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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타 반길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6년만의 변화, 거부권 대신 가능성 탐색부터

지난 1월 29일 밤 9시. 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상가인 도쿄의 아키하바라. 날짜가 바뀌기까지는 3시간이나 남았지만 이미 100명 이상의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연예인들의 현장 토크쇼까지 진행됐다. 1월 30일 ‘윈도 비스타’(Windows Vista) 발매를 기다리는 카운트다운 이벤트였다.

뉴욕에서, 런던에서, 인도의 타지마할에서, 브라질의 해변에서도 이벤트가 펼쳐졌다. 심지어 가상현실 체험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에서도 비스타 이벤트가 펼쳐질 정도였다.

비슷한 시각 한국. 정보통신부는 비스타 구매 연기를 권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금융권 사이트들은 비스타 사용 자제를 권하고 있었다. 세계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었다. 물론 외국에서도 프리 소프트웨어 진영에서 온라인(Badvista.org)을 통해 반(反) 비스타 운동을 벌였지만 한국과는 양상과 동기가 다르다. 왜 한국과 세계는 이렇게 다른 시각을 갖게 됐을까?
 

지난 1월 말 등장한‘윈도 비스타’는 화려한 그래픽과 윈도창을 투명하게 띄워놓는 ‘에어로’효과가 인상적이다.


액티브X 문제의 본질

이유는 한국의 웹이 지닌 기형성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형성은 기술적인 부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윈도 95’가 나온 이래 20세기까지 윈도를 조작하기 위한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사실상 ‘윈32’(Win32)가 정석으로 군림해왔다.

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윈32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했고 또 그렇게 프로그래머가 됐다.

그러다 닷컴 붐이 불던 세기말, 웹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마이크로소프트(MS)는 웹에서 윈32의 기능을 100%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액티브X’(ActiveX)라는 기술이다.

액티브X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어떤 프로그램이든 만들 수 있는 100% 자유를 제공했지만 그만큼 위협에도 100% 노출됐다. 악질 스파이웨어들이 차츰 액티브X에 의존했던 것이다.

결국 MS는 점진적으로 액티브X 사용에 제약을 두기 시작했고, 윈도 XP 서비스팩 2, 인터넷익스플로러 7 그리고 최근 비스타에 이르기까지 액티브X를 사용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애플의 ‘퀵타임’이나 어도비 플래시처럼 규모가 크고 역량이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이나 이런 관문을 뚫고 책임감 있게 액티브X를 사용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관공서와 금융권, 쇼핑사이트 등 모든 웹에서 액티브X를 쓰고 있다. 그것도 멀티플랫폼을 다룰 역량이 없이 제 각각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는 사실상 윈32가 가능한 윈도 PC에서만 즐길 수 있는 웹이 만들어졌다.

사실 윈32는 MS도 미래를 위해 덮어 가고 있는 과거의 유산이다. 상위 프로그래밍 모델인 닷넷 덕에 프로그래머도 윈32를 공부할 이유를 잃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윈32의 프로그래밍 모델에 윈도 PC뿐만 아니라 웹조차 묶여 있다. 이는 마치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일제히 프린터 드라이버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따라서 액티브X가 비스타와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호환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착오의 문제다.

그렇다면 비스타 자체는 어떨까? 겉모습만 번지르르해진 XP는 아닐까? 2년도 채 안 돼 나온 윈도XP는 ‘윈도 2000’의 버전 2 정도일 뿐이라고 봐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윈도 XP 이후 6년만에 나온 윈도 비스타는 그만큼 충격도 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뉴욕 도심에 있는 7층 건물의 벽면에 대형 로고를 달아 윈도 비스타 론칭을 축하했다.


소프트웨어 무궁무진 응용 가능해

대표적인 충격은 역시 겉모습에 있다. 우리 PC에는 대부분 3차원 그래픽카드가 탑재돼있고, 이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팬도 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실력 발휘’를 하는 순간은 게임을 할 때뿐이다.

게임 업계는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 오랜 개발기간을 확보해 더욱 화려하고 사실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일반 사용자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는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의 여유를 부릴 수도 없거니와 ‘대박’을 기대하며 자본을 투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과 게임이 아닌 소프트웨어의 시청각 효과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비스타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바로 이런 간극을 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스타의 ‘에어로’라는 투명 효과와 ‘윈도키-탭’으로 3차원 화면을 전환하는 기술은 신기하다. 그런데 이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비스타는 일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웹사이트를 제작하듯 3차원의 미려한 화면을 만들 수 있게 해 줄 기술을 내장했다.

학생들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아키텍처 ‘XNA’가 함께 등장했다. 이렇게 만든 게임은 MS가 개발한 가정용 비디오게임기인 ‘엑스박스 360’에서도 돌아간다. 자본과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작업을 더 쉽고 편안하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비스타와 함께 열린 것이다.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 비스타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장 동력을 간절히 원하는 업계와 변화를 맛보기 위한 개인과 기업의 의지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하드웨어의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소프트웨어 업계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비스타라는 운영체제를 믿고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비스타는 현재 150만종의 장비와 3만1000가지의 드라이버를 지원한다. 공식적으로 비스타 승인을 받은 것만 현재 2500종이 넘는다. 시장조사기관인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에 따르면 MS가 비스타로 1달러를 벌 동안 비스타를 이용한 나머지 업계는 18달러의 수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
 

비스타 반길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무조건 거부권 행사할 것인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에 우리는 냉소를 보낼 수 있다. 새로운 운영체제가 나왔다고 해서 갑자기 온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라면 업계의 검토라던가 시장의 평가를 기다리게 마련이고, 개인도 하드웨어의 교체 시기와 맞아야 새 운영체제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XP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10기가바이트(GB)로 XP에 비해 인스톨 용량이 두 배나 늘어난 점을 방만한 비만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비스타를 플랫폼의 성장으로 볼 수도 있다. 10GB의 운영체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기대하며 숨어있는 가능성을 찾아 새로운 일을 벌일 터전으로 삼을 수 있다.

비스타의 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은 결국 성장과 변화를 맞이한다는 점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지 거부할지는 모두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분명 성장의 책임과 변화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는 미래를 열어 보지도 않았고, 그 가능성을 충분히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를 움직일 운영체제가 비스타가 될지는 알 수없다. 그러나 비스타는 그런 가능성을 내다 본 이들이 몸과 머리를 움직여 만들어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비스타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과학도와 기술자라면 흥분되는 기술에 솔직히 반응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럴 기력조차 없다면 이는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윈도 비스타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XP에 이어 6년만에 내놓은 운영체제다. 애플의 매킨토시처럼 화려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자랑한다. 미디어 기능과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강화대 고하질 디스플레이나 TV에 연결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단 교체 비용이 많이 들고 호환성에 문제가 있어 국내에서는 아직은 살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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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부창조
  • 김국현 IT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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