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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과학기술용어

십이지장은 ㄷ자밸, 맹장은 막힌밸

과학기술의 원리가 남과 북에서 달리 작용할리 없다. 하지만 50년 분단의 역사는 남북의 과학기술용어를 다르게 만들었다. 외국말로는 통하는데 정작 조상이 물려준 우리말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기술용어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돼 북한의 수학교사가 남한의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여러분, 오늘 수업할 내용은 ‘세평방정리’입니다.”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리자, 다시 교사는 말했다.
“여러분이 아직 세평방정리를 안 배운 모양인데, 그러면 ‘씨수의 덜기’나 ‘안같기식’을 공부할까요?”
그래도 학생들의 반응이 변함 없자 교사가 말했다.
“할수없지. 그럼 ‘모임’부터 시작합시다.”

북한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세평방정리’라고 한다. ‘씨수의 덜기’는 ‘소수의 뺄셈’이고 ‘안같기식’은 ‘부등식’을 말한다. 그리고 수학에서 말하는 ‘모임’은 ‘집합’이다. 맨앞에 ‘어느날 갑자기’라고 쓴 것은 우리가 준비없이 통일을 맞이할 경우를 뜻한다.

현재 남과 북에서 사용되는 과학기술용어는 전분야에 걸쳐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더욱 큰 차이를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앞서 예를 든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한나라 안에서 지역에 따라 언어가 다르면 그로 인해 겪는 불편은 헤아릴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술용어의 혼란은 연구에 큰 손해를 끼치고, 아울러 교육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해방 전까지 우리 민족은 각지방 고유의 향토문화와 사투리가 있었지만 표준말에는 남과 북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과 소련군이 남쪽과 북쪽에 각각 들어오면서 한반도는 나뉘어졌고 지금도 이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반세기에 걸쳐 철저한 격리상태가 지속되다보니 남북 과학기술용어의 차이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은 비교적 융통성 있게 과학기술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소위 ‘주체성’에 입각해 과학기술용어를 정리, 사용해 왔다.

북한의 과학기술용어는 최근의 제한된 자료를 통해 조사했을 때 몇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북한은 한자를 쓰지 않는다. 북한의 과학기술용어들을 살펴보면 가능한 한 우리의 전통적인 말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한 점을 알 수 있다. 남한은 대부분 한자로 된 말을 사용하는데 반해, 북한에서는 한자로 된 말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천문학 분야에서 북한은 혜성을 ‘살별’, 개기월식과 개기일식을 각각 ‘완전 달가림’과 ‘완전 해가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남돌이’와 ‘제돌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각각 공전과 자전을 일컫는다. 앞서 수학용어의 차이를 비교할 때도 느꼈겠지만 다소 어색한 기분이 들면서 한편으로 순한글이라는 점에서 애정이 간다.

해부학 분야에서 북한은 십이지장을 ‘ㄷ자밸’, 맹장을 ‘막힌밸’, 직장은 ‘곧은밸’이라 한다. 기계·금속 분야에서는 정밀도를 ‘바름도’, 과부하를 ‘겨운짐’, 철광석을 ‘쇠돌’, 인장강도를 ‘당김세기’라고 일컫는다.

북한 사람들이 컴퓨터를 다룰 때, ‘자료기지’가 어떻다고 하면 그것은 데이터베이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또 만일 북한사람들과 만나 컴퓨터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다면 ‘건반’은 키보드, ‘감시장치’는 모니터라고 알아둘 일이다. 한편 서구어의 표기에 있어서 우리가 대체로 영어식을 따르는 반면, 북한은 옛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식 발음을 따르는 예가 많다.

이밖에 남한과 북한은 각각 서울과 평양 지역의 말을 표준말로 삼는다. 다시 말해 북한은 남한에서 평안도 사투리라고 알고 있는 것을 표준말로 쓰고 있는 셈이다. 남한에서 비장(지라)이라 불리는 인체의 부분명칭은 북한에서 ‘기레’인데, 이것은 원래 평안도 사투리이다. 이처럼 북한 과학기술용어가 남한과 다른 것은 용어를 정의하거나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과 함께, 표준말과 맞춤법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겨레의 분단상태는 남북의 언어 소통과 학문 분야의 교류 발전에 담을 쌓고 있다. 이런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냉전이란 단어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세계의 흐름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과거의 적대국조차도 우방이 되는 현실이다. 우리도 과거에 적대국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등과 국교를 맺음으로써 남북통일의 가능성 또한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북통일에 대비하고, 근래 남북간의 문호가 개방됨에 따라 활발해지고 있는 민간 기업들의 대북 진출을 활발히 하기 위한 준비로서 그 매개체가 되는 과학기술용어의 상호 이해 및 통일은 절실하다고 하겠다. 과학기술용어의 남북간 이질성은 남북이 통일될 때 부각될 어려움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고, 그것은 통일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과 학문의 발전에 중대한 장애 요인이 되는 용어의 혼란을 미리 막아야 하고, 그 대책으로 남북간의 과학기술분야의 왕래·교류가 필요하다. 남과 북의 과학기술인들이 서로 왕래하는 가운데 좋은 점은 서로 함께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과학기술용어를 체계화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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