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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m 심해에 심은 한국의 혼

한국해양연구원 박사 김웅서

“5000m 심해에 도착해 처음으로 잠수정 라이트를 켠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깜깜하던 주위가 갑자기 밝아지더니 고려청자색 바닷물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태평양 깊은 곳에서 조상의 숨결을 느꼈죠.”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47) 박사는 지난해 6월 하와이 남쪽에 있는 5000m 깊이의 심해 광구를 탐사했다. 이 깊이의 바다에 잠수한 한국인은 김 박사가 처음이다. 그는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 과학자들과 함께 심해 잠수정 ‘노틸’을 타고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6주 동안의 탐사 동안 틈틈이 써온 일기를 이번에 ‘바다에 오르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화려하고 오묘한 심해 생물

“잠수하면 코발트빛 바다가 짙은 청색으로 점점 어두워집니다. 1000m 아래로 내려가면 아무런 빛이 없어 깜깜합니다. 발광 물고기라도 있나 해서 잠수정 창을 보려고 했는데 사실 내려가면서 실험 준비로 할 일이 많아 그럴 틈도 없었죠.”

심해는 오묘함 그 자체였다. 바닥은 뻘과 망간단괴로 가득한 별천지였다. 항아리 등 다양한 모습의 해면이 바닥에 붙어 살고 있었다. 해면을 로봇팔로 툭 치자 숨어 있던 장어같이 생긴 물고기가 재빨리 도망쳤다. 심해생물은 흔히 굼뜨기 일쑤인데 그 물고기는 동작이 잽쌌다. 말미잘, 해삼을 비롯해 여러 물고기가 심해에 살고 있었다.

“흔히 심해 생물이라고 하면 투명하거나 색깔이 있어도 희거나 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생물도 있었지만 보라색, 빨간색 등 아름다운 색깔의 생물도 많습니다. 빛도 없는 그곳에 사는 생물이 왜 그런 색깔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5000m 심해는 수온이 1~2℃, 수압만 500기압이 넘는다. 손톱 위에 작은 승용차를 올려놓는 압력이 바다생물을 짓누른다. 조금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극한 환경에서 심해 생물은 자신들의 삶을 즐긴다.

“심해 바닥에서 고래의 턱뼈를 하나 봤습니다. 사실 심해에 떨어진 고래 시체는 이곳 생물들에게는 축제나 마찬가지죠. 로봇팔로 고래뼈를 들어 뼈에 붙어 있는 망간 단괴를 살펴봤더니 수백만년 전에 죽은 고래였습니다. 땅위에서 70, 80년 아웅다웅 사는 사람이 심해에서 그런 것을 보면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죠.”

김 박사는 프랑스 과학자들과 함께 그곳의 심해 환경도 조사하고 망간단괴도 채집했다. 심해에서 채집한 미생물들을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연구할 계획이다. 그는 “차가운 심해에서 사는 미생물은 지방을 잘 분해하기 때문에 세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심해에서 보낸 5시간 동안 김 박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잠수정이 좁아 탐사 내내 요가하는 자세로 있어야 했다. 다리에 쥐가 두번씩이나 났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심해의 신비가 고통을 없애는 진통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잠수하는 10시간 동안 5리터쯤 되는 뚜껑 달린 플라스틱통에다 소변을 해결해야 했다며 웃었다.

6주 동안 태평양을 항해하며 이메일을 보낼 때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프랑스 잠수정을 타고 심해를 방문했다는 점을 내내 아쉬워 했다. 현재 심해 잠수는 일본이 세계 최고다. 무인 잠수정으로 1만1000m까지 내려갔고 유인잠수정은 6500m까지 내려간다. 미국은 4500m까지 내려가는 잠수정을 갖고 있으며 6500m급을 새로 개발하고 있다. 프랑스, 러시아 등도 심해잠수정을 갖고 있다. 중국조차 최근 7000m급 잠수정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은 250m까지 내려가는 잠수정을 19 80년대 개발했다가 물이 새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 해양연에서 6500m급 무인 심해잠수정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다. 그는 “3면이 바다인 한국에 바다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고 강조했다.

“해양연구는 과학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한 국가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가장 깊은 바다에 한국인이 가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자존심이 올라가죠. 생명의 기원도 심해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바다는 인류를 먹여 살릴 마지막 프론티어입니다.”
 

박웅서^서울대에서 생물교육학과 해양학을 공부하고 서울여주엥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에서 해양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한국해양연구원에서 바다를 연구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앗! 바다가 나를 삼켰어요' '해양생물의 세계' 등을 펴냈다.

 

200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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