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부터 15일까지 부산교육대에서는‘제3차 한국 청소년물리공동탐구토론대회’(KYPT, Korean Young Physicists’ Tournament)가 열렸다. KYPT는 국제 물리공동탐구토론대회(IYPT)의 국내대회라는 성격을 지닌다. 한국영재학회는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으로 2000년부터 2년에 걸친 기초조사와 국제대회 참관을 통해 교육적 가치와 타당성을 연구했고, 2001년부터 KYPT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과학고를 대상으로 한 국내대회를 개최했다.
KYPT 조직위원회는 이 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 중에서 IYPT에 출전할 국내 대표팀을 선발한다. KYPT에서 입상한 학생들은 다음해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국내 대표팀으로 선발될 자격을 지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KYPT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올해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제17차 IYPT에서 독일과 공동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둠에 따라 앞으로 국내대회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영화 장면 같은 치열한 공방
올해 KYPT는 조직위원장 박찬웅 교수(경원대)와 심사위원장 권숙일 교수(전 과기부장관,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총 8팀이 참가했기 때문에 4팀씩 두개조로 나눠 3회의 예선전을 실시했고, 상위 4개팀이 결승전을 치뤘다. 각 팀은 팀장을 포함한 5명의 학생과 지도교사 1인으로 구성됐다.
KYPT는 문제해결을 위한 이론적 모형을 제시하고(가능하면 수준에 맞는 수학을 활용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실험에 의해 측정된 결과를 해석해 제안된 이론적 모형과의 일치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이론적 접근과 설명이 가능하고 실험 방법도 다를 수 있다. 또한 문제에 따라 학생 수준에서 실험의 수행이나 이론적 모형의 제시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전문적 과학활동에서도 항상 겪는 일로서, 학생들은 제한된 여건 속에서 문제를 물리적으로 의미 있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문제 해결의 다양성과 그 다양한 해결 방식의 타당성을 놓고 논쟁하는 것이 바로 이 대회의 장점이자 가장 큰 교육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KYPT 문제들은 실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단한 현상부터 물리학계에서 논쟁이 됐던 사례, 새로운 고안이나 실험 방법의 제시 등 실제 전문적 과학활동에서 부딪칠 수 있는 주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든 팀이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경기에서는‘전략적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경기는 전적으로 국제대회의 규정에 따라 운영된다. 따라서 경기의 모든 발표와 논쟁의 과정은 영어로 진행되며, 토론이 종료되면 심사위원의 질문이 있은 뒤 심사위원들은 각 팀에 대한 점수를 즉석에서 발표한다. 다만 국제대회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 조직위원회의 유권해석에 의해 그 대회의 경기 규칙을 사전에 공지한다.
올해 참가팀은 모두 최선을 다해 선전했지만 예선전이 거듭됨에 따라 각 팀의 우열이 점차 드러났다. 그것은 물리실력을 바탕으로 한 문제해결 능력, 팀의 전략적 판단능력, 공방에서의 순발력, 팀의 조직력, 영어 표현능력, 발표와 논쟁에서의 태도 등에 의해 결정됐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예선전 결과, 종합점수 순위에 따라 인천과학고 1위, 경기과학고 2위, 부산영재학교 B팀 3위, 부산영재학교 A팀 4위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국제대회 규정에 따라, 예선 결과가 발표된 후 결승전 진출팀은 4시간 이내에 자기 팀이 발표할 문제들을 선정해 조직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발표할 문제의 우선권은 예선전 성적에 따라 결정되므로 각 팀은 성적순으로 1위의 1문제부터 4위의 4문제까지 각각 제시한다. 조직위원회는 각 팀이 발표할 문제를 우선권에 따라 선정해 즉시 공개한다. 심사위원회에서는 평가의 타당성을 유지하고 심도 있는 판단을 위해, 결승전에서 한 회전이 끝날 때마다 모든 심사위원이 질문을 하도록 결정했다.
이번 결승전에서는 4팀 모두가 국제대회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줬다. 모든 팀의 영어 구사능력은 대단히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토론의 자세도 매우 돋보였다. 특히 결승 1회전에서 인천과학고(reporter)와 경기과학고(opponent)의 대결, 마지막 4회전에서 부산영재 A팀(reporter)과 인천과학고(opponent)의 대결에서는 한편의 영화에서 클라이맥스를 보듯 치열한 공방을 거듭했다.
그 결과 인천과학고가 영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과기부장관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이정빈 학생의 뛰어난 능력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부산영재학교 A팀은 꾸준히 선전을 펼쳐 예선전 종합 4위에서 결승전 2위로 도약하는 쾌거를 이룩하며 한국영재학회장상인 은상을 수상했다. 반면 예선전 2위와 3위로 진출했던 경기과학고와 부산영재학교 B팀은 동상을 수상했는데, 발표 문제를 선정하는데서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고 보여진다.
장려상은 서울과학고, 대구과학고, 민족사관고, 충북과학고가 받았다. 팀의 성적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발군의 능력을 보인 학생들이 있었다. 특히 서울과학고의 김정호 학생은 팀이 예선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특별상(물리학회장상)을 수상했다.
집중교육 후 내년 국제대회 출전
올해 참가팀의 문제해결 수준은 작년보다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또한 영어 구사능력과 토론 능력에서도 대표팀을 선발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다만 KYPT에 지속적으로 참가해왔던 경기과학고와 인천과학고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부터 경기 전략을 세우는 것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따라서 경기를 이끌어나가는데 다소 불리한 입장이었다.
KYPT는 점차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부산영재학교에서 두팀이 참가하고, 민족사관고와 서울과학고가 참가한 것은 이 대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참가팀 수가 많지 않은 까닭은 경기의 특성상 일반고의 참여가 어렵고, 대입에 과학고가 불리한 상황에서 과학고 학생들이 대입 특전이 없는 KYPT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모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대회는 경기의 방식으로 볼 때 25개팀 이상이 참가하는 경우 대회의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팀의 수가 많아지면 문제수와 예선전 횟수가 많아져야 하는데, 27개팀에서 팀마다 5명이 17개의 문제로 다섯번의 예선전을 소화하는 것이 최대 한계라 알려져 있다. 이 대회는 대규모의 팀보다는 우수한 학생들이 참여할 때 더 의미 있게 운영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대회 규모가 좀더 확대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 대회가 물리올림피아드와 같이 진학에 도움이 돼야 하며 또한 실제로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널리 홍보돼야 할 것이다.
KYPT는 물리를 주제로 한 학생들의 연구능력과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팀의 전술적 전략적 조직력 등을 종합적으로 요구한다. 따라서 이 대회의 교육적 가치는 대단히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물리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개인이 아닌 팀 중심의 훈련이 쉽지않고, 장기간 문제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 실제 교육에서 어려운 점으로 남아 있다.
결승전에 진출한 학생들과 특별상을 수상한 학생은 모두 내년도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스베인에서 열리는 제17차 IYPT에 국내 대표팀으로 선발될 자격을 갖는다. 이들은 소정의 교육을 통해 개별적으로 대표팀에 선발된 후, 합숙하면서 집중교육을 받고 내년도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올해 대회에 출전한 학생들의 수준으로 본다면 내년도 국제대회에서 결승전 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대회의 규모가 확대돼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다면 국제적으로 우리 연구능력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