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플에서 주사액으로 떨어진 유리파편 중에는 입자의 크기가 50μm가 넘는 것도 있다. 이들이 10μm 정도의 모세혈관에 닿으면…
일반적으로 몸이 아플 때 주사를 맞으면 정확하고 신속한 약효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도 주사맞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의시가 주사약 처방을 하지 않으면 "주사도 안주고 돈 받으려 한다"고 불평하는 환자가 많다.
그런데 최근 주사약 안에 미세한 유리파편이 들어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수많은 환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서울대 약대 심창구교수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주사약을 담은 유리용기, 즉 앰플을 깨는 과정에서 미세한 유리파편들이 주사약 안에 떨어진 뒤 주사약과 함께 우리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주사약 안에서 찾아낸 유리파편 중에는 놀랍게도 입자의 크기가 50μm가 넘는 것도 있었다(5개까지). 또 10~50μm크기의 유리파편이 주사약 안에 6백79개까지 섞인 경우도 있었다. 앰플의 목부위에 약간의 흠을 미리 내놓았거나(1점 커트) 앰플의 목부위에 흰색선을 둘러놓은 (이지 커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유리파편이 발견됐으나 그 수나 크기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다.
"앰플의 끝부분을 가열해서 밀봉하기 때문에 앰플 내에 음압이 생긴다. 따라서 앰플을 따는 순간 유리파편이 주사약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돼 있다"고 심교수는 지적한다. 이 유리파편이 우리 몸안으로 들어간 뒤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정확히 밝히고 있는 연구결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유리조각이 혈관을 막아 혈관폐색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특히 굵기가 5~7μm 밖에 되지 않는 폐모세혈관 쯤은 간단히 막아버릴 것이다. 이렇게 혈관이 폐쇄되면 자연 혈액공급이 끊기게 되므로 해당 장기는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 장기의 조직에서 괴사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혈관 내에 콜레스테롤이 부착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유리파편이 혈관을 막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대단한 넌센스다. 아직 이 유리파편이 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가 면밀히 연구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 실상이 제대로 밝혀지면 엄청난 충격을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앰플을 다루는데 서툰 사람이 앰플을 깰 때에는 유리파편의 수와 크기가 더 많아지고 커질 것이 분명하다.
앰플의 유리파편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일본 도호쿠대학의 아카다교수. 그가 1974년 '약제에 의한 의료사고에 관해'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앰플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문제가 거의 부각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이 유리파편을 규제할 관련규정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인데 이래저래 제약회사의 '희망사항'이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유리파편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앰플의 목에 더 확실하게 흠집을 내거나 흠자리를 에탄을 등으로 잘 닦은 뒤 앰플을 깨뜨리면 유리파편이 덜 생긴다. 또 깨기 직전에 앰플을 70℃ 전후로 가온해 내압을 높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주사약을 앰플에 넣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주사기 속에 넣어둔 프리필드(pre-filled)주사기도 나와 있다. 그러나 이런 세심한 주의가 실행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환자들도 주사약만을 찾지 말고, 의사들도 외국의 의사들처럼 가급적 주사제 처방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파편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