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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웰빙, 관람객은 흥미 진진

서울대공원 생태동물원으로 대변신 시작

 

내년 9월 문을 열 서울대공원 토종생태동물원 조감도. 한국 호랑이를 비롯해 13종 84마리의 동물들이 1만9천평의 널찍한 동물원에서 쾌적하게 살게 된다.


“어흥, 어흥.”

동물원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자못 우렁차다. 그러나 막상 호랑이사(舍)에 이르면 울타리 넘어 좁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호랑이의 딱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일까. 가끔 필자에게는 이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포효소리만큼 늠름하게 숲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위용을 바라볼 날도 머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이 동물을 위한 생태동물원으로 변신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호랑이뿐만 아니라 동물원의 대부분 동물들은 고향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콘크리트더미 속에서 일생동안 갇혀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많은 동물들을 수집해 관람객들에게 전시하는 것이 유명한 동물원을 가름하는 척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한된 공간에 많은 동물을 전시하려다보니 실내우리와 전시장이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또 외국의 희귀동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서식지에서 야생동물을 포획해 들여오던 동물원의 어두운 시기가 있었다.

이런 동물원의 모습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자 올해로 개장 20주년을 맞는 서울대공원은 매년 1백억원을 들여 공원 전체를 생태동물원으로 만드는 10개년 계획을 추진한다. 생태동물원은 야생상태와 가까운 서식지 환경을 조성해 동물들에게는 삶의 질을 높여주고 관람객들에게는 재미와 흥미를 보여주는 새로운 개념의 동물원이다. 그 첫 사업이 우리나라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을 전시하고 보전, 복원하는 토종생태동물원 조성으로, 지난 2월 27일 첫삽을 떴다.

1만9천평 규모의 토종생태동물원에는 한국호랑이를 비롯한 13종 84마리의 토종동물을 위한 삶의 터전이 마련된다. 내년 9월 완공될 예정인 토종생태동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관람객 반기는 수달

토종생태동물원은 단순히 토종동물을 모아놓는 곳이 아니다. 이들과 수천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문화까지 재현한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공원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토종생태동물원의 입구는 옛날 장터 모습이 물씬 풍겨 난다. 토담, 초가집, 물레방아가 설치돼 있고 토담에는 옥수수와 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마당에는 나무를 하던 지게, 물을 이고 나르던 물항아리가 놓여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관람객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에 대한 설화를 비롯해 관람하는데 도움이 될 각종 정보가 제공된다. 대형 유리창 너머에는 동물들에게 줄 먹이를 준비하는 사육사들의 바쁜 모습도 보여 동물들이 과연 어떤 먹이를 먹고 살아가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건물 중앙에는 토종생태동물원의 캐릭터인, 앙증맞은 수달 6마리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이 서식지 환경과 최대한 가깝게 꾸며진 대형 수조와 바위에서 자유자재로 수영하고 장난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동물전시 형태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동물의 생태와 활동 모습을 몰입해서 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수달을 구경하고 나면 본격적인 숲속 탐험에 나서게 된다. 길 양쪽에는 먼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안전과 행운을 빌어주는 장승, 솟대, 선돌이 자리잡고 있다.

제일 먼저 만나는 동물들은 깊은 산 중턱에 살았던 노루와 사슴이다. 동물방사장에는 큰 나무들로 숲을 만들고 원두막과 서낭당을 설치해 사람과 친숙한 노루와 사슴의 서식 환경을 만들어줬다. 한눈에 전경이 다 들어오는 나무 한그루 없는 현재의 방사장 모습과는 달리 새로운 전시장은 일정한 공간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자연생태 환경에서처럼 동물들이 숲에 숨어있기 때문에 보일듯 말듯 하다. 다음으로는 현재 멸종위기에 놓여 보호동물로 지정돼 있는 삵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랑목도리담비의 고운 털빛도 볼 수 있다. 또 커다란 고사목과 땅속에서 생활하는 오소리와 너구리의 활기찬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산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면 높은 바위산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산양들이 가파른 바위사이를 뛰어 다니는 묘기를 부리며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양들의 생태를 재현하기 위해 높은 암벽을 만들고, 산양들이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람대의 유리창을 통해서만 동물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산양쪽에서는 유리창 너머 관람객 모습이 보이지 않는 특수 유리를 사용해 최대한 동물복지를 유지하도록 배려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양이과 동물 삵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체험

다음으로 토종생태동물원의 최고 동물인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9마리의 한국호랑이가 2개의 큰 방사장을 어슬렁거린다. 방사장 중 하나에는 깊은 산속 외따로 떨어져 있는 굴피집과 옥수수 밭이 나오고 뒤편에는 폭포수가 흐른다. 운이 좋은 날에는 호랑이가 목욕을 하는 장면도 보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방사장에는 고구려 시대 강서대묘와 국내성의 성곽 축조과정 모습을 재현했다. 일꾼들이 없는 사이 호랑이가 나타나 놀고있는 극적인 모습이 연출될 것이다.

관람객은 내부에서 대형 유리창을 통해 바로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한국호랑이의 위용을 관찰하고 2층의 전망대로 올라가 호랑이가 뛰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한 내부에는 고구려 벽화와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도 있는 호랑이의 뼈, 털, 이빨, 발톱이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런 체험을 통해 호랑이가 우리 산속에서 사라져간 원인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구미호 무대 나타나
 

남한에서는 사실상 멸종된 반달곰.


호랑이나 반달곰처럼 자연서식지에서 멸종된 중요 동물들의 경우에는 전시장과 별도로 전용 번식장을 갖게 된다. 종을 보전하고 복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번식장은 관람객과는 철저히 차단돼 있다. 동물들의 번식만을 위한 러브호텔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다.

동물원은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동물원마저 이러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 땅에서는 더이상 야생동물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벌써 호랑이, 반달곰, 표범, 늑대, 여우가 서식지에서 멸종됐고 수달, 삵, 산양, 사슴, 노루 등도 멸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토종생태동물원은 우리나라 야생동물 보전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살아있는 환경보전 교육장이 될 것이다.

호랑이를 보고 나면 꼬불꼬불 오솔길을 지나는 여우고개를 만나게 된다. 키가 큰 억새풀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오싹한 기분이 든다. 여우사에 있는 흉가와 무덤은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구미호의 전설을 눈앞에 재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동물사는 반달곰을 위한 것으로, 곰의 생태환경에 적합하도록 큰 폭포와 수영장을 설치했다. 반달곰들이 자연환경에 그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했기 때문에 동물원이 동물을 학대한다는 비난은 더이상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내년 9월 토종생태동물원이 완공되면 서울대공원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 동물원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람객들에게도 최고의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토종야생동물들을 별도로 전시하고 문화요소를 더한 형태의 생태동물원은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동물원은 외국의 희귀 야생동물들을 수집해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단순한 전시형 동물원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토종생태동물원을 시작으로 10년에 걸친 동물원 변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서울대공원은 외국의 어느 동물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동물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200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한창훈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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