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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밝혀낸 편경의 세계

돌로 만든 조선시대 피아노

 

돌로 만들어진 악기 ‘편경’(編磬)


대부분의 악기들은 금속이나 나무, 가죽 등을 재료로 제작된다. 그런데 돌로 만들어진 악기가 있다. 한국사 시간에 세종대왕의 업적 중 하나로 다룬 ‘편경’ (編磬)이 그것이다. 여러분들은 실제로 편경을 보거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돌로 만든 편경은 맑고 단순한 소리를 내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최고의 과학기술과 문화가 축적돼 있다. 어째서 그런지 현대의 과학기술로 한번 들여다보자.


황금의 귀를 가진 세종대왕
 

악기를 평가할 때 여전히 뛰어난 음감을 가진 사람의 의견이 중요하다. 단순한 물리량 측정만으로 소리의 복잡미묘함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경은 석회암과 대리석이 섞인 돌을 갈아 기역(ㄱ)자 형태로 만든 악기로 쇠뿔로 된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낸다. 편경은 재질이 돌이기 때문에 온도나 습도의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한번 만들어 놓으면 연주할 때마다 조율할 필요가 없다. 반면 대부분의 악기는 온도나 습도에 따라 재질의 상태가 달라져 연주직전에 조율을 해야 한다. 항상 일정한 음높이를 유지할 수 있는 편경은 아악에서 표준악기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악사들은 전쟁이 나면 편경을 우물에 숨겨 놓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전란으로 악기들이 파괴돼도 돌로 만든 편경이 남아있으면 이로부터 여러 악기를 복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종대왕 시대에 만든 편경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으며 현존하는 3대의 편경은 성종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경이 아악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했기 때문에 조선초 문물을 정비했던 세종대왕은 국가사업으로 편경을 제작했다. 그전까지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나 벽돌을 구어 만든 와경을 사용했다. 편경을 만드는데는 음률을 정할 수 있는 이론적인 실력과 악기를 제작할 돌을 생산할 수 있는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따라서 중국 이외에 편경을 제작해 사용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일본만 해도 편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당시 스스로 주장막대로 박자를 짚으며 중국의 율려신서를 공부한 세종대왕과 음률에 통달한 박연 등이 기여한 바가 크다. 세종장헌대왕실록 15년 1월 1일자를 보자.


왕은 새로 만든 편경 두틀을 가져 오라 하여 중국에서 준 편경과 맞춰보더니 크게 기뻐하면서 “중국의 성음이 과연 맞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새로 만든 경은 바른 소리를 얻었다. 율을 제정하고 소리를 고르는 법이 옛 음악에서 나왔으니 나는 참으로 기쁘다. 그런데 이칙 1매가 고르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묻자 박연 선생이 살펴보고 말하기를 “정해진 먹줄까지 갈리지 않았습니다”라며 즉시 마석(磨石)하니 소리가 골라졌다.


이로 보건대 세종대왕은 절대음감을 지닌 지음자(知音者)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리를 듣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심리적·생리적 반응이지만 단순한 물리량 측정으로는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새로 제작된 음향기기를 평가하는데 여전히 ‘황금의 귀’ (Golden Ear)를 가진 사람들의 주관적인 의견에 의존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종대왕과 박연 선생은 황금의 귀를 가진 사람들인 셈이다.


16개의 경석으로 1과 1/3 옥타브 영역 표현
 

경석의 음높이는 경석의 두께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낮은 음인 황종을 내는 경석이 가장 얇고(2.5cm), 가장 높은 음인 청협종을 내는 경석은 가장 두꺼운 5.5cm다.


고대중국의 유적지에서 편경이 발견됐는데, 그 연대가 기원전 12세기까지 올라간다. 조선왕조에서 사용된 편경의 ‘ㄱ’자 모양은 하늘이 굽어 땅을 덮는 형상이라고 한다. 세종장헌대왕실록이나 악학궤범의 기록을 보면 경의 크기는 모두 같고 두께로 음의 높낮이를 조정한다고 나와있다.


편경은 모두 16개의 경석으로 이뤄져있는데 각각의 경석에는 율명, 즉 음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것이 아악에서 사용되는 ‘12율려’ 이다. 즉 한 옥타브는 6개의 율과 6개의 려로 구성된다. 편경에서 제일 낮으며 기본음의 역할을 하는 ‘황종’ 은 진동수가 5백28.6Hz로 피아노 건반 중앙에 있는 C4보다 한 옥타브 높은 다, 즉 다장조의 도(C5)에 해당한다. 한편 13번째 경석인 청황종은 진동수가 황종의 두배인 다, 즉 C6이다. 결국 16개의 경석은 1과 1/3 옥타브의 영역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얇은 경석과 두꺼운 경석 중 어느 쪽이 더 높은 소리를 낼까? 얼핏 생각하면 얇은 경석의 음높이가 더 높을 것 같다. 그런데 각퇴로 쳐보면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고음을 낸다. 왜 그럴까.


소리, 즉 음파를 비롯한 모든 진동은 용수철진자로 비유해 생각할 수 있다. 두개의 같은 용수철에 질량이 다른 추를 각각 매달았다고 해보자. 질량이 작은 추는 질량이 큰 추보다 진동을 빨리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진동수는 추의 질량에 반비례한다. 이번에는 추의 질량은 같게 하고 용수철을 달리해보자. 한 용수철은 느슨하고, 다른 용수철은 빳빳하다고 해보자. 느슨한 용수철에 매달린 추는 빳빳한 용수철에 매달린 추보다 천천히 진동할 것이다. 즉 진동수가 작다.


편경의 경우 각 경석의 두께차이는 용수철이 다른 것과 같은 효과다. 즉 두꺼워질수록 빳빳한 용수철인 셈이다. 결국 두꺼운 경석이 더 빳빳하므로 더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실제로 경석의 두께와 진동수, 즉 음높이는 비례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편경 음색의 비밀

편경의 황종과 피아노의 C5는 분명 같은 음높이지만 다른 소리로 들린다. 왜 그럴까. 두 악기의 음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리는 공기의 진동을 사람이 생리적·심리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소리에는 순음과 복합음이 있는데, 순음은 한가지 진동수로 이뤄진 소리고 복합음은 여러 진동수가 섞여있는 소리다.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는 복합음인데, 흔히 들을 수 있는 순음으로는 부저 소리가 있다.


복합음의 파형을 보면 여러가지 진폭과 진동수를 갖는 사인함수들이 더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한 형태의 파형은 푸리에 변환이라는 분석법을 거치면 각각의 진동수로 분리된 그래프로 바뀐다. 청아한 음을 내는 편경의 푸리에 변환 분석 그래프를 보면 몇개의 피크(peak), 즉 최고점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낮은 진동수의 피크가 바로 그 음의 음높이다. 사람이 음높이를 인식하는데는 소리의 지속시간이나 파형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도 작용하지만,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푸리에 변환 분석결과 나타나는 첫번째 피크의 진동수다. 이를 음의 ‘기본진동수’ 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보다 진동수가 높은 피크들은 무슨 역할을 할까. 바로 그 음의 음색을 결정한다. 이들 피크에 해당하는 진동수를 ‘조화진동수’ 라 부른다. 결국 편경의 황종과 피아노의 C5는 기본진동수가 같아 음높이는 같게 들리지만 조화진동수가 달라 다른 음색으로 들리는 것이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른 것도 같은 원리다.
 

한편 피아노의 건반처럼 편경의 16개 경석도 음높이만 다를 뿐 음색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경석의 기본진동수와 조화진동수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어 편경의 소리로 들리는 것일까. 필자는 푸리에 변환 분석을 통해 정말로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첫번째 조화진동수는 기본진동수의 1.5배, 두번째 조화진동수는 2.3배, 세번째는 3배이다. 이런 비율은 16개의 경석 모두에서 거의 비슷하게 유지된다.


복합음 비밀 밝힌 홀로그램

푸리에 변환 분석을 통해 편경에서 한가지 진동수의 소리만 나지 않고 여러가지 진동수의 소리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여러가지 진동수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실로폰을 먼저 생각해보자. 실로폰은 적당한 길이로 금속을 자른 다음 막대로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실로폰의 건반 위에 쌀이나 소금을 올려놓고 살살 쳐보면 건반의 가운데에는 소금이 튀어나가고 실로폰을 고정시킨 지점에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실로폰 건반의 모든 지점은 똑같이 진동하지 않고 부분마다 다른데, 진동이 커서 소금이 튀어 나가는 부분은 배, 진동을 하지 않아서 소금이 모이는 지점은 마디라고 한다. 건반의 배부분은 마디를 중심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동한다.


만일 건반의 마디가 아닌 지점을 고정시키면 건반이 진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실로폰의 경우 기본진동수일 때, 양끝으로부터 건반 길이의 0.224배인 곳에 마디가 두 개 생긴다. 그리고 그 때 건반의 진동수는 건반의 길이, 두께, 금속의 특성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건반은 이렇게 한가지 방식으로만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방식으로 진동할 수 있으며 배와 마디가 많아짐에 따라 진동수가 커진다. 막대로 건반을 치면 건반은 이러한 여러 진동방식이 혼합돼 진동을 한다. 그러나 각각의 진동방식은 고유한 진동수를 갖고 진동하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소리를 녹음해 푸리에 변환 분석을 하면 각각의 진동양식에 해당하는 진동수가 모두 나타나게 된다.


실로폰과 같은 사각판은 진동하는 모양이나 기본진동수를 예측하기 쉽지만, 편경과 같이 기역자 모양은 그런 정보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편경이 진동하는 모양 역시 소금이나 쌀을 써서 알 수 있지만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홀로그래피를 얻어서 분석한다. 즉 경석을 신호발생기로 진동시켰을 때, 그 진동수가 경석의 기본진동수나 조화진동수와 일치하면 특정한 형태의 광학간섭무늬, 즉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홀로그램의 흰 영역은 경석이 진동하지 않는 마디 부분이다. 조화진동수가 커짐에 따라 진동하는 모양이 보다 복잡해지고 배와 마디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홀로그래피를 통해 얻은 조화진동수와 푸리에 변환 분석을 통해 얻은 조화진동수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편경에 대한 물리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경석을 왜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었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기본진동수와 화음을 이루는 조화진동수의 얻어 청아한 음을 내기 위한 조율방법으로 추측된다. 편경 소리는 문예진흥원 사이트(www.kcaf.or.kr/cello/percuss/pyun2.html)에서 들을 수 있다.


이칙(夷則)

12율려의 9번째 율. 진동수가 8백39.4Hz로 현대 음계에서 올림사, 즉 다장조의 솔샵(${G5}^{#}$)에 해당하는 음이다.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ation)

파형의 형태를 띤 함수는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여러가지 진동수와 진폭을 갖는 사인(sin)함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 과정이 푸리에 변환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계산 과정이 필요하지만 오늘날에는 푸리에 변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순식간에 분석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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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유준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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