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은 어떻게 다른가. 수능시험을 심층 분석해보고 과학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학력고사 시대가 가고 수학능력시험 시대가 왔다.
10년 이상 대학입시제도를 지배해 왔던 학력고사는 말 그대로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하는 것이 목적 이었다. 여기서 학력이 내포하고 있는 실질적 내용은 지식의 암기력. 그 지식이 어떻게 얻어졌는가, 또 어떻게 활용되는가 보다는 지식을 학생들이 얼마나 외우고 있는가가 문제의 포인트였다.
그동안 많은 교사와 교육 관계자들은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고교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녔다. 특히 탐구력이 생명인 과학교육은 학력고사가 바뀌지 않는 한 정상화란 표현은 불가능함을 강조했다. 오히려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학생들의 탐구력과 사고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우리와 같이 교육열이 높은, 엄밀히 말하면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대학입시가 가지는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학교의 수업내용을 전적으로 지배해 성장하는 학생들의 인성에 강한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집값 땅값에까지 영향을 미쳐 경제 전반을 흔들어 놓기까지 한다. 내신 반영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서울 강남의 집값이 내림세로 돌아섰다는 사실은 그냥 웃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기계적 암기의 한계
지난 8월20일 전국에서 70여만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올해만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한 7번의 실험평가가 있었지만, 막상 본시험이 치러지자 학생들과 현장교사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 과학과목을 중심으로 수능시험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선 공통적인 견해는 수능시험이 암기와는 완전 결별을 선언했다는 것. 학력고사의 '기본레테르'라 할 수 있는 암기를 과감하게 떨쳐버렸다는데는 수능시험의 출제위원과 검토위원, 일선 교사와 학생들 모두 인정한다.
"33문제가 출제된 과학은 특별히 암기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다. 문제에 공식까지 다 주어지기 때문에 아주 기본적인 개념만 이해하고 있으면 생각하고 추론해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경기과학고 이석형(지구과학, 38) 교사의 말이다. 많은 지식을 암기한 학생들이나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나, 문제를 잘만 읽으면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적으로 암기한 학생들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답을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식을 얻는 과정보다는 지식 자체를 너무 중시했기 때문에 관찰과 탐구, 또는 사고력이 중시돼야 하는 과학이 암기과목화 된 것이 기존의 학력고사 체제였다. 과학의 본질을 왜곡시킨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복잡한 내용을 일일이 외워야 하는 과학을 싫어하게 되고 '과학하면 어려운 것, 복잡한 것'으로 인식해 끝내는 일반 시민이 되어서도 영원히 과학과는 담을 쌓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과학적 사고력을 발휘하기는 커녕, 전화나 텔레비전, 자동차 등 과학의 결과물과 늘상 같이 생활하면서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심한 컴플렉스까지 느끼며 사는 사람도 많다. 이번 수능시험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버린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번 수능시험은 과학 지식이 전혀 없어도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여기에는 견해 차이가 있다. 서울과학고 박희송교사(생물, 44)는 "과학지식 없이도 이번 수능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교사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 뻔한 사실들이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와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생물을 예로 들면 광합성이나 유전에 대한 기본적 지식없이 문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전체 평균이 1백점 기준으로 60점 밖에 나오지 않고 이과 학생들이 문과 학생들보다 과학 점수가 높은 것은 어느 정도 기초적인 과학지식이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니냐"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물리 시험 문제를 보면 중학교 정도에서 배우는 개념 정도만 이해하고 있고 적당히 머리 굴릴줄 알면 다 풀 수 있는 문제다. 다른 과학과목도 크게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안다. 이번 수능시험은 열심히 교과과정을 공부한 학생보다는 기능적인 머리가 발달한 순발력 있는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한 교사의 항변이다. 어쩌면 이 교사의 얘기가 기존의 지식 위주의 교육방법에 경사된 많은 교사들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교육여건을 고려한다면 이 논리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학생들에게 문제를 주고 조사해 오라고 해도 주변에 어느 정도 기본 도서를 갖춘 도서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대신에 오락실만 즐비하다는 것이다. 실험 또한 본래 목적에 맞게 탐구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보다는 교사가 대표로 결과를 확인하는 '쇼'에 불과한 것이 현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가 이 정도 성장한 것은 중고등학교에서 지식이나마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 아니냐는 것. 어설프게 과학적 탐구력을 측정한다고 지식을 도외시한 채 그래프나 자료분석 능력만을 특화시킨 수능시험문제는 학교교육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다.
사실 이 논의는 과학교육계의 뿌리 깊은 논쟁과 관련이 깊다. 한국교육개발원 한종하 원장(물리, 54)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번 수능시험이 깊이 있는 사고력과 분석력을 측정하는 데는 모자란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교육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다.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중학교만 올라가면 관찰과 탐구, 사고를 유발하는 진정한 실험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결과 확인 실험만이 어설프게 구색맞추기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과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우리 학생들이 국민학교 때는 상위권에 위치하지만 중고등학교때 꼴찌를 맴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얻어진 결론만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은 너무나 한계가 뚜렷하다. 스스로 생각해보고 실험을 통해 확인해보는 과학교육으로 한단계 비약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탈(脫)교과서의 어려움
과학교육 평가를 전공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허명 교수(39)는 "지식과 지식을 얻는 과정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원래 수학능력시험은 예비고사적 성격이 켰으나 대다수의 대학에서 본고사를 포기하는 바람에 수능시험이 본고사의 역할까지 떠맡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수능시험 이상으로 지식을 강조하는 것은 수학능력시험의 본질이 뒤바뀔 가능성이 크므로 현재와 같은 기본 방향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시험이 목표하고 있는 바는 범(汎)교과내지 탈교과다. 교과서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재를 발굴하고 여러 교과의 내용을 포괄하는 문제들을 출제해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번 수능시험에서 국어나 사회는, 범교과는 물론 탈교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아니다. 철저히 교과서 안에서 출제됐다. 과학과목간의 통합문제도 한문제 (굴지성과 힘의 벡터 합성을 결합시킨 문제)를 제외하고는 과목간의 구별이 너무나 뚜렷하다.
"1,2차 실험평가에서는 교과서를 벗어나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출제됐다. 1백10V와 2백 20V의 차이를 묻는 문제라든가, 쇠고기를 오븐에 구울 때 사용설명서를 해석하는 문제가 바로 그러한 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이 잘 풀리가 없었다. 평균 30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교사들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다. 쉽게 출제해달라는 압력이 결국은 과학문제를 교과서 내에 국한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 인헌고등학교 현종오(화학, 36) 교사의 해석이다.
탈교과서의 의욕은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 교과서에 충실한 시험문제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교과서를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몇 문제는 과학적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산사태로 인한 나이테의 변형, 인슐린과 혈당과의 관계). 하지만 대체로 교과서 내에 등장하는 내용이 중점적으로 출제된 것만은 분명하다.
1,2차 실험평가 문제는 최근 유럽이나 미국, 특히 영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SATIS(Science And Technology In Society) 즉 '사회 속에서의 과학과 기술' 이념에 비교적 가까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학교육은 과학자만을 육성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진 건강한 시민을 양성하는데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논리.
어느 유명한 수학자가 자기가 배운 1천여개의 공식 중 실생활에 쓸 수 있는 공식은 단 하나, 자기 집 뒤에 있는 동산을 산책할 때 직선으로 가는 것이 한 번 꺾어서 가는 것보다 가깝다(삼각형의 두변의 합은 항상 나머지 한변보다 크다)는 사실뿐이었다는 말은 유명하다. 실제 생활과 거리가 먼 쓸데없는 과학지식을 많이 가르칠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쓰임이 있는 과학과 기술을 많이 가르쳐야 된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인간의 창의력은 이미 정형화되고 화석화된 이론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다양한 실제 경험에서 탄생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뒷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소수의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많은 지식을 쏟아붓기보다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이 다양하고 흥미롭게 진행될 때 과학의 질적 비약도 가능하다는 것. 고등학교 학생수의 1/3만이 대학(전문대 포함)에 진학하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이론의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과감하게 이러한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교육여건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도서관 대신에 오락실이 즐비하고, 교사들은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연구할 시간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뺏겨야 하며 수많은 지식을 담은 교과서 진도에 억눌려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교과서를 탈피한 문제는 학생들에게 당혹감을 줄 수밖에 없다.
문제를 출제하는 입장에서 보아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달 정도 호텔에다 가두어두고 문제를 내라고 했을 때 좋은 문제가 탄생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출제위원이나 검토위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서너달씩 고생하고 이렇게 만든 문제를 한 영역에 3-5천개씩 쌓아두고 서비스하는 미국의 문제뱅크 ETS(Educational Test Service)와 비교할 때 우리의 준비상황이 얼마나 허술한지 단적으로 증명된다.
96년부터 새교과서로 등장할 공통과학(기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하나의 통합교과서로 만든 것)은 어느 정도 과학-기술-사회를 연관짓는 내용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현실에 맞는 문제들이 축적될 때 수능시험은 본격적으로 탈교과서를 지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과학고등학교에서는 실험평가 1,2차 문제를 보고서 아주 흥미있는 작업을 계획했다. 첨단과학의 상징물이면서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자동차를 가지고 그 속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문제를 뽑아보자는 것. 그러나 이 시도는 수능시험이 과학교과서 내에서 출제된다는 입장이 알려지고부터 추진되지 못했다.
요약하면 수능시험 중 과학과목은 1,2년 내에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중요한 개념의 이해를 중심으로 출제될 것이며, 아주 조심스럽게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문제가 부분적으로 시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수능시험 과학과목을 보면 모든 문제에 그래프와 표, 그림이 딸려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 삼성고 서인호(화학, 32) 교사는 "지식의 암기는 절대로 안되고 그렇다고 실험의 과정을 심도있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어렵고, 교과서 내의 개념에 충실하면서 쉬운 문제를 출제하다보니까 유일한 출구가 그래프나 자료의 해석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표와 그래프를 분석하는 능력
과학적 탐구는 문제인식 및 가설설정, 탐구설계, 탐구시행, 자료해석 및 분석, 결론 도출 및 평가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수능 시험에는 자료해석 및 분석에 해당하는 문제가 너무 많이 출제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런 경향을 놓고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사고력이나 탐구력을 측정해야 하는 수능시험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변형된 적성검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문제 유형이 고정화되면 학생들은 그래프나 표를 보고 공식에 데이터를 집어넣는 단순한 기능만을 습득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이 보다 일반적이다. 박희송 교사는 "지구과학이 자료해석에 치우친 감은 있으나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과목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32번 에너지 문제나 26번 화학식과 화학식량 문제는 탐구를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가설 설정에 관한 좋은 문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일부 문제가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도 그래프에서 기능적으로 데이터를 읽어 기계적으로 공식에 대입하면 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21번 회합주기 문제 등), 그러한 문제도 그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없이는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아무튼 앞으로 수능시험은 학력고사와는 달리 그래프나 표에 대한 짝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교과서에 나와 있는 그래프나 표가 의미하는 바를 확실히 이해해야 하며, 비록 실험은 하지 못하더라도 실험의 전체 과정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편 수능시험의 형식적인 변화로 들 수 있는 것은 4지선다형 시험에서 5지선다형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사소한 변화 같지만 우연히 답을 맞출 확률이 줄어들면서 수험생들의 요행심리를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틀린 답을 고르면 1/5 감점제까지 채택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고려 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쪽집게'는 불가능
수능시험을 치르는 사람은 학생들이지만 이들을 지도하는 일선 교사들이야말로 입시제도 변화에 가장 먼저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당사자다. 이전의 학력고사에서는 얼마나 지식을 요령있게 가르치고 예상문제를 잘 짚어내는 쪽집게 교사가 유능의 척도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엄밀하게 말해서 수능시험이 제대로 방향만 잡아나간다면 쪽집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여유가 좀 생겼다. 과거에는 교과서를 조금만 벗어나도 '진도나가자'는 압력이 대단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도 학생들이 진지하게 듣는다. 물리를 가르치면서 지구과학이나 화학 얘기를 할 수 있고 중심개념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마련됐다." 서울 용산고 이희성(물리, 36) 교사의 말이다.
문제는 교사들의 교육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좋은 교재 만들어줘도 가르치기 힘든데 스스로 찾아서 가르치기는 정말 어렵다"는 말에 모든 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고교교사들의 근무조건이나 보수체계 등을 감안할 때 스스로 연구하여 교육자료를 개발한다는 것은 보통 성의를 갖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식 교육에 길들여진 나이 든 교사일수록 당혹감은 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도 몇 교사모임은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잃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자료를 개발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모임이 바로 과학교과모임(02-886-3462). "86년부터 지식 위주의 과학교육에 문제를 느낀 몇몇 교사들이 모여 교과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고전했으나 지금은 회원이 30명 가까이 될 정도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수능시험이 확정된 이후에는 여기 저기서 자료요청이 많이 오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요즘에는 96년부터 시행될 공통과학을 물상계열과 생물계열로 나누어 연구하고 있다." 이 모임의 대표를 맡고있는 서만석 교사(서울 경기여고, 지구과학)의 말이다.
이 모임에서는 연구성과를 모아 '빛' '생각하는 지구과학' 등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으며 팜플렛 형태의 보고서로도 정리해놓고 있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서인호 교사는 "학생들에게 정형화된 실험을 강요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실험 방법을 제시해주고 가장 큰 결정을 만들어오는 사람에게는 한가위 선물을 주겠다는 식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교육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사(私)교육시장의 비대화다. 정작 교육계는 초라해도 과외나 참고서, 학원사장은 항상 호황을 누려왔다. 이들의 번영은 교육정상화와 반비례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이 사실. 이들은 수능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우선 대학생 과외가 많이 없어졌다. 지식보다는 사고력에 초점을 맞춘 시험에 대학생들이 쉽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학부모들은 빨리 깨달았다. 본고사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대형 학원은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일부는 발빠르게 수능에 대비하는 특별반을 만들기도 했으나 문제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것 이외에는 학생들의 호응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YMCA나 문화센터에서 방학 중에 운영하는 과학프로그램(비디오와 약간의 실험을 병행)에 국민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특수과학학원 설립을 교육구청에 신청해놓고 있는 미래교육문화센터(가칭)는 예외적인 경우. 이 학원에서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과학실험 위주로 학원을 운영할 예정이다. 학원의 대표자격인 임국진(전직 학원강사)씨는 "특별히 수능 시험을 대비해 준비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교육 추세가 학생들의 과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모자라는 실험교육을 전문으로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땅 짚고 헤엄치다 땅이 사라져
사교육 시장의 생리상 앞으로 아주 고급스런 과외의 등장도 예상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향상시켜 수능시험에 좋은 점수를 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수능 시험에 가장 당황했던 곳은 참고서 업계. 그동안 땅짚고 헤엄치다 땅이 갑자기 없어지자 참고서 업계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먼저 등장한 것이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한 잡지. 독서광장 디딤돌 독서평설 글과 생각 등이 학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 들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해주고 이를 통해 사고력을 배양시킨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디딤돌 편집장을 맡고 있는 고영목(전직교사)씨는 "교과과정과 연계시키면서도 교과서를 탈피한 다양한 소재를 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존 잡지와는 다르게 일종의 학습 보조재료이기 때문에 질이 보장되는 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과학분야인 경우 상대적으로 좋은 필자 찾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현장교사들은 한결같이 "수능시험은 기존의 학력고사처럼 단기간에 학습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수능 대비 잡지가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이를 통해 금방 수학능력이 향상된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평소에 꾸준히 독서를 하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며 수업 시간에 충실히 개념을 익히는 것이 첩경이다"고 강조했다.
사고력과 탐구력이 우선시되는 수학능력시험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고 전문과학보다는 교양과학이 중심이 될 공통과학(96년 시행)이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우리의 과학교육계는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조건은 마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일선 교사들이 자긍심을 갖고 교육에 임할 수 있는 조건만 마련된다면 모처럼 마련된 '과학교육 정상화의 길'이 더욱 가속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기본 개념'을 '자기언어'로 정리하는 훈련부터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태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북이가 한 걸음씩 나아가듯 기본적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자.
수학능력시험이 끝난지 한달이 됐다. 이번 수학능력시험은 처음 실시되는 것이었지만 대체로 쉽게 출제되어 문제를 푸는데 어려움은 덜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과학분야에서 가장 어려움을 많이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부족하나마 과학에 대한 자신감을 주기 위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우선 어떤 시험이든지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학분야에서는 자주 들어서 알 수 있겠지만 기본 개념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번 시험에서 일기도를 주고 공기가 모여들어 상승하는 운동이 얼어나는 지역을 모두 고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저기압과 고기압의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너무 쉬운 문제였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는 기본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어려운 문제만 푸는 경향이 많아 이와 같은 문제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약간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쉬운 문제를 많이 풀어 봄으로써 기본 개념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과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더 잘하자면 기본 개념들을 자기 나름대로 자기 언어로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기본 개념들을 꼭 정리해 봄으로써 기초적인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운 일 같지만 거북이가 한걸음씩 나아가듯 꾸준히 정리해 간다면 기초적 개념 정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초가 쌓인다면 응용력을 키우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학능력시험이 응용력을 특히 많이 물어보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과학탐구분야에서 실험평가 때나 모의고사 때 당황스러웠던 점은 문제가 생소하고 복잡한 듯이 보였던 점이다. 이런 점을 극복하려면 문제집을 가지고 문제의 유형을 파악하고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문제집을 가지고 정리함으로써 그전보다 10점 정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문제에 대한 낯설음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과학 과목이 가장 쉬운 과목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 문제집을 선택하려면 쉬운 것, 단원별로 정리된 것, 교과서 내용과 관련된 것을 선택해 여러번 반복해서 풀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기초를 쌓을 때는 양을 중요시했다면 응용력을 기를 때는 질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 문제를 어설프게 푸는 것보다 한 문제를 여러번 반복해서 푸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해야 될 것이라면 실험에 관한 것이다. 과학책을 보면 언제나 맨 처음에 과학탐구의 방법인 '관찰-실험-가설·검증-일반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각의 과정을 나름대로 훈련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중에도 '실험-가설설정·검증'은 실험을 직접 해보아야 되는 것인데 실제로 실험을 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교과서나 학습지를 통하여 실험에 대한 기본 상식을 배양해야 하겠다. 어느 변인을 일정하게 하고 어느 변인은 조작할 것인가? 또는 대조구와 실험구는 어떻게 다른가? 실험에 필요한 기구와 도구들의 용도는 어떠한가? 실험에서의 오차와 그것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하겠다. 그리고 실험에 대한 설계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과학은 노력만 한다면 어렵지않은 과목이다.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자신있게 대해야 한다. 그러면 가장 자신있는 과목이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학능력시험에서도 자신있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