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하의 한가운데는 질량이 태양의 수백만~수천억 배에 이르는 초거대 블랙홀이 자리하고 있다. 이 블랙홀은 기체와 먼지를 게걸스럽게 먹거나 중력으로 물질을 끌어들인다. 새 항성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차가운 기체를 자체 은하에서 빼앗기도 한다. 이런 경우 새 항성이 더는 생성되지 못하고, 나이든 적색 거성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최근 은하에서 새로운 항성이 더 생성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나왔다. 영국 노팅엄대 천문학과 아서 블럭 박사팀은 블랙홀이 내뿜는 어마어마한 양의 복사에너지가 새로운 별이 생성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차갑고 작은 우주 먼지를 멀리 날려버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블록 박사는 이 같은 연구결과를 4월 16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국립천문협회 미팅에서 발표했다.
블럭 박사는 허블우주망원경과 찬드라 X선 망원경을 이용해 방사선과 X선을 방출하는 초거대 블랙홀이 존재하는 100개의 은하를 관찰한 결과 이들 중 3분의 1이 새로운 별을 생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의 설명은 이렇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기체와 먼지 같은 각종 물질은 블랙홀에서 소용돌이치면서 가열되고 높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때 매우 많은 에너지가 생성되면서 은하계의 심장에 있던 차가운 가스가 가열된다는 것. 가열된 기체는 불규칙하게 운동하다가 결국 은하계 중심에서 밀려나고, 은하계 중심의 밀도는 낮아진다. 새로운 별을 만들수 없게 된 은하는 점차 붉은빛을 띠다가 결국 소멸된다.
실제로 연구팀은 블랙홀의 질량과 블랙홀이 속한 은하 전체의 질량비를 구해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가스와 먼지의 양을 측정하고, X선을 이용해 블랙홀이 성장하는 속도와 블랙홀이 내뿜는 복사에너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초거대 블랙홀이 거대한 은하를 멀리 날려 보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의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결국 게걸스런 블랙홀의 식탐 때문에 늙은 항성은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항성 없이 소멸하며 은하는 어두워지고 죽는다. 또한 은하 중심에서 기체를 밀어내면서 새로운 물질을 제공받지 못한 블랙홀도 궁극적으로 소멸하게 된다. 블랙홀이 은하의 바이러스처럼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