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활용 : ③ DNA 임무수행 동영상으로 즐긴다]

단백질 합성의 비밀 생생한 중계방송

DNA의 두께는 고작 3nm. 이 가닥에는 모든 생물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정보가 들어있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SPM은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친구 집에 전화를 했다가 친구의 형이나 아버지의 목소리를 친구로 오인해서 낭패본 일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형과 남동생, 그리고 언니와 여동생은 목소리뿐 아니라 생김새도 많이 닮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DNA(유전자)의 상당 부분을 서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DNA는 생명체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식을 낳고, 늙어 죽는 생명현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때문에 DNA 속 정보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판독해내고 필요에 따라 정보를 변환하는 것이 오늘날 생명과학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DNA 연구와 같은 생명과학에서 SPM은 어떻게 쓰일까.

1951년 로살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영국의 여성 과학자는 X선 회절실험을 통해서 나선형 구조가 여러 종류의 DNA에 공통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의 실험 결과에 힌트를 얻어서 2년 후인 1953년 왓슨과 크릭은 DNA가 두줄을 꼬아 만든 긴 밧줄 모양이라는 DNA 이중나선의 원자모형을 발표했다.

X선 회절은 우리가 병원에서 찍는 X선 사진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다. X선 사진은 X선의 산란을 이용해 뼈의 모양을 보여주지만, X선 회절은 원자 배열 규칙에 따라서 점들로 이뤄진 무늬를 보여준다. 이 무늬에서 실제 모양을 유추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X선 회절은 ‘간접적인’ 실험 기술이다.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은 DNA의 모양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처음으로 직접 DNA(수nm 두께)를 보여준 것은 전자현미경이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은 단지 이전에 밝혀진 DNA 구조를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이후 DNA 연구에 획기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유는 전자현미경을 사용한 DNA 연구에 몇가지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우선 전자현미경으로 보려면 내부가 진공상태여야 하기 때문에 DNA에 있는 수분을 모두 날려보내야 한다. 그런 후 DNA를 기판 위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킨다. 이는 더이상 DNA를 생명체의 일부분으로 보기 어려운 상태다. 따라서 전자현미경이 제아무리 높은 해상도의 DNA 구조를 보여준다 해도 생명현상이 인위적으로 멈춰진 상태에서의 관찰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제약 조건이다. 생명체가 신비롭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살아 있다’는 오묘한 수수께끼 때문이지 않은가. 이미 죽은 생명체를 무슨 재미로 연구한다는 말인가.

새로운 형태의 현미경 SPM은 이같은 제약을 해결했다. SPM은 물, 기름과 같은 액체 속에서도 구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DNA 구조를 보기 위해 수분을 말려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보다도 SPM이 생명과학 연구에서 획기적인 새로운 도구로 부상한 이유는 살아있는 영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SPM은 생명체가 처한 조건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상태를 동영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즉 생명현상을 ‘살아 움직이는’ 모습 그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물학 연구에서 SPM의 이같은 응용을 처음 선보인 사람은 부부 과학자였다. 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 폴 한스마, 그리고 생물학과 교수 헬렌 한스마가 그 주인공.

한스마 부부는 1997년 미국 물리학회 정기모임 자리에서 SPM을 이용해 나노세계에서 벌어지는 생명현상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DNA에서 mRNA가 만들어지는 10여분간의 전사과정이었다.

DNA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현상을 유지시키는 단백질 합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단백질은 DNA의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DNA 정보로부터 단백질이 합성되는 과정은 크게 2단계로 나뉜다. 우선 RNA 폴리머라제라는 효소가 DNA 이중나선을 지나가면서 한가닥의 mRNA를 만든다(전사, transcription). 이후 mRNA는 세포핵을 빠져나가 세포질에 있는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합성한다(번역, translation). 이같은 단백질 합성 모델은 이미 수십년 전에 밝혀졌다.

DNA 전사 과정 포착

하지만 실제 모습은 한스마 부부에 의해 최초로 선보였다. 이를 위해 한스마 부부는 우선 SPM 중 시료 표면에 거의 손상을 주지 않는 비접촉 AFM 기술을 개발했다. AFM은 탐침과 시료 표면의 거리를 1nm 정도로 두고, 탐침 원자와 시료 표면 원자 사이의 힘에 의해 탐침에 달린 캔틸레버의 휜 정도로 표면의 윤곽을 파악한다. 그런데 이때의 힘이 시료 표면의 원자나 분자의 결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시료표면이 손상된다는 말이다. 특히 DNA와 같은 생체물질은 무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때문에 AFM 중 탐침과 시료와의 거리를 좀더 떨어뜨려 시료표면의 손상을 줄이면서 표면윤곽을 파악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비접촉 AFM이다. 비접촉 AFM의 경우 탐침과 시료 사이의 거리를 좀더 멀리 떨어뜨렸기 때문에 탐침과 시료 표면의 원자 사이의 힘이 적다. 따라서 일반적인 AFM이 표면윤곽을 캔틸레버가 휜 정도로 측정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캔틸레버를 일정한 진동수로 지속적으로 진동시킨다. 그러면 원자간의 약한 힘으로도 쉽게 캔틸레버의 진동수가 변하게 된다.

한스마 부부가 해결해야 할 또다른 문제는 생체물질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 움직임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높은 해상도를 얻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SPM 탐침이 표면을 훑고 지나가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선 SPM 기판 위에 얇은 판 모양의 액체(물)를 펴고, 여기에 DNA와 RNA 폴리머라제를 넣는다. 그런 후 아연 이온을 추가해 움직임의 속도를 느리게 했다. 한편 DNA의 전사속도를 느리게 해야 했는데, 이는 mRNA를 만드는 물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공 모양의 RNA 폴리머라제가 얇은 실 모양의 DNA의 중간쯤 다가간다. 그런 후 RNA 폴리머라제는 가만히 있는 듯 하고, DNA는 한방향으로 이동해나간다. 마치 RNA 폴리머라제라는 터널을 DNA가 지나가는 듯하다. 그러면서 mRNA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SPM은 아직까지 mRNA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SPM 전공자들이 넘어야 할 과제다. 어느덧 시간은 10분이 흘렀고 전사과정은 끝나고 DNA는 RNA 폴리머라제로부터 멀어진다.

이 장면을 지켜본 청중 가운데 한 생물학자는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의자의 끝자락에 앉아서 지켜보았을 정도다”라고 표현했다. 한스마 부부는 장래에 이 기술을 이용해 염기서열 판독을 보다 쉽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SPM이 생명과학 연구에 이용되는 또다른 예는 단백질 연구다. DNA의 정보에 따라 합성된 단백질은 초기 아미노산들이 한줄로 연결된 긴 체인 형태다. 이 체인은 독특한 형태로 접히는 과정을 거쳐 단백질 모양을 갖추고 고유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해서 생명과학자는 몇가지 질문에 대해 골몰해 있다. 단백질이 어떤 모양으로 접혀 있는지, 접히는데 에너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접힌 구조가 구체적으로 단백질의 기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이다.


단백질 접히는 힘 측정^단백질의 한쪽 끝을 기판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을 SPM 탐침에 붙 인다. 탐침을 기판으로부터 멀리하면서 단백질을 잡아당기는데 필요 한 힘을 측정한다.


${10}^{-12}$의 힘 직접 측정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기란 쉽지 않다.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에 필요한 힘은 고작 몇백pN(피코뉴턴=10-12N)으로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생명과학자들은 실질적인 측정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긴 체인의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구성 분자 간의 수소결합 등 상호작용을 계산해낸다. 이 결과 에너지 상태가 가장 안정할 때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는지를 파악해낼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가 과연 정확한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바로 이에 대해 SPM은 대답을 해줄 수 있다. 1997년 독일의 과학자는 사이언스지에 단백질이 접히는데 필요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접히는지를 SPM을 이용해 실제로 측정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우선 단백질의 긴 체인의 한쪽을 시료의 기판 위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반대편 끝을 AFM의 탐침에 고정시킨다. 여기에는 쉽지 않은 나노조작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후 탐침을 시료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여간다. 이때 단백질을 잡아당기는데 필요한 힘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바로 탐침에 부착된 캔틸레버의 휜 정도로 말이다.

단백질이 최대로 풀리는 거리까지 탐침을 움직였으면 다시 반대방향으로 바늘을 움직인다. 이때 단백질이 잡아당기는 힘을 측정한다. 탐침과 기판과의 거리에 따라 측정된 힘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마치 톱니모양처럼 단백질을 끌어당길 때 어느 위치에서 많은 힘을 줘야 한다. 또한 많은 힘을 주는 위치가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이 결과는 단백질이 여러개의 뭉치로 구성돼 있고, 각각의 뭉치가 갖는 길이가 서로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이 단백질을 푸는데 필요한 힘은 2백50pN. SPM이 아니면 이 미약한 힘을 측정하기 어렵다. 앞으로 SPM은 단백질 내의 상호작용을 푸는 열쇠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DNA나 단백질과 같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생명 과학 문제는 참으로 방대하다. 이 과정에서 SPM을 비롯한 나노과학이 생명과학의 문제를 푸는 제1도구가 되지 않을까.

200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세종 교수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