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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부분적인 발명을 모아 무선전신기를 만든 마르코니.


1901년 12월 12일, 이탈리아의 발명가 마르코니(1874-1937)는 대서양 횡단 무선전신에 성공했다. 영국 콘월주의 폴듀와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까지는 3천5백70㎞. 당시 과학자들은 전파로 통신할 수 있는 거리가 1백60-3백20㎞일 거라고 주장했으나, 무선전신기를 발명해 처음으로 무선전신기회사를 차린 마르코니가 뒤집은 것이다. 첫번째 송신문자는 's'자였다.

무선전신의 씨앗을 뿌린 사람든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1857-1894)였다. 그는 1886년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이 맞는지 그른지 확인하기 위해 전자기파를 검출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이것이 무선통신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구글리엘모 마르코니는 헤르츠의 장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다가, 1895년 가족 소유의 농장에서 3.2㎞떨어진 곳에 무선신호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에서도 무선전신실험에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마르코니만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진 못했다.

마르코니는 22살 때인 1896년 영국으로 건너가 무선전신에 관한 특허를 취득했고, 이듬해 런던에 마르코니무선전신회사를 설립했다.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무선통신에 성공하면서부터다.

19세기 말 식민지 개척과 세계 무역에 힘쓰던 제국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해외통신망이었다. 그래서 나라마다 전신과 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해저케이블을 깔았다. 1900년 영국은 해외로 4억통의 전보를 쳤고, 미국에 보급된 전화기의 수는 거의 1백만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당시 전선을 이용한 통신이 매우 발달하고 있었음 을 보여준다.


무선전신은 진공관의 발명으로 크게 발전했다. 사진은 1906년 3극 진공관을 발명한 포레스트.


그러나 전선을 이용한 통신은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수만㎞ 떨어진 곳까지 전선을 깔기 어려웠고, 직접 통신할 수 있는 통신거리가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수동교환기도 상당수 필요했다. 특히 군인들을 싣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드나들던 군함과, 무역상품을 싣고 오대양을 누비던 선박과 교신할 수 없다는 것은 크나큰 난점이었다. 그런데 20대의 이탈리아 청년이 무선전신기를 개발해 그러한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주었다.

초기 무선통신은 해저전신사업자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받았다. 이때 마르코니를 구하게 된 것이 바로 대서양횡단 무선전신의 성공이다. 거의 4천㎞에 달하는 곳까지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선전신 밖에 없다는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육지와 선박, 선박과 통신은 무선전신의 독무대가 됐다.

마르코니가 대서양횡단 무선전신에 성공했던 것은 사실 행운이었다. 지구가 둥글기때문에 전파가 영국과 캐나다 사이를 직접 오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지구 밖에는 전파를 반사시켜주는 전리층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마르코니가 그런 원리를 알리 없었다. 전리층의 존재는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924년 영국의 물리학자 애플턴(1892-1965)에 의해 밝혀졌다.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을 유명하게 만든 일화도 있다. 마르코니는 1904년부터 바다 위에 떠있는 선박들에게 무선전신을 이용해 뉴스속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어느날 영국에서 캐나다로 가는 정기여객선에는 살인을 하고 정부와 함께 도망 중인 흉악범이 숨어들었다. 선장은 무선전신이 제공하는 뉴스속보를 통해 살인사건과 흉악범이 도망 중이라는 뉴스를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흉악범은 자신의 배에 타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그 사실을 무선전신을 이용해 캐나다 경찰에 알렸다. 그리고 배가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흉악범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행운아 마르코니를 돕는 또 하나의 발명이 있었다. 전류의 흐름을 통제해 약한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진공관이다. 약한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진공관이 없었다면 무선전신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증폭장치인 진공관의 발명에 큰 디딤돌을 놓은 이는 발명왕 에디슨이었다.

1883년 에디슨은 가열된 필라멘트에서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방출되는 현상(에디슨 효과)을 발견했다. 그러나 에디슨은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20년 뒤 무선수신기의 안정된 검파장치를 연구하던 영국의 전기공학자 플래밍(1849-1945)이 에디슨효과의 중요성을 간파해냈다. 그는 1904년 최초로 2극진공관을 발명했다. 그리고 2년 뒤 미국의 포레스트(1873-1961)가 3극 진공관을 발명했다. 무선전신은 1950년대 말 트랜지스터가 발명될 때까지 진공관의 도움을 받아 크게 번성했다. 그리고 마르코니는 무선전신기의 발명으로 190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전화 공사를 하는 인부들. 전화는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해 19세기 말 크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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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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