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하의 바깥에 다른 은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70년 전에 불과하다. 그만큼 관측을 바탕으로 한 현대 우주론의 뿌리는 얕다. 하지만 현대우주론은 많은 우주의 비밀들을 알아냈다. 지금까지 현대우주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간단하게 살펴본다.
현대우주론에 따르면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주도 별도 원자도 없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마저도 태어나지 않았다. 처음 시간과 공간이 태어나는 시점을 우리는 대폭발, 혹은 빅뱅(big bang)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 전에는 무(無)의 세계, 알 수 없는 세계였다.
현대우주론의 출발점은 1917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정적우주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916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면밀히 살핀 러시아의 수학자 프리드만(1888-1925)과 벨기에의 신부 르메트르(1894-1966)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의 생각은 우주가 팽창해야 한다는 것. 프리드만은 1922년 “우주는 극도의 고밀도 상태에서 시작돼 점차 팽창하면서 밀도가 낮아졌다”는 논문을, 르메트르는 1927년 “우주가 원시원자들의 폭발로 시작됐다”는 논문을 각각 발표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들의 논문을 무시해버렸다.
아인슈타인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하는 사건은 1929년에 발생했다.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이 은하의 후퇴속도(적색이동)를 관측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1931년 “우주는 무한하고 정적(靜的)”이라는 당시의 상식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우주상수를 도입했던 것을 철회했다.
허블의 우주팽창설은 두가지 점에서 과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나는 우주가 팽창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주가 언제까지 팽창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초기 우주의 모습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계산해낸 과학자는 프리드만의 제자인 러시아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가모프(1904-68)였다. 그는 1946년 초기 우주는 고온고밀도 상태였으며 급격하게 팽창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탄생(빅뱅) 후 우주의 온도는 1초 때 1백억℃, 3분 후 10억℃, 1백만년이 됐을 때는 3천℃로 식었다. 또 우주 초기에는 온도가 너무 높아 무거운 원자들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재 우주에는 이때 생긴 수소(75%)와 헬륨(25%)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1948년 미국의 물리학자 랠프 앨퍼(1921-)와 로버트 허먼(1914-)은 초기 우주의 흔적인 복사선(우주배경복사)이 우주 어딘가에 남아 있으며, 그 온도는 영하 2백68℃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허블이 발견한 은하들의 적색이동, 가벼운 원소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주배경복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빅뱅우주론이다.
그런데 호일(1915-), 본디(1919-), 골드(1920-) 등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천문학과 교수들은 빅뱅이론이 왠지 못마땅했다.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모든 물질(은하와 별)이 한 점에 모이는 초고온 초밀도의 특이점이 생긴다. 즉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1948년 ‘정상우주론’(steady state cos-mology)을 들고 나왔다.
정상우주론에서는 우주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균일할 뿐더러 등방적이기 때문에, 우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같은 꼴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같은 비율로 늘어나기 때문에 허블법칙을 만족한다. 관측사실과 잘 일치하고, 특이점을 피할 수 있는 정상우주론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빅뱅이론과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한편 빅뱅(Big Bang)이란 말은 호일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주가 어느 날 갑자기 빵(bang)하고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이론도 있다”며 가모프의 이론을 비아냥거리면서 생겨났다. 이때부터 가모프가 주장한 우주론은 빅뱅이론이라고 불렸고, 가모프 역시 자신이 처음 지은 ‘원시 불덩이’(primeval fire ball)란 말 대신 이를 사용했다.
그러나 수모를 당하던 빅뱅이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또 나타났다. 1964년 벨연구소에 근무하던 독일 태생의 미국 천체물리학자 아노 펜지아스(1933-)와 로버트 윌슨(1936-)이 1948년 앨퍼와 허먼이 예언했던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것이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영하 2백69.5℃(3.5K)로 예언과 1.5℃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펜지아스와 윌슨은 허블의 우주팽창 이후 최고의 관측이라고 일컬어지는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공로로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빅뱅이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우주배경복사는 또 하나의 의문을 낳았다. 우주 곳곳에서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복사선이 어떻게 모두 똑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1980년 MIT 출신의 천체물리학자 앨런 구스(1947-)는 인플레이션 가설을 세웠다. 인플레이션 가설에 따르면 빅뱅 이후 1초 이내에 우주가 ‘10억배의 10억배의 10억배의 10억배’ 이상 커졌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가설은 등방성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특징적인 작은 변동들을 예언했다. 이 예언은 1992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의 조지 스무트(1945-)가 코비(COBE)위성의 관측결과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이론 역시 우주의 초기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또 우주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1917년 아인슈타인이 도입했던 우주상수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