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로도 1백년이 넘게 걸린다던 한글 워드프로세서 '한글'2.1의 암호 체계를 무력화시킨 프로그램 CODE21.EXE의 제작자 이승욱씨(27·하이텔 아이디 comty)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다. 그러나 그에게 한방 맞은 한글과 컴퓨터사(이하 한컴)는 겉으로는 "압축 저장한 파일은 CODE21로도 풀지 못하지 않았느냐"며 태연해 보이지만 이번 일이 한글 3.0 발매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사건'이라 적지 않게 당황하는 눈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한컴측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유례없이 큰 반발을 보인 이유는 일단 국내 최고를 자신하던 자사의 대표적 프로그램에 흠집을 입혔다는 데 있다. 비록 이씨가 한컴의 항의를 받은 즉시 공개자료실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삭제했고, 이후 자신과 한컴 이찬진 사장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에 자극 받아 "한글의 암호체계는 절대 허술하지 않다"는 글을 올리긴 했지만, 이미 한번 깨진 신화는 신화로서의 가치를 잃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양 당사자의 처지와 별개로 이번 일은 소프트웨어의 저작권과 관련해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은 사용자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CODE21이 암호를 깨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HWPS.EXE(한글꼬마)의 일부 내용을 변경(패치. patch)하고, 디버거를 이용해 컴파일된 프로그램을 역으로 분석하는, 이른바 '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불법은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 위반이고, 패치는 저작권이 확보된 프로그램의 수정을 금지한 범법 행위라는데 있다(이씨가 CODE21을 자진 삭제한 후 올린 또다른 암호 깨기 프로그램 NUMERIC.EXE 은 패치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은 '프로그램의 복제 개작 번역 배포 및 발행'에 관한 권리가 프로그램 저작자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한컴은 제품판매시 동봉된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서'에서 '소프트웨어를 변형하거나 디컴파일, 디스어셈블, 리버스 엔지니어 할 수 없으며…'라고 명시, 원천적으로 프로그램의 분석을 막고 있다. 이를 지킬 수없다면 제품을 반환하고 환불받으라는 것이다.
이들 조항은 문제가 된 한컴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프로그램 계약서 내용은 일방적이라 할 만큼 제작사의 이익이 확보되도록 명문화돼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불만이 터져나을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이같은 계약은 소프트웨어가 다른 상품과 비교해 가지고 있는 독특성에 기인한다. 즉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사용자는 단지 개발자로부터 사용을 허가받는 것일 뿐, 소프트웨어에 녹아 있는 개념을 산 것은 아닌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프로그래머와 일반 사용자 모두에게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관한 '마인드'를 심어줄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