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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업이 입시와 교과서라는 틀에만 묶여있어야 합니까?

서울 잠실고 생물교사 심재호


문과학생들에게 과학적으로 깊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사회에 나가면 필연적으로 과학과 관계를 맺게 된다는 양면성을 갖는다.

이과학생들보다 수학과 과학에는 일반적으로 흥미를 덜 느껴서 문과를 택한 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다.
1학년과 이과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자신만만함은 사라지고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교실문을 열기조차 두려웠다. 처음 수업할 내용은 발생 그리고 유전단원이었다.

발생단원은 대학수준의 실험적 관찰결과들을 교과서에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이과학생들도 이해를 잘 못하는 부분이다. 엄청난 추상적, 공간적 능력을 가진 학생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 유전단원은 우리의 생활과 연관성을 가질 수 있고 재미있게 서술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입시문제에 거의 매년 이 부분이 출제되면서 어려운 내용이 포함됐다.

발생과정을 직접 실험해보지 못하고 교과서의 어설픈 그림을 통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흑판에 그림을 그리고 갖은 손짓을 해가며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

이해력이 빠른 몇몇 학생들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문과학생들의 수업은 그렇게 어렵게 시작됐다.

학생들은 하나 둘 나의 눈을 피해 영어와 수학책을 꺼내서는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괴로운 듯 멍한 눈을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갈수록 생물수업시간에 수학과 영어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기 위해서 졸고있는 학생들이 늘어만 갔다. 그럴수록 나의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대학 교재의 내용을 찾아보는 시간은 늘어가고 강박관념은 커져만 갔다.

탈출구가 없을까. 여러가지 수업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이미 학생들은 내 수업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괴롭고 학생들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문과 수업을 맡은 것이 후회가 됐다. 그래도 발생 단원이 끝나고 유전단원으로 넘어가니 일부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수업에 약간의 활기를 되찾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내년에는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이 됐다.

문과학생들에게 굳이 발생단원을 가르쳐야만 할까. 그런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교과서의 내용중 어느 부분이 입시에 출제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입시에 출제되는 부분 중에는 단순히 암기해야 하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처음 수업할 때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생물 과목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암기 과목요." "다른 대답은 없습니까?" "…"

학생들은 생물과목을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입시의 한 수단으로 생각하며 사고하는 것까지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물 수업 그 자체는 비과학일 수밖에 없다. 생물수업은 과학적인 사고를 기르는 학문의 일부이다. 과학적인 내용을 비과학적으로 배우고 가르치면 그것을 과학이라고 볼 수 있을까.

교사는 입시와 교과서라는 틀에 묶여 있어야만 하는가. 물리교사인 박선생에게 생물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도대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입시때문에 교사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입시를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거든." "어떻게 가르치는데?" "필기할 시간도 없고 거의 나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려고 하지." 그는 피식 웃었다.

"교과서의 내용을 다 설명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것 같니? 학생들은 그 다음 시간에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않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가르치란 말야?"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때로 입시라는 틀을 무시해야해, 교과서의 모든 부분을 가르칠 필요는 없어."
화학교사인 서선생이 말을 받았다. "나도 처음엔 학생들에게 내 모든 지식을 다 주려고 했어.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과학 수업을 잘못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문과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더욱 그렇다. 문과학생들은 졸업한 후 과학자가 될 학생들은 거의 없다. 문과학생들은 과학을 단지 입시를 치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여길 뿐 더 이상 과학수업 그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과학생들은 과학과목 중 주로 생물을 선택하고 있다. 생물 선택이 더 많은 이유는 그냥 외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도 있다. 문과선택 학생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어떤 형태로든 과학과의 관련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문과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과학적으로 깊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과학과 관련을 가지는 양면성을 고려한다면 문과학생들에게는 교양으로서의 과학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들 중의 어느 누군가가 과학과 관련된 정책의 입안자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산업폐기물 처리장이나 원자력 발전소 부근의 주민이 될 수도 있다.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도시에 거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사회와 과학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과학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수업을 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학생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면 학생들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학생들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질문을 주로 하고 모든 학생들이 직접 노트에 답을 쓰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과서의 획일화된 내용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교사는 나름대로 자료를 준비해야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면 생물교과서의 내용 중 심장의 구조와 혈액의 순환을 가르치려고 할 때 교사는 혈액순환설을 발견하게 된 과학사적인 측면을 요약하고 그 내용을 복사하여 학생들에게 수업전에 나누어주고 읽어오게 한다. 이러한 작업은 학생들에게 교과서 외의 기본적 소양을 함양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 외의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냉동인간이라든지 물고기가 얼어도 숨을 쉬는가라는 문제들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다. 교사는 오히려 이런 부분을 학생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과학교사는 어느정도 교과서와 입시라는 틀을 벗어 나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다 과학적인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려면 과학교사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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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심재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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