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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볼 때마다 ‘고맙다’ 말했죠




“기다려준 국민들께 죄송할 뿐이죠. 발사에 성공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사실 특별한 건 없었어요. ‘아, 됐다’ 이런 마음이었죠.”(나로호 발사를 시작하고 나서 조 단장은 한번도 편한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 웃고 있어도 늘 가슴 속이 답답해 보였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10년 동안 만나온 기자에게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만큼 밝게 웃었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다’ 이런 건 없었어요. 오후 10시 넘어 나로우주센터의 기숙사에 누웠는데 우뚝 서 있는 나로호가 보였어요. ‘내일은 제발 좀 올라가라’ 하고 기원했지요. 사실 어디에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발사 전날 밤 8시에 마지막 비행시험위원회를 마치고 나로호 발사대로 갔어요. 집에서 가져온 휴대용 제기 세트와 과일, 포를 갖고 가서 후배 한 명과 약식으로 고사를 드렸죠.

과학기술자가 미신에 의지했던 건 아니에요(조 단장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를 받을까봐 조심스러워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는데 1차, 2차 발사 모두 실패했잖아요. 도대체 안 될 이유가 없는데요. 아직도 내 정성이 부족한가보다 하는 생각에 마지막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발사대에 올라간 거지요.”

 

“공학적으로 소수점 몇 자리까지 다 했는데 안 되니까 기가 막혔죠. 그런데 3차 발사를 준비하며 채널A의 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이
영돈PD의 먹거리X파일’인 것 같은데 채소를 기르면서 좋은 말을 해준 것과 나쁜 말을 해준 것이 너무 달라진 거예요. 아, 내가 아직도 이런 정성이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3차 발사 때는 나로호를 볼 때마다 ‘잘 만들었으니까 잘 될 거야’ ‘고마워’ 이런 얘기를 해줬
지요. 마지막날 밤 고사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자는 마음이었어요.”


“잘 자지는 못했어요. 사실 요즘도 잘 못자요. 스트레스였겠죠. 한번은 ‘나는 왜 살아서 생지옥을 겪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조 단장은 나로호 발사가 실패하면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공황장애를 앓기도 했다). 발사 시간에 제 아내도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어요. 혼자서 TV를볼 수가 없었던 거죠.”


“통제센터 안에 있으면 발사체에서 오는 모든 신호와 영상을 볼 수 있어요. 저는 로켓의 센서에서 오는 신호에 집중했어요. 395초였는데 2단 로켓의 킥모터가 점화됐을 때 ‘이제 성공했구나’ 싶었지요. 킥모터부터는 자신 있었거든요. 발사를 끝내고 보고를 준비하는데 ‘위성 속도가 초속 8km를 넘었다’는 메시지가 떴어요. 위성 속도가 8km를 넘으면 실패할 수가 없어요. ‘이젠 됐다’ 싶었지요. 속도나 위성의 궤도만 보면 이번 발사는 상위 1% 안에 들어요(발사센터를 찍은 영상을 보면 다른 연구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때 발사 후 미동도 않던 조 단장이 성공이 확실해지자 박수를 두 번 치고는 자리에 앉아 안경을 집어드는 모습이 나온다. 지난 10여 년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으리라).”




“1차 발사에 실패했을 때였어요. 일이 힘든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동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첫발사가 실패하자 조사단이 와서는 우리를 죄인 다루듯이 했지요. 엉뚱한 요구를 하면서 ‘실패한 사람이 뭔 말이 많냐,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대한민국에 발사체에 대해 우리보다 더 아는 사람들이 있나요? 우리 연구원들 피가 거꾸로 솟구쳤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버텨야죠. 거기서 힘들다고 쓰러지면 ‘그러니까 실패하지’라고 할 게 뻔하잖아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어요. 성공밖에는 길이 없다고요.”


“나로호의 엔진은 러시아 것입니다. 이거 분명합니다. 1단 엔진에 대해 기술이전을 받았느냐, 못 받았지요. 나로호는 러시아 로켓 아니냐, 1단이 더 크고 엔진이 중요하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로호가 아니라 나로호 시스템입니다. 러시아에서 1단 엔진 사 와서 수치 몇 개 입력하면 발사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1차, 2차 발사가 왜 실패했겠습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기인 제공호도 외국 엔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외국 전투기라고 하지 않잖아요. 러시아의 앙가라 모델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앙가라 엔진과는 완전히 다르게 연소합니다.”
 

 

“시스템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전체가 100이라면 시스템이 80입니다.”


“3차 발사 때 180억 원을 더 썼으니 5200억 원이죠. 러시아의 힘을 빌린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술 이전을 전혀 못받았다, 돈을 낭비했다고 한다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연구원들 다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우리 우주발사체 기술이 나로호 개발 전에는 선진국 대비 47%였는데 지금은 86%로 올라갔습니다. 엔진만 따져도 30%에서 60%로 올라갔습니다.”




“논란이 있는 건 아는데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거든요. 현실적인 이유로 2020년이 아니라 1, 2년 늦게 보낼 수도 있지요. 그래도 목표를 세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전 과학자가 정책 결정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치인들이 하는 거고, 과학자는 방법을 찾아내야지요. 저희 원장님(김승조 항우연 원장)도 의지가 강하니 곧 로드맵이 나올 겁니다.”


“엔진 네 개를 제어하는 기술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엔진 하나가 제대로 추력을 내는게 중요하지요. 지금도 엔진은 거의 다 개발했는데 시험할 공간이 없어요. 지금 있는 것은 너무 작습니다. 빨리 연소시험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급해요.”


“완벽한 우리 발사체를 만들어야죠. 나로호는 디딤돌이에요. 저의 정말 꿈은 미래 어느 날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우리 손으로 만든 로켓을 발사해 성공하는 겁니다.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맡고 싶습니다. 꼭 하고 싶어요(이 말을 할 때 조 단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 기자는 인생에서 실패한 적 있나요?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은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해 보지 않는다면 그건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전해서 역전해서 이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노력과 응전이 필요하다고 후배들에게 늘 말합니다. 우리 연구원에 발사체를 개발하는 인력이 저를 포함해 딱 199명입니다. 선진국에 비하면 정말 적지만 우리가 함께 해내고 싶습니다.”

201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글 김상연 기자 | 사진 남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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