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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를 '성형수술'합니다

KAIST 유기합성연구실

돼지우리의 구린내를 맡으면 코를 두 손가락으로 감싸쥐지만 아름다운 여성이 뿌린 향수에는 절로 미소가 감돈다. 그러나 극과 극인 두 향기가 분자수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돼지우리 구린내의 주성분인 이소부탄산 분자에 탄소원자(C)를 한 개 붙이면 이소발레르산 분자가 된다. 이는 발 냄새의 주성분이다. 그런데 이소발레르산 분자에 탄소원자(C)를 한 개 더 붙이면 사과에서 나는 달콤한 향인 에스테르가 된다. 원자를 한 개 넣었을 뿐인데도 성질이 전혀 다른 물질이 만들어진다.

원자를 조작해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 일은 중세 연금술사의 꿈이었다. 그들은 철(Fe)이나 구리(Cu) 같은 일반 금속 원자를 금(Au)으로 바꾸려 했다.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신물질을 만들려는 인간의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KAIST 화학과 이희윤 교수는 “중세에 연금술사가 있었다면 현대는 유기합성과학자가 있다”며 “물질의 원자나 분자구조를 바꿔 새로운 물질로 바꾸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유기합성연구실은 원자를 조작해 신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가운데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이희윤 교수.


신약 부작용 없애는 유기합성

이 교수는 물질을 분자수준으로 보는 특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그는 식초(CH₃COOH)를 볼 때도 탄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2개, 수소원자 4개가 선으로 이어진 3차원 입체물질을 머리에 그린다. 더욱이 이 원자들을 색다르게 조합하면 유해한 벌레를 죽일 수 있는 살충제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낸다. 이 교수에게 자연은 레고블록 놀이터인 셈이다. 레고블록으로 집을 짓고 건물을 세우듯 유기합성과학자는 다양한 원자를 조립해 원하는 물질을 만든다.

원자를 조립할 때 원치 않는 부산물이 생길 수 있다. 이를 ‘거울상 이성질체’라 부른다. 유기분자를 만들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처럼 좌우가 뒤바뀐 분자가 한 개 더 생기는데 이들은 독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 때 임산부가 먹으면 기형아를 유발해 복용이 금지됐던 약물인 탈리도마이드가 있다. 탈리도마이드의 한 거울상 이성질체는 진정제 역할을 하고 다른 이성질체는 진정 효과는 없고 태아의 기형을 유발했다.

이 교수는 원하는 거울상 이성질체만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구두제작자가 한쪽 발 모양의 구두골(발모형)로 양쪽 신발을 만드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원하는 거울상을 만드는 틀을 만든 뒤 원하는 거울상 이성질체만 찍어냈다. 이 연구결과는 독일 유명 화학저널 ‘응용화학’ 2003년 7월호에 실렸다.

분자를 ‘요리하면’ 신약도 만들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인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버드나무 껍질에 포함돼 있는 살리실산(${C}_{7}{H}_{6}{O}_{3}$)은 열을 내리고 두통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복통이나 위장출혈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19세기 독일 바이엘사 연구원이던 펠릭스 호프만은 그의 아버지가 두통으로 고생하면서도 부작용 때문에 살리실산을 복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리실산에서 독성을 나타내는 페놀기를 메틸기로 바꿨다. 그러자 부작용이 없는 진통제인 아스피린이라는 신물질이 만들어졌다.

신약은 분자 ‘성형수술’을 받으면 효능이 높아진다. 노인에게 흔한 전립선비대증을 치료하는 약인 카두라는 부작용이 많았다. 이 교수는 1998년 이 약에서 부작용을 나타내는 부분을 떼어내고 ‘성형수술’로 안전장치를 붙였다. 그 결과 카두라는 부작용을 줄이고 전립선비대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명성을 떨쳤다.

중세 연금술사들은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지만 유기합성과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연금술사들의 천 년 숙원을 넘어 인류를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신약개발의 선두에 설 전망이다.
 

자연은 원자들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다양한 물질의 기본골격에는 탄소나 수소 등 기본원자의 결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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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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