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코알라, 왈라비.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단어들은 어느 나라 말일까. 영어사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사실은 다룩(Dharuk)어에서 차용한 단어들이다. 다룩어는 시드니 인근에 살던 호주원주민이 쓰던 말로 이미 오래 전에 멸종한 언어다. 다룩어처럼 사용자가 많지 않은 토착어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지난 2월 16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에 참석한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멸종속도가 동식물의 멸종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금세기 말까지 현재 말해지는 6천8백가지의 언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전망이다.
이런 ‘언어 대멸종’ 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화의 확산이라고. 사용자가 수천-수만명 뿐인 토착언어들이 사회가 통합되면서 공용어, 특히 영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젊은이들이 토착어를 외면함에 따라 이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노인들이 사망하면 말도 사라지게 된다.
일본 북해도에 살고있는 소수의 아이누인들은 현재 일본말을 쓰고 있으며 터키의 지역어였던 유비크(Ubykh)어는 지난 1992년 마지막 사용자가 사망하면서 사라졌다.
언어의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10억명 이상이 쓰고 있는 중국어가 있는 반면 인구 5백만의 뉴기니아섬에는 1천여개의 언어가 있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이 쓰는 언어들이 없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일까. 미국 예일대 스테판 앤더슨 교수는 “한 언어가 사라질 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잃는 것” 이라고 말한다. 언어의 소멸과 함께 민족지리학과 문화에 대한 귀중한 정보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사멸이 인간의 인지과학을 연구하는데도 큰 손실이라고 말한다. 미 스와스모어대 데이빗 해리슨 교수는 “우리는 여러 언어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언어에 따라 세상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며 “따라서 언어의 소멸은 인간의 뇌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지구조를 이해하는데 공백을 낳는다” 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언어의 멸종을 막을 획기적인 대책이 없다. 따라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말과 문법을 기록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회의 참석자들은 주장했다.
한편 사라져 가는 언어를 되살리려는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1999년 ‘세계 모국어의 날’ 을 만들었다. 지난 2월 21일은 다섯번째로 맞는 세계 모국어의 날이었다. 유네스코는 다언어사용주의(multilingualism)를 옹호하면서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매체에서도 각국의 고유언어를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사용자 기준으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언어인 한국어 역시 최근 ‘영어 공용화론’ 을 비롯, 사이버 공간에서의 언어파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결과 세대간, 계층간의 의사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언어 멸종이 전혀 남의 얘기인 것만은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