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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지옥을 오고간 프레온

발명가에게도 천당과 지옥은 존재한다. 처음에는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다가 시간이 지나 악마의 작품으로 변하는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프레온’(CFC, 정식명칭은 염화플루오르화탄소)이다.

인류가 개발한 가장 완벽한 물질

프레온은 1930년대 미국의 듀퐁사의 미지웨이가 발명했다. 잘 변질되지 않고, 쉽게 액화되며 열효율이 좋아 냉장고, 에어컨 등의 냉매로 적격인 데다가 반도체의 세정제, 단열재제조용 발포제, 에어로졸 분사제로도 사용되는 만능물질이다. 프레온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폭발적으로 보급돼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그러나 프레온처럼 극적인 운명을 가진 물질도 드물다. 미지웨이가 처음 개발했을 때, 프레온은 불소 화합물이므로 유독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미지웨이는 독성이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다.

실험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실험용 쥐인 기피니그를 수없이 프레온가스 통에 넣었는데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지웨이는 프레온이 안전한 물질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돌발 사고가 터졌다. 기피니그가 모두 죽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제출된 것이다.

결국 프레온은 생산되지 못하고 본격적인 원인 규명에 들어갔는데 결론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기피니그가 죽은 실험통 안에는 물이 담긴 비커가 들어 있었는데, 여기에서 치명적인 포스겐이 발생했던 것이다. 범인은 프레온이 아니라 포스겐이었다.

그 후 프레온은 20세기 인류가 개발한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프레온이 지표에서 약 25km 높이에 있는 오존층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오존은 인체에 해로운 대부분의 자외선을 걸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결국 국제적인 규제를 통해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프레온의 사용을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프레온에 얽힌 음모론의 실체

그러나 프레온은 다시 한번 구설수에 휘말린다. 프레온의 규제는 듀퐁사의 음모에서 비롯됐다는 주장 때문이다. 프레온은 1930년에 개발된 이후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냉장고, 에어컨, 스프레이, 컴퓨터 세척제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면서 듀퐁사는 전세계로부터 엄청난 로열티를 받았다. 듀퐁사는 이 물질 하나로 돈방석에 올라선 것이다.

듀퐁사는 제조법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미국의 특허는 25년이 유효기간이며 1회에 한해서 연장이 가능한데, 50년이 지난 1980년부터는 누구라도 프레온을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서 듀퐁사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바로 프레온의 약점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얘기다. 그들은 프레온의 약점, 즉 오존을 파괴하는 성분인 염소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물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듀퐁사가 국제 여론을 움직여 프레온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시키고, 그들이 개발한 대체 물질을 공급하려 한다는 것이 음모론의 실체다.

발명 당시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유용한 물질이 추후에 비난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해충 제거로 인구 증가에 의한 식량난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든 기적의 물질 DDT도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많은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1950년대 말에 무독성 수면제로 전세계를 열광시킨 탈리도마이드는 1만여명의 기형아를 만들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겨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는 원자폭탄도 가장 말이 많은 발명품이다.

좋은 발명품은 인간들에게 보급된 후에야 비로소 그 독성여부를 알 수 있다. 발명가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지만 발명품이 지구상에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천당과 지옥을 오고간 프레온

200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종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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