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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의 장기나 조직을 재활용하는 기술이 급진보함에 따라 뼈에서 소변에 이르기까지 이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더구나 연내에 뇌사를 인정하는 법이 제정되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뇌사(腦死)도 심장사(心臓死)와 함께 인간 죽음의 기준으로 인정토록 한다는 '뇌사 인정법'을 연내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뇌사인정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입법에 앞서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뇌사를 오래 전에 법제화, 장기이식이 깊게 뿌리내린 선진 외국서도 최근 들어 장기수급의 불균형과 장기기증의 자발성 익명성 무상성 정당성 등을 둘러싼 갖가지 난맥상들이 끊임없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일부국가 뇌사자 장기적출 합법화

예컨대 장기 기증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이식 희망자의 목록이 해마다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혜자 선정에 공평성의 문제가 더욱 첨예화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이식은 귀중한 인명이 달려 있는 문제인 만큼 돈과 권력, 갖은 협박과 유혹이 있을 수 있고 지연 혈연 학연 등 인맥에 얽힌 특혜비리가 있을 수 있다.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이 땅을 찾은 돈 많은 외국인 여행객에게 웃돈을 받고 몰래 장기를 빼돌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주말 매스컴의 교통사고 소식이 일부 사람들에겐 '희소식'으로 들리게 될 날이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고의 규모가 참혹하고 대형화할수록, 급박하게 울어대는 앰뷸런스의 사이렌소리가 요란할수록 장기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와 환자가족들은 더 많은 뇌사자 발생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에 부플어 오르게 되지는 않을까.

의료진과 경찰들조차도 차츰 '교통사고=뇌사자발생=장기이식'이라는 인식이 확산 되면서 성급한 뇌사판정과 마구잡이식 장기적출을 일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뇌사판정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실수가 전혀 없을 수 없다고 일부 전문의들은 주장한다. 실제 매우 심각한 상태의 식물인간과 뇌사는 초기에 의학적으로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기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의학적 강박관념이 성급한 뇌사 오진을 부채질할 수 있을 것이다.

생전에 장기이식제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명해 오던 사람과 미성년자를 제외한 모든 뇌사자의 장기적출을 합법화하고 있는 유럽 일부 국가들의 장기기증 의사표시제를 받아들일 경우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간 가족들이 사망 사실을 채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장기를 이미 적출해 간 사실을 발견하는 등의 불상사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운전면허증 뒷면에 평소 뇌사시 장기기증에 찬성의사표시를 해둔 뇌사자에 한해서만 장기적출을 허용하는 미국식 장기기증 의사표시제가 우리 현실에는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기기증이 순전히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원칙임에도 불구, 대다수의 장기 수혜자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공여자에 대한 정보를 듣게 마련이다. 그로 인해 수혜자가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겪게 돼 여생을 어둡게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공여자에 대한 철저한 무상성과 익명성도 보장돼야 할 것이다.
 

시체로부터 들어낸 심장판막. 무균상태가 이상적이나 대부분 완벽한 소독이 불가능해 감염질환의 염려가 있다.


국내 88년 첫 장기이식

국내에서는 88년 3월 서울대병원이 뇌사자의 간을 처음 이식한 후 현재 전국 10여개 병원에서 80건에 이르는 뇌사자의 장기공여로 2백6례(95년 2월 현재)의 장기이식이 행해졌다. 장기별 이식례는 신장이 1백12례로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각막 93례, 간장 39례, 심장 29례, 췌장 12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병원은 92년 5월 뇌사자의 신장 각막 등 다장기이식을 국내에서 첫 시도한 후 간 15례, 심장 9례, 췌장 12례, 신장 2백50례, 각막 1백7례(신장과 각막은 생체이식포함) 등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장기이식수술을 한 것으로 조사 됐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보통 하루나 이틀 사이의 한정된 시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귀중한 장기를 쓸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뇌사자가 발생하면 이식팀은 일제히 응급상황에 돌입한다. 신고를 받으면 즉시 일반외과 흉부외과 전임의 혹은 전공의로 구성된 장기구득팀이 현지로 파견된다. 현장에서 장기를 적출할 경우 뇌사판단은 해당병원 신경과 혹은 신경외과의사가 맡게 된다. 적출한 장기는 아이스박스에 담아 헬리콥터로 전송해 온다.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경우에는 도착 후 12시간 간격으로 2차례에 걸쳐 최종 뇌사판정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장기별이식팀은 수술 준비를 완료 한다. 특히 다장기이식일 경우 신청자 가운데 간(肝)은 2-3배수, 신장 각막은 각각 5-6배수로 잡아 10여명의 희망자들이 병원으로 집합하게 된다. 기증자의 혈액형과 조직형 교차반응검사를 거친 후 최종 선정된 수혜자는 입원한다. 기증자 보호자는 수술 전 장기이식 동의서와 각서에 서명한다. 이 때 수술 상황에 대해 설명받고 수술 후 영안실 안치와 장례절차 화장 사망진단서발급 등에 관한 문제를 상담한다.

이식 후 의료진은 수혜자의 거부반응 여부 등 매일의 상태를 파악한다. 퇴원 전 주의사항과 응급사태시 대치요령 등에 관한 간호사 교육을 받는다. 이식환자는 퇴원 후에도 평생동안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한 면역 억제제를 매일 하루 2차례씩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약으로 인해 신체 전반적인 면역력이 약화, 암이나 기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정상인보다 커진다. 때문에 수시로 집에서 체중 혈압 체온 소변 등을 자가 측정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 조직검사 등을 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시체피부의 재활용이 윤리적 문제점을 야기하자 인공피부 개발쪽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우표만한 크기에서 엽서만한 크기로 자란 인공피부.


혈연간 신장이식 성공률 95%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자기 차례가 돼도 마지막 순간에 이식을 포기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신장과 각막을 제외한 나머지 장기의 이식비용이 현재로선 의료보험 처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간의 경우 수술비는 1억원을 호가한다. 수술 후 일생동안 월 1백만원 상당의 약값도 들어간다. 심장의 경우 수술비용 약 3천만원에 약값이 월 1백만원 가량 든다. 췌장은 수술비 약 3천만원에 약값 월 50만원선. 신장은 수술비 약 7백만원에 약값이 월 약 20만원, 각막은 수술비 약 1백만원만 들고 약값은 없다.

기증자의 수술비용 처리 문제는 병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 서울대 병원의 경우 연구용 '학구처리' 명목으로 전액 국고에서 부담한다. 나머지 병원들은 초기엔 병원측이 부담해 왔지만 최근 기증자수가 부쩍 늘어남에 따라 수혜자들이 분담토록 하고 있다.

장기이식의 최대 관심사는 이식성공률. 서울중앙병원의 경우 심장이식은 92년 11월 최초의 이식 후 지금까지 9건이 이루어졌는데, 다행히 환자 모두 1백%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신장이식은 혈연간일 경우 95%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장기밀매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대부분의 병원들은 직계가족이 아니면 생체신장이식을 금한다는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병원에서는 최근 한 위장부부가 신장이식을 위해 입원했다가 겉보기에 아무리 봐도 부부가 아닌 것 같다는 간호사들의 제보로 수술 전날 위장결혼이 들통나 강제퇴원당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간이식 성공률은 실제 알려진 것보다 그렇게 좋은 편이 못된다. 수혜자가 간경변, 간암 등 원인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70-80%까지 떨어진다. 13명의 간이식과 2명의 부분간이식자 가운데 10명이 생존해 있다. 췌장과 신장은 이식 후 부작용이 발생해도 다시 떼어내면 되므로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간이나 심장은 실패할 경우 거의 절망적이다. 외국서는 기증자가 많아 하루나 이틀정도 기다리면 3번까지 재이식이 가능한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로선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재이식 가능성이 희박, 부작용시 사망확률이 높아진다.

재활용되고 있는 신체 적출물들
 

시체로부터 떼어낸 각막


장기기증이 활성화하면 인체에 대한 경시 풍조가 만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장기이식 후 남아도는 인체 부산물도 급증, 이를 재활용하는 산업도 따라서 번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기기증이 활성화단계에 있는 외국의 경우 현재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의 장기나 조직을 재활용하는 기술이 급진보함에 따라 뼈에서 소변에 이르기까지 이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교통사고나 뼈(骨)암 환자의 경우 사지절단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체로부터 18시간 이내에 채취한 경골(정강이뼈)을 섭씨 영하 30도 이하의 동결상태로 보관해 두었다가 이식할 경우 치료가 가능하다. 또 사망한 지 이틀이 채 안된 사체에서 잘라낸 피부는 광범위 화상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임산부의 소변에서 추출한 호르몬은 다른 여성의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 분만시 배출되는 태반은 노화방지용 화장품의 성분으로 쓰인다. 또한 쇼크 과다출혈 간경변환자를 위한 알부민이나 수술 환자의 면역력 증강을 위한 감마글로블린도 태반에서 추출하고 있다. 정형외과 의사가 인공보철로 대체하면서 잘라 낸 얼굴은 성형외과의 안면복원술에 이용된다.

기왕에 썩어 없어질 사체를 활용해 귀중한 인명을 구하고 장애를 면하게 하는 데 긴요하게 쓰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는 서양인들의 실용주의적 발상에서 이런 행위는 점차 합법화 되는 추세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과 '치료 효과'라는 명분하에 공여자의 동의 없이도 수술실이나 영안실에서 사체의 일부가 마구잡이로 채취, 훼손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사회 일각의 우려섞인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 사망자나 가족의 동의없이도 사체에 대한 부검을 허락하고 있는 이들 나라에서도 최근 "뇌사자든 심폐사자든 피부조직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본인 혹은 가족들의 사전 동의하에 이루어지도록 법제화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프랑스의 겨우 1976년 이후 제정된 뇌사자의 장기 및 뼈의 이용법에 따라 생전에 장기 기증에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과 미성년자를 제외한 모든 사망자로부터 신체의 '재활용'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장기 이식이나 사체 사용때는 가족의 허락을 전제로 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최근 이 법에 신체조직이나 피부의 채취나 이식은 명시돼 있지 않은 점을 교묘히 이용, 마구잡이로 이용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피부도 뼈나 장기의 이용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동의하에 익명성과 무상성 그리고 당위성을 지닌 자발적 기증의사가 존재할 때만 허용하자는 법안을 지난 해 상정했다.

그러나 외과의사들은 이런 행위가 화상 환자의 치료 등 '불가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이정빈교수(법의학)는 "외국에서 초기 각막이식 때도 보호자의 동의없이 사망자로부터 마구 떼어 다 쓰는 사례가 종종 보고됐지만 보호자측의 거센 항의로 각막이나 피부도 장기와 동일한 조건 속에 포함시키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 한다.

우리나라 현행 '시체해부보존법'에 따르면 연구목적 외에 기타 다른 목적으로도 사망자의 장기나 조직의 일부 혹은 전체를 보호자 동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타환자에 대한 사체 재활용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뇌사를 심폐사와 같은 죽음으로 인정할 경우 기증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체에 대한 마구잡이식 적출과 재활용이 행해질지도 모른다.

적혈구 혈소판 장기 각막 등은 완전멸균에 한계

이미 국내에서도 인체 적출물에 대한 재활용 사업이 성행하고 있다. 서울시내 병의원에서 한 달에 발생하는 병원적출물은 1백70t. 그중 0.1%를 차지하는 인체 적출물은 대개 소각처리된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시행된 의료법시행규칙에 따르면 그 가운데 제약업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적출물 처리업자에게 위탁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특히 태반이나 혈액의 특수성분들은 알부민을 비롯한 기타 정력증강제나 화장품의 제조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신체 재활용은 의료윤리적 측면뿐 아니라 안전성을 둘러싼 의학적 차원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적혈구 혈소판 장기 각막 등 인체 부산물은 살아 있는 생물(단백질)이므로 완전멸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외국으로부터 '인체 원료'의 수입이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감염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해 동안 정밀검사 및 분석시스템이 미흡한 중국 등 의료후진국으로부터 수입된 혈장이 30만L에 달하며 그 속에서 간염 등 바이러스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 91년 유럽에서 에이즈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제제에 의한 혈우병환자들이 무더기로 에이즈에 감염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C형간염 환자가운데 5명 중 하나가 수혈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92년에는 28명의 어린이가 사체로부터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맞고 크뢰즈펠트 자콥병과 같은 치명적인 퇴행성 신경 증상을 보였다. 그중 20명이 사망했고 주사를 맞은 나머지 1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는 지난 해 1월 인체부산물의 채취 보존 운반 이식과 관련한 특별규칙을 제정했다. 이는 기증자의 엄선, 바이러스 감별 테스트의 강화, 인공장기개발촉진, 동물장기의 활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세계의 권위있는 제약업체들이 인체부산물을 원료로 하는 제품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제약업체 중에는 여전히 매혈까지 자행해가며 인체 부산물의 산업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뇌사가 인정되면 장기밀매나 장기수급 형평상의 문제 등이 하루 아침에 말끔히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장기이식이 보편화함에 따라 법망의 허술함을 틈탄 파행적 이식행위가 이전보다 더욱 극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일부 의식있는 의료인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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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윤성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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