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어느 날. 평소 프리랜서 일을 하는김씨는 바깥출입이 없는 탓에늘 친구가 없다. 재택근무가 많다보니 말 상대도 없고 그나마 바깥세상과 소통은 늘 형식적이고 사무적일 뿐이다. 하지만 김씨의 성격은 언제나 쾌활하다.
초고속 인터넷의 시대 그의 일상도 늘 인터넷과 함께 시작된다. 아침마다 그를 깨우는 것은 인터넷에 연결된 괘종시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유비쿼터스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집안의 웬만한 사물들은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괘종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찢어지는 듯한 알람 소리가 싫은 그는 엊그제 괘종시계에 ‘일어나다’라는 단어를 가르쳤다.
혼자 사는 노총각 신세지만 냉장고 안은 깔끔하다. 얼마 전 새로 산 냉장고는 포장에 적힌 유통기간을 탐지해 알려주기 때문에 상한 음식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없다. 냉장고는 스스로 필요할 때마다 농산물 유통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관련 정보를 내려받는다. 밤새 집안을 돌아다니며 불침번을 섰던 가정용 로봇이 식사를 끝낸 김 씨에게 다가와 그날의 뉴스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김 씨가 좋아하는 스포츠와 연예 뉴스만을 엄선한 것이다. 로봇은 주인이 깨기 전 언론사 포털에 접속해 관련 소식을 내려받았다. 관련 동영상과 음악파일을 찾는 것도 물론 로봇의 몫이다. 하루가 다 가고 김 씨는 로봇과 하루의 일에 대해 수다를 떨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든다.
‘디지털 나홀로족’ 김 씨의 하루는 결코 먼 훗날을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는 아니다. 다음소프트 자연언어철연구소장 이상주 박사는 “사람말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해결방법이나 해답을 찾는 웹의 등장이 그리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인터넷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웹은 우리 생활에서 세상과 사람을 잇는 창으로 떠올랐다. e메일 날리기나 뉴스 검색, 동영상 시청은 웹의 기본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치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전문 통계 자료나 동영상이나 음악파일을 문자가 아닌 내용만으로 검색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웹은 사람이 먼저 다가서야 응하는‘냉혈한’이자 사람이 건드려야만 똑똑한 척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웹의 진화에 대한 꿈은 여기서 시작한다. 이 부족한 2%를 채우는 것은 물론 미래 웹의 청사진을 그리는 기술들을 소개한다.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컴퓨터가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날이 과연 올까. 웹이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1월초부터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10년 후 로봇 전시장에는 유독 이목을 끄는 곳이 있다. 흔히 우리가 상상하던 로봇 작품 대신 모니터와 자판만으로 이뤄진 독특한 이 로봇의 정체는 일명 ‘채팅로봇’. 한마디로 말하는 로봇이다. 자판을 두드려 말을 걸면 모니터 속의 캐릭터가 이에 상응하는 답변을 한다. 누군가 ‘안녕’이라고 말을 걸기라도 하면 모니터 속 캐릭터는 ‘반갑다’고 말을 던진다. 누군가 뜬금없는 질문이라도 던지면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무슨 의미인지를 되묻기도 한다.
인터넷에 사는 말하는 로봇
웹솔루션 전문 벤처기업 다음소프트가 개발한 이 로봇은 현재 인터넷(www.aawoo.com)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말하는 로봇이 말상대를 해주거나 주인을 대신해 방문자와 대화하고 인맥 관리까지 해주는 말 그대로 지능형 서비스인 셈이다.
이상주 박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을 듣고 상황에 맞는 대답을 찾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채팅로봇 기술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이 중 문장의 형태소를 구분하고 사전상 뜻 뿐 아니라 앞뒤 문맥을 파악하는 자연어 처리기술은 핵심 기술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채팅로봇은 어떻게 말을 알아 듣는 것일까. 방법은 ‘교육’이다. 채팅로봇은 입력된 문장 가운데 새 단어를 기억해 뒀다 훗날 필요할 때 사용하는 기억 기능을 갖추고 있다. 만일 자신의 취향이나 상황에 맞는 ‘대화친구’를 원한다면 아직까지는 자신의 채팅로봇에게 직접 말을 가르쳐야한다. 문장의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답하는 관련 기술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뜻이라도 사람마다 쓰는 어휘가 다르다는 것도 교육이 필요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생각하는 기계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 그는 유명한 튜링 기계를 통해 생각하는 기계의 가능성을 점쳤다. 본격적인 대화기술이 선보인 것은 1995년. 인공지능개발자 리처드 월리스는 인터넷확장언어인 XML을 이용해 대화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질문과 대답만 하거나 한정된 답변만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치다가 현재는 채팅로봇 스스로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 대답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박사는 “아직까지 한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하거나 채팅로봇 스스로 대화를 주도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문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우는 수준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님아’ ‘친구 아이가’처럼 지역 특유의 말투나 성격에 따른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는 능력도 추가할 계획이다.
채팅로봇 기술은 기술적인 파급력도 매우 크다. 웹에서 채팅뿐만 아니라 로봇을 비롯해 냉장고나 세탁기, 텔레비전 등 각종 전자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전자제품의 시대가 머지않았다. 다음소프트는 한 로봇개발업체와 공동으로 말하는 로봇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심전심 인터넷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 스스로 웹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기존 웹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웹서비스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일명 ‘유비쿼터스웹서비스’. 서로 다른 기계끼리 웹서비스를 주고받는 이기종간 통합을 뜻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사람이나 기계 할 것 없이 필요할 때마다 다른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비스융합표준연구팀 이승윤 팀장은 “사람이 컴퓨터에 접속하는 것처럼 이동통신망과 인터넷, 로봇과 냉장고처럼 서로 다른 네트워크와 전자기기들이 상호간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기계 스스로 우너하는 정보를 얻고 또 다른 기계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환경이 완성되면 냉장고 스스로 음식물 유통기한을 탐지해 외출중인 주인의 휴대전화로 알려주거나 새로 주문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연말정산도 지금과 달리 클릭 한번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연말정산서비스 사이트를 통해 은행과 보험사에 접속해 모든 정보를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로봇이 혼자서도 집안의 온도조절이며, 청소, 세탁 같은 집안 관리까지 단숨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인터넷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팀장은 “(유비쿼터스웹서비스는)인간과 기계, 인간과 인간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웹을 통한 기계와 기계간의 소통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이 분야에서 한국은 비교적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기계장치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공통언어(표준언어)와 문법(프로토콜)을 유비쿼터스 환경에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있다. 인터넷은 인터넷대로 휴대전화는 휴대전화대로 서로 다른 통신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ETRI는 2007년까지 차세대 웹서비스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여기서 유무선 서비스의 연동 문제는 꼭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모바일 웹서비스를 중심으로 이동통신과 기존 웹을 연결하는 방안이 활용되고 있다. 이 팀장은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기계와 기계가 서로 연결되면 사용자는 좀 더 폭넓은 콘텐츠와 서비스를 이용하고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휴대전화를 걸어 누군가의 전자레인지에서 요리비법을 훔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정보생산의 패러다임 바꿔
그렇다면 웹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까.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지난 해 인터넷 업계를 달군 키워드는 단연 ‘웹2.0’이었다. 웹2.0이란 과거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근 인터넷 서비스의 흐름을 일컫는 말이다. 2.0은 웹이 한세대를 지나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1.0시대’가 소수의 공급자가 다수의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판매했다면 '2.0시대’는 다수의 공급자와 사용자가 웹을 통해 정보와 재화를 직접 생산하고 소비한다. 지금까지 윈도우즈를 기반으로 하던 작업들은 모두 웹 작업으로 대체된다. 서비스 업체가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사용자는 자신에게 맞게 콘텐츠를 생산, 관리, 유통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글의 데스크톱 검색과 맞춤형 홈페이지, 맞춤형 뉴스 서비스는 웹2.0을 대표하는 기술로 손꼽힌다. 누리꾼이 직접 특정 항목에 대한 설명을 적어가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역시 마찬가지다. 국내에선 싸이월드를 비롯한 블로그와 지식검색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최근 들어 맞춤형 검색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참여형이라는 점이다. 누리꾼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한다.
이 같은 웹2.0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에 엄청나게 많은 이용자가 몰려들자 웹광고의 패러다임 역시 변하고 있다. 구글은 광고 노출 1000회를 기준으로 광고비를 지불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광고가 클릭될 경우에만 비용을 지불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광고 노출에 대한 이용자들의 권리도 존중하고 비싼 광고료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 상인들에겐 효과적인 광고 수단을 제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전략이다. 지금도 웹은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