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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지식의 야구 산교육장

투수가 타자보다 몸값이 비싼이유

각구단의 동계훈련 성과를 점검하고 신인 선수들의 기량을 테스트하는 금년도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막이 오르면서 또다시 야구장이 달궈지고 있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용병이 각 팀에 합류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전망. 여기에 작년 맹활약을 보인 메이저리그의 박찬호를 비롯, 새로이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됨에 따라 온국민은 올 내내 야구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울 참이다.

던진 공을 치고 달리는 원초적인 운동에 엄격한 룰을 적용해 한껏 재미를 높인 야구는 한마디로 말해 극적인 스포츠다. 작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한일전 당시 한 해설가가 스포츠를 일러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뒤지고 있던 9회말 2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또다른 승부를 만들어내는 야구야말로 스포츠 드라마의 꽃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야구의 진정한 묘미는 승부 단 한가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던지고 치고 달리는 야구의 3박자 행위 속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과학적 원리가 녹아들어 있으며, 이를 이해하면 승부를 떠나 어떤 스포츠도 제공하지 못하는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종범


타격 타이밍을 훔쳐라

투수와 타자 사이의 첨예한 대치는 항상 야구 경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대개 투수의 승리로 끝나곤 한다. 이를 테면 3할대의 타율만 유지해도 ‘대선수’라는 칭호를 받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투수의 공을 쳐낸 것은 10번 가운데 3-4번 밖에 안된다. 도대체 허구헌날 방망이 휘두르기에 이골이 난 타자들이 공을 절반도 쳐내지 못하는 일은 어찌된 연유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투수가 던지는 공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에이스급 투수처럼 시속 1백50km로 던진 공이라면 투수판에서 홈까지의 거리(18.4m)를 날아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0.44초에 불과하다. 비단 메이저리거 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야구에 적을 두고 시속 1백30km를 던지는 일급 투수들의 공도 대개는 0.5초 내외에 도달한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 타자가 이런 공을 쳐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빠르기만 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훈련을 통해 투수를 공략하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타자를 골탕먹이는 투수의 또다른 무기는 공의 회전력. 한 조사에 따르면 메이저리거의 빠른 공은 1분당 1천8백번 회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이 투수의 손에서 빠져나가 포수에 도달하기까지를 0.4초로 잡는다면 약 12번 이상의 회전이 이 안에 일어난다.

투수는 마음 먹기에 따라 회전력을 더 주거나 덜 줌으로써 커브, 슬라이더, 스크루볼 등 궤도가 다른 다양한 변화구를 배합해 타자를 공략한다. 이에 따라 타자는 타격 타이밍을 빼앗기면서 무장해제 당하는 것이다.

회전력이 왜 타자를 곤경에 빠뜨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커브볼의 경우를 살펴보자. 커브공은 공이 회전하며 포수를 향해 진행하면서 굽어진다. 그러나 커브공이 얼마만큼 굽는가 하는 것은 공의 회전수와 관련돼 있을 뿐 속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즉 회전속도가 같다면 공의 빠르기에 관계없이 휘는 정도는 같아지는 것이다.

이런 구질이 발생하는 이유는 공이 회전하면서 비행할 때 주위에 형성되는 공기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 즉 공의 진행 방향과 바람의 흐름이 일치한 쪽에서는 유체의 속도가 커져서 압력이 감소하지만(베르누이 정리) 반대쪽에서는 유속이 작아지면서 압력이 커진다. 이렇게 발생한 압력차로 인해 공은 타자 앞에서 크게 휘어진다. 메이저리거의 경우 무려 40cm 이상 꺾이기도 한다.

이 현상은 1852년 포탄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던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발견한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 마그누스 효과라고 부른다. 즉 ‘공기 속에서 회전하는 물체의 회전축이 흐름에 수직일 때 유속과 회전축의 쌍방에 대해 수직 방향의 힘이 물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마그누스 효과가 커브의 기본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커브볼은 단순히 마그누스 효과 한가지로만 설명되지는 않는, 대단히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구질이다. ‘야구의 물리학’이란 책을 써 ‘내셔널리그의 물리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로버트 어데어는 “만약 아인슈타인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서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커브볼이 어떻게 커브를 그리는지 결코 계산해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둥근 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회전각과 회전수, 즉 스피드의 조합에 따라 커브는 다양한 성질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가로로 회전하는 힘이 강하면 좌우로 변화가 크고, 세로로 회전하는 힘이 강하면 떨어지는 커브가 된다.
 

자세를 크게 하면 공의 원심력을 키울 수 있어 속도와 힘이 실린 투구를 할 수 있다.


회전 없는 마구 너클볼

투수가 구사하는 공 중에는 너클볼처럼 회전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회전이 없다고 해서 너클볼을 때리기 쉬운 공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너클볼은 지금까지 개발된 투수의 구질 가운데 가장 처치곤란한 공으로 정평이 나 있다.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모습이 마치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고 해서 나비에 비유되는 너클볼은 투수조차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종의 마구다. 포수도 잡기가 힘들다. 회전이 전혀 없어 그 순간의 바람이나 공 자체의 흠집 등에 의해 공이 변하기 때문.

투수는 손톱을 실밥 사이에 파듯 박아 넣고 손목을 구부리지 않은 채 공 위쪽에 위치한 손가락으로 밀듯 던진다. 공은 약간 높은 위치인 어깨 높이 정도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먹은 너클볼은 타자의 눈에도 전혀 회전이 없는 것이 확실히 보일 정도로 느리게 날아간다.

이때 속도는 대략 시속 75-80km 정도. 타자가 두세번 스윙을 휘두를 수 있는 속도에 해당하지만, 워낙 변화가 심해 맞추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투수가 던진 공의 회전이 많을수록 그 반발력에 의해 타자가 친 공은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커브볼은 배트 중심에 맞으면 그만큼 타구가 멀리 나가지만, 너클볼은 타자가 치더라도 공이 멀리 날지 않는다.

중계방송을 듣다보면 흔히 “공이 뜬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공이 뜨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중력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마련. 여기에는 야구공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투수가 던진 공에는 속도와 회전력 외에 중력이라는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

물론 이론상으로 보자면 공이 뜨는 현상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앞서 커브볼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투수로부터 출발한 공이 포수를 향해 나갈 때 공 주변에는 공이 날면서 발생하는 기류(앞에서 뒤로 흐름)와 공이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기류(회전방향과 같은 흐름)의 두가지 공기 흐름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비행하고 있는 공의 아래쪽에 형성된 기류의 속도가 위쪽보다 느리다. 따라서 공기 압력은 공의 위쪽 보다 아래쪽에 크게 가해진다. 이에 따라 공은 밑에서 위로 떠오른다. 공에 양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공의 스피드가 몹시 빠르고, 회전수가 많아야 한다. 일본의 한 스포츠용품 회사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 현상은 투수와 포수 사이를 시속 2백70km 이상의 속도로 50-60번 회전하는 공에서나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이 방망이를 만날 때

야구공은 코르크나 고무로 만든 작은 심에 실을 감고, 흰색 말가죽이나 쇠가죽 두쪽을 붉은 실로 1백8번 꿰매 제작한다. 바로 이때 만들어지는 솔기(실밥)는 공의 지름(7.23cm)과 무게(1백41.7-1백48.8g)와 어울려 투수가 다양한 공을 구사하는데 중요한 노릇을 한다.

둥근 공은 투수가 회전을 주는 대로 움직인다. 회전의 방법에 따라 공 주위에 압력차가 다르게 생기면서 공의 방향이 정해진다. 이와 함께 솔기는 공기의 저항을 받아 공의 움직임에 많은 영향을 준다. 선수들의 신체특성이나 버릇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를테면 투구의 기본인 직구는 공기의 저항을 되도록 많이 받도록 솔기를 엇갈려 잡아 던지며, 전문 구원투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싱커볼은 솔기를 피해 깊숙히 쥐고 던진다.

만약 솔기가 없다면 공의 표면은 매끄러워질 것이고, 이에 따라 비행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든다. 공이 나아가는 반대 방향에서 진공이 생겨 공을 뒤쪽으로 잡아 당기기 때문이다. 초기 고무 야구공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요철을 만들었다(과학동아 97년 5월호 ‘골프공은 왜 곰보일까’ 참조). 그 반대로 공이 꺼끌거리면 그만큼 속도는 더 난다. 이 때문에 투수들은 어떻게든 공에 상처를 주려 하지만, 이는 룰에 어긋나는 행동. 야구 규정에는 선수가 흙 등 이물질을 이용해 공을 고의로 훼손하면 심판이 그 공의 반환을 명하고 반칙 행위자를 경기에서 퇴장시키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원래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타자의 무기인 방망이도 마찬가지.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방망이는 겉면이 고른 둥근 나무로 만들어야 하며 굵기는 가장 굵은 부분의 지름이 7cm (2¾인치 )이하, 길이는 1백6.8cm(42인치) 이하여야 하고,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은 70년대 초반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보인 압축방망이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 프로야구계는 심각한 투고타저 현상으로 경기가 심심해지면서 관중이 줄자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시원스런 홈런을 선사하기 위해 강한 반발력을 갖는 방망이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원목 1제곱인치(6.45cm2)당 60t의 압력을 가해 만든 압축방망이다. 이 외에도 보통 나무보다 훨씬 단단한 대나무의 결을 얇게 잘라 강한 접착제로 몽둥이에 붙이거나, 수지 등을 주입하는 방법도 사용됐다.

압축한 방망이는 확실히 천연 나무로 만든 방망이보다 반발력이 높다. 압축을 하면 나무의 탄성계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탄성계수가 높아지면 운동에너지 손실이 적어져 똑같은 힘으로 공을 맞추어도 더 멀리 나간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70년대 후반 들어 압축 방망이에 대한 투수들의 반발을 받아들여 이후 사용이 금지된 상태.

그러나 아직도 가끔씩은 방망이를 둘러싼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작년 어린이날 연휴기간 벌어진 삼성-LG전. 삼성 선수들이 3경기동안 무려 17개의 홈런을 뿜어내며 LG를 패대기쳤다. 특히 5월 4일 경기에서는 삼성의 정경배가 국내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연타석 만루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문제는 신나게 얻어터진 LG의 천보성감독이 삼성 선수들이 사용한 방망이가 부정 방망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 출발했다. 이에 KBO는 문제가 된 삼성 방망이를 수거해 인근 목공소에서 절단 검사를 한 끝에 원목에 물리적인 작용을 가했다는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상적인 방망이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LG측은 검사 방법의 비과학성을 들어 재검사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방망이는 일본 미즈노사로 옮겨져 공개리에 육안 검사와 음향 검사, 경도계 검사, 방망이를 잘라 실시하는 고배율 확대경 검사 등 4단계 실험을 거쳤다. 결과는 역시 무죄. 미즈노측은 “압축방망이는 어느 정도 사용해도 표면에 먼지나 때가 잘 묻지 않고 매끄러워 일반 방망이와 육안으로도 쉽게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백인천 감독은 “같은 나무라도 종류에 따라 강도에 차이가 있듯이, 이 방망이를 만든 나무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른 나무에 비해 재질이 우수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당시 삼성이 사용한 방망이는 미국 미즈노사의 루스빌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이었다.

가벼운 게 좋아요

방망이와 관련해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규정 어디를 봐도 방망이를 만드는 나무의 재질과 무게를 언급한 대목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선수들의 개인적인 취향과 체격을 고려해 융통성을 둔 것인데,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가운데 어떤 방망이가 더 좋은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체적인 흐름은 무거운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지난 시절 일본에서는 방망이의 물리적 성질을 바꾸어 타력을 높이려 했다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무게를 줄여 타격속도를 빨리하는 방법으로 타격을 강화해왔다. 역시 지금은 금지된 조치이지만, 방망이의 중심을 파고 코르크로 채워넣는 방법도 있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활동하며 지난 1961년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에 올랐던 놈 캐시가 그 주인공. 방망이에 코르크를 채우면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코르크가 내부에서 팽창하며 바깥으로 나무를 밀어냄에 따라 반발력이 좋아진다.

현재 통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방망이의 무게는 9백35g(33온스). 오래 전에는 주로 1.7kg 이상되는 방망이를 써왔으나 20년대를 주름잡은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처음으로 1.4kg짜리 방망이의 빠른 스윙으로 홈런을 양산하면서부터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베이브 루스의 7백14개 홈런 기록을 깬 행크 아론도 역시 가벼운 방망이를 주로 이용했다.

투수가 뿌리는 공의 속도 또한 방망이에 맞아 날아간 후의 비행에 영향을 미친다. 공의 탄성 때문에 가격되기 전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되튀기는 속도도 빠르다. 즉 타자가 공을 때렸을 때 방망이의 질량과 속도는 공의 질량과 속도와 만나고, 이 충돌 결과가 공의 비행에 보내지는 것이다. 충돌에 관계하는 두가지의 질량과 속도가 크면 클수록 공에 적용되는 에너지도 더 커진다(운동량=질량×속도).

이같은 이론에 따르면 가능한 한 크고 무거운 방망이를 사용하는게 장타를 때리는데 유리하다. 아닌게 아니라 타자들은 홈런을 노릴 때 다소 무거운 방망이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크고 무거운 물체가 정지 상태에서 가속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무거운만큼 휘두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타자가 스윙을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고, 공을 맞춰 가속을 주는데는 단지 0.5초 이내의 시간밖에 없다. 결국 무거운 방망이는 큰 힘과 우수한 반사신경을 필요로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불리한 것이다. 오히려 정확하고 빠르게 방망이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가벼운 방망이를 사용하는게 훨씬 유리하다.

타격에 영향을 미치는 첫째 조건은 공과 방망이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각도와 위치다. 영어사전에서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란 단어를 찾으면 ‘가장 멀리 나가는 방망이의 위치’라 설명하고 있다. 과학용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진동의 중심’이다.

모든 물체는 부딪치면 그 반응으로 진동한다. 이 진동은 물체의 길이를 따라 위 아래로 파동을 일으킨다. 그런데 방망이에는 이 파동이 상쇄되는 지점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스위트 스폿이다. 이 부분으로 공을 치면 가격에 의한 진동이 상쇄되며, 방망이를 잡은 손은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는 방망이의 에너지가 진동에 의해 소모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힘이 공에 전달된다.

반면 빗맞은 방망이는 크게 진동하며, 이 에너지를 수용하지 못하면 부러지고 만다. 이 지점은 대개 타자가 방망이를 어떻게 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똑같은 방망이라도 방망이를 짧게 쥐면 쥘수록 중심은 앞부분으로 이동한다.

또하나, 방망이가 공을 맞히는 시간도 중요하다. 방망이가 공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수록 공에 전달되는 운동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Ft=mv, F:방망이의 힘, t: 공이 방망이와 접촉하는 시간, m : 공의 무게, v : 공의 속도). 중계방송에서 “공에 끝까지 힘을 실어야 한다”는 야구해설가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것이다. 방망이는 빨리 돌리되, 공과 접촉하는 시간을 오래 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높은 곳에서 맑은 날 합시다

공이나 방망이의 물리적 특성과 함께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공이 밖으로 뻗어나갈 때 공기와의 상호작용은 타자를 일희일비하게 만든다. 만약 공이 진공 상태를 날아간다면 비행거리는 속도와 궤도에 실려진 중력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같은 조건이라면 일반적인 플라이볼도 현재의 운동장 규격에서는 홈런이 되기 십상. 그러나 우리는 지구에 있기 때문에 공은 반드시 공기중을 통과해 날아가며, 공기의 저항을 피할 수 없다.

공의 비행에 영향을 주는 공기 요소는 밀도와 점도 두가지. 높은 밀도의 가스나 유체에서 분자는 서로 더 가깝다. 물체가 이동하면 유체와의 마찰이 일어나는데, 유체의 점도가 높으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결과적으로 공의 날아가는 거리는 줄인다.

공기의 밀도는 온도, 기압, 그리고 습도 등의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기온이 올라가면 공기 밀도는 낮아진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35℃에서는 영하 1℃에서보다 공기 밀도가 12% 낮아지며, 그 결과 공의 비행거리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습도가 높으면 반대현상이 일어난다. 날씨가 우중충한 날 시원한 장타 구경하기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과학동아 98년 2월호 ‘날씨를 알면 승리가 보인다’ 참조).

밀도는 또한 공기 압력이 떨어지면 낮아진다. 이같은 조건은 거의 비슷한 고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대한 땅덩어리 곳곳에 구장이 널려 있는 미국의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해발 1천5백m 이상에 위치해 있어 마일하이 시티(mile high)란 별명을 가진 덴버구장에서의 경기와 해수면 수준의 고도에 위치한 보스톤의 펜웨이 파크에서의 경기를 비교해 보면, 덴버에서의 경기에서 확실히 장타가 더 나오고 있다.

LA 다저스의 박찬호가 한창 승수를 쌓고 있던 작년 7월, 덴버시 쿠어스필드에서 벌어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 선발투수로 내정됐을 때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걱정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해발 1천6백9m에 위치한 쿠어스필드는 타구가 멀리 날아가는 탓에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다. 다행히 이 경기에서 박찬호는 6.1이닝동안 7안타 3실점으로 상대방을 요리, 6대 5로 승리하며 7승째를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야구장에서 나타나는 몇몇가지 현상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실로 야구 경기에서 찾을 수 있는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직접 운동장에 가거나, 또는 TV중계를 통해 경기를 관전하면서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어떤 과학이 숨어 있는지 찾아보자. 물론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지만, 무릇 야구는 똑같은 용구를 쓴다 해도 선수의 기량이나 감독의 작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나타내는 스포츠다. 역시 경기는 끝나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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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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