따라 두 개의 값으로 나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균 교수는 “우주마이크로 배경복사가 아닌 다른 방식(외부 은하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측정하는 연구자들은 최근 약 74km/s/Mpc 정도라고 보는 추세”라며 “그런데 우리(이명균 교수) 연구팀이 작년 초신성을 연구해 발표한 논문에서는 65로 측정됐다”고 말했다. 측정 방법에 따라 거의 15%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석영 교수도 “허블우주망원경을 이용해 가까이에 있는 은하로 구한 값은 75~80km/s/Mpc 정도”라며 “반면 더 먼 초신성을 이용해 측정한 경우 67km/s/Mpc과 비슷한 값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는 가상의 입자인 ‘제4의 중성미자’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허블상수와 관련이 깊다. 이명균 교수는 “허블상수가 작아지면 제4의 중성미자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제4의 중성미자는 오직 중력과만 상호작용하는 ‘비활성 중성미자’로, 복사에너지와 함께 우주를 팽창시켜 허블 상수를 높인다.

송용선 박사는 “WMAP에서 암흑에너지가 높게 나와 존재를 가정했는데, 이번처럼 낮다면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활성 중성미자가 또다른 암흑물질 후보로도 꼽힌다는 점이다(과학동아 2012년 10월호 참조). 이 입자가 없다면, 대신 다른 종류의 암흑물질, 즉 차가운 암흑물질을 가정하는 기존 우주모델이 더욱 힘을 얻게 된다(과학뉴스 17쪽 참고).



정말 놀라운 것은 다음에 온다
그럼 플랑크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 걸까. 아니다. 우주 초기 메아리가 그린 물질의 나이테를 7개까지 측정했다. 기존 우주론은 더욱 정교해졌다. 폭탄 같은 의문도 던졌다.

이명균 교수는 “플랑크는 우주 남반구와 북반구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주가 넓게 보면 모든 지역에 걸쳐 균일하다는 오래된 기본 가정을 벗어나는 일이다.

중력파의 흔적도 천문학계의 지축을 뒤흔들 폭탄이다. 송용선 박사는 “플랑크에는 전자기파의 파동 방향(편광)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만약 편광이 온도처럼 비균질한 것으로 나타나면 급팽창 이론을 처음으로 직접 증명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우주론에 따르면 급팽창은 중력파에 의한 요동을 남겼다. 이 요동은 편광을 교란시켰다. 따라서 편광의 차이를 포착하면 급팽창 이론이 거의 증명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중력파의 존재도 간접적으로 밝혀진다.

급팽창은 빅뱅 10-32초 뒤에 끝났다. 따라서 만약 이 교란을 포착한다면, 우리는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보다 훨씬 어린 우주를 볼 수 있게 된다. 빛보다 이른 흔적인 셈이다. 아직 본격적인 편광 분석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송 박사는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라며 “진짜 논란이 될 내용은 그 이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과학이 증명된다는 것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빛으로도 볼 수 없던 태아 우주를 만난다는 것은 그보다 더욱 떨리는 일이다. 우주의 먼지인 우리가, 우주의 모든 것이 한 데 섞여 담겨 있는 단 하나뿐인 시공의 기원을 마주한다. 경이로운 탄성은 그 때를 위해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PART 1. 우주의 ‘지문’이 등장하기까지
PART 2. 아기 우주는 7번 울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 글 윤신영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