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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특수상대성에 이어 1915년 세상에 태어난 일반상대성은 자체 이론의 탁월성에도 불구, 빛을 보지 못했다. 이를 만들어낸 아인슈타인 조차 우주항이라는 엉뚱한 상수를 집어넣어 그 의미를 퇴색시켰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팽창우주론과 대폭발이론 등 각종 우주론에 적용돼 각광 받고 있는데…

1960년부터 1980년 사이에 일반상대성은 다시 태어났다. 상대성이론은 발표된 후 여러분야의 과학에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말까지는 물리학의 본류에서 벗어난, 별 쓸모없는 단지 형식만 갖춘 과목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관측해 접촉할 대상이 거의 없고, 실제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이 몇 안되었으며 애매하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꽉 차 있는 분야로 보였기 때문이다. 1970년에 와서야 비로소 일반상대성 이론은 가장 활발하고 재미있는 물리학의 한 분야가 되었는데 천문학자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도구로서, 그리고 입자물리학자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자리매김됐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관성계를 다루는 특수상대성이론과 등가원리를 통합할 수 있는 중력이론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일단 공식을 만든 후 몇가지 실험으로 이론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상대성 천문학의 등장

대폭발에서부터 우주팽창까지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기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많은 문제가 있었다. 중력장에너지는 어떻게 정의 돼야 하는가. 슈바르츠 실트 반경에서 특이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주의 유한한 물체의 정확한 방정식은 무엇인가 등등의 문제가 산적했던 것이다. 전환점은 1959년에 서 60년 사이에 왔다.

첫번째 사건은 1959년 9월 14일 금성으로부터 수신한 레이더 메아리를 성공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이에 대한 분석은 1961년에 있었다. 두번째 사건은 1960년 3월 6일에 일어났다. 그날은 바로 파운드(R. Pound)와 레브카(G. Rebka. Jr.)가 중력장에서 빛의 적색이동에 대한 성공적인 실험측정 논문을 유명한 물리학 잡지 '피지컬 리뷰 레터즈'(Physical Review Letters)에 기고한 날이다. 세번째 사건은 1960년 9월 26일 팔로마 산의 천문학자들이 3C48 전파 원천의 정확한 위치에서 비정상적인 별같은 물체를 관측함으로써 비롯됐다. 그 이름을 퀘이사(quasar)라 부르는데 이 이름은 비슷한 다른 것에도 즉시 사용됐다. 이후 펄사(pulsar), 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복사, 그리고 블랙홀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의 발견이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 천문학에 아주 중요하게 응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에 일반상대성 연구는 소위 '상대성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냈다.

등가원리의 발판

역사적으로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는 중력장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정교하게 이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 진자를 사용한 실험이 이루어졌고 이 원리가 경험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1907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이 원리를 사용했다. 1960년경 디케(Robert Dicke)의 업적을 통해 우리는 등가원리가 일반상대성에 기초한 게 아니고 오히려 시공이 휘어졌다는 좀 더 폭넓은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뉴턴이 제안했던 약한 등가원리의 내용에서 자유낙하 물체의 체적은 낙하체의 내부 구조나 성분에 독립적임을 알 수 있다. 약 등가원리에 따르면 '중력장 속에서 두 물체는 똑같은 가속도를 가지고 떨어진다'는 것이다. 좀 더 강력하고 전분야에 영향을 주는 등가원리는 아인슈타인 등가원리(Einstein equivalence principle, EEP)다.

아인슈타인 등가원리를 요약해 살펴보자. ①약 등가원리는 맞다. ②국소 비중력실험의 결과는 실험을 수행한 자유낙하 기준계의 속도에 무관하다. ③국소 비중력 실험의 결과는 우주에서 실험이 수행된 장소와 시간에 무관하다(②를 국소 Lorentz 불변, ③을 국소 위치 불변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두 대전체 사이의 전기력 측정은 국소 비중력 실험에 해당하며, 두 물체사이의 중력 측정 실험은 국소 중력 실험이 된다. 약 등가원리와 비교해 아인슈타인 등가원리는 중력원리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중력효과는 휘어진 시공 속에서 존재하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휘어진 시공의 주요 성분은 '메트릭'(metric)으로 알려진 수학적 변수에 있다. 메트릭은 물리적 사건 사이의 기하학적 관계를 결정함과 동시에 두 공간사이의 거리, 동일한 위치에서 두 사건 사이의 시간, 그리고 서로 다른 위치와 시간에서 두 사건 사이의 일반화된 거리를 말한다.

1960년과 1970년초 진행된 실험으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결과가 얻어졌다. 다른 물질로 된 두개의 공을 막대기 양끝에 붙이고 실로 중간을 매달아 보자. 만일 공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이경우 태양)에 대해 다르게 가속된다면 막대기는 태양이 하늘에 있는 낮동안과 정반대 방향인 밤동안에 매단 실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게 될 것이다. 측정할 수 있는 한계까지 측정한 결과, 회전은 없었으며 서로 다른 물질이 똑같은 가속도로 떨어졌다.

국소 위치 불변을 증명하기 위한 주요 실험들 중의 하나로 중력 적색이동 실험이 있다. 전형적인 중력 적색이동 실험은 중력장 속에서 다른 높이에 있는 두 시계 사이의 주파수 이동을 측정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정밀한 실험은 1976년 6월에 수행된 로켓실험으로 하버드대학의 베솟(Robert Vessot)과 레빈(Martin Levine), 그리고 NASA의 동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수소 메이저 원자시계를 로켓에 싣고 고도 1만㎞까지 날려보내 지상에 있는 유사한 시계와 비교하는 이 실험은, 수소메이저 시계의 주파수 안정을 이용해 높이의 함수로 상대적인 주파수 이동을 측정하는 것이다.

모든 메트릭 이론은 휘어진 시공을 명백히 하기 위해 중력을 다룬다. 수학자들은 시공을 4차원 리만(Riemann)기하학으로 생각 한다. 그러면 일반상대성은 무엇인가.

일반 상대성과 중력의 메트릭 이론과는 어떻게 다른가 일반상대성 이론은 주어진 물질의 분포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시공의 메트릭과 곡률을 발생시킬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방정식이다. 이를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라 부르거나 혹은 아인슈타인장(field) 방정식이라 부른다.

세가지 실험

태양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상대성 실험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빛의 빗나감, 빛의 시간지연, 수성의 근일점 이동이 그것이다. 원래는 아인슈타인이 계산해낸 중력적색이동이 들어가고 빛의 시간지연이 빠졌으나 엄밀히 이야기해서 중력적색이동은 아인슈타인 등가원리 확인 시험이기 때문에 뺀 것이다.

빛의 시간지연은 빛의 빗나감과 연관이 있다. 그 이유는 빛을 휘어지게 만드는 전자기(굴절 분산 중력 등) 내의 어떤 물리적 구조라도 빛을 지연시킬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왜 이 현상을 발견못했는지는 사실 불가사의하다. 빛의 지연에 대한 연구는 겨우 60년대에 시작됐지만 오늘날까지 일반상대성의 가장 정밀한 실험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태양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는 예언은 일반 상대성의 극치다. 에딩톤(Eddington)과 크로멜린(Crommelin)은 1차대전 발발 후 처음 있었던 일식 동안에 별빛의 휘어짐을 관측해 아인슈타인을 일약 명사로 만들었다.

태양 가까이 지나가는 광신호의 지연을 샤피로(Shapiro) 시간지연이라 하는데 광편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샤피로가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후 20년 동안에 가장 정밀한 측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959~1960년 사이의 금성 레이더 메아리로부터 유래된 거리 측정 기술을 들 수 있다.

수성궤도의 비정상적인 근일점 이동은 일반상대성 이론의 개가라 하겠다. 수성궤도 위에 퀘이사의 섭동효과가 설명된 후 수성의 근일점에 대해서는 1859년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천체역학에서는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었다. 많은 제안은 이 수성의 근일점이 빗나감을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직접 광학적 관측에 의한 물체의 관측은 안됐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비정상적인 이동을 설명할 수 있었는데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1966년에 과연 근일점이동이 일반상대성에 맞느냐 아니냐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왜냐하면 태양의 외부에 뉴턴 중력장을 변모시키고 근일점 이동의 일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태양 편원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지하고 있는 우주정거장에서 보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내의 시간은 지체된다. 그렇지만 상대론에서는 우주정거장아 움직인다고 해도 같다. 다만 정거장내의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다.


새로운 블랙홀 물리학

우리는 강한 등가원리(strong equivalence principle, SEP)를 공식화할 수 있다. 여기서 강한 등가원리란 실험실에서 실험할 수 있는 크기의 물체뿐만 아니라, 행성 혹은 자신의 내부 중력 결합에너지를 갖는 별까지도 중력장 내에서 똑같은 가속도를 가지고 떨어져야 하는 것으로, 실험실에서 우주까지 이론을 확장시킨 것이다. 중력의 법칙은 우주내의 다른 물질에 대한 속도나 위치에 독립적이어야 하며 중력상수 G는 주위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정말로 상수여야만 한다. 중력상수는 우주의 평균 정지계에 대한 지구의 속도에 독립적이며, 은하계 중심같은 물체의 응집과 관련있는 특별한 방향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지구에서의 간만의 차이와 회전율의 지구물리학적 관측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

일반상대성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현상 중의 하나는 블랙홀을 연구하고 찾는 일이다. 이 주제는 1960년 초기 천문학자들이 퀘이사를 설명하고자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X-선 원천에서 블랙홀을 탐지한 후 1970년초에 불이 붙어 1970년도 중반에 최절정을 이루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일반상대성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분야가 됐다.

블랙홀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아마추어 천문가이며 목사인 미첼(John Michell)의 글에서였다. 두번째는 1939년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와 스나이더(Hartland Snyder)의 논문에서, 중력에 대항해서 별을 지지하기 위한 열과 압력을 생성하기 위해 열핵연료를 완전히 소모한 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기술하는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별은 붕괴로 시작 된다. 그리고 만일 중성자별 단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면, 별의 반경이 소위 중력반경 혹은 슈바르츠실트 반경으로 접근 할 때까지 붕괴가 계속될 것이다. 이 반경은 2GM/${C}^{2}$이다. 여기에서 M은 별의 질량이다. 태양이 블랙홀이 되면 중력반경이 약 3㎞이고 지구는 9㎜로 된다. 별의 표면 위에 있는 관측자는 붕괴가 계속돼 점점 반경이 줄어들어서 별과 관측자가 한점으로 된다.

다시 말하면 상당한 거리에 있는 관측자는 반경이 중력반경으로 접근함에 따라서 중력 적색이동의 결과를 외부로 보내면서 붕괴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음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가 적색이동이다. 서서히 붕괴가 극심해서 별은 거의 정지하게 된다. 그리고 중력반경에서 배회하게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관측자는 일단 중력반경 속에 있는 관측자로부터 방출하는 어떤 신호도 관측할 수 없다. 이 계산에서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어떤 신호도 중력반경으로 둘러싸인 구를 도망쳐 나올 수 없다.

블랙홀의 중흥기는 I960년대에 일어났다. 첫번째가 퀘이사 발견이었고 두번째는 1963년 커(Roy Kerr)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새로운 완전한 해를 구한 것이었다. 슈바르츠실트 해는 회전하지 않는 것이고 커 해는 회전하는 블랙홀에 대한 것이다. 퀘이사 발견 이후 상대론적 천문학자들은 슈바르츠실트와 커해의 중요한 성질을 증명하는데 10년의 세월을 소모했다.

지구의 지평선이 우리 시야의 경계인 것처럼 서로 연락하기 위한 경계인 사건지평선 내에 있는 관측자는 외부에 있는 관측자와 그 방법이 무슨 방법이든간에 심지어 빛을 보낼지라도 서로 연락할 수 없다. 빛이 아닐지라도 아무 것도 빠져 나올 수 없다. 다른말로 이야기하면 빛과 물질 그리고 물리학자 등 모든 것들이 사건지평선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오지 못한다.

사건지평선의 한길 너머에 대해 휠러(John Wheeler)가 1967년 뉴욕 학술회의에서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다. 커해로부터 블랙홀의 회전은 똑같은 관성계를 끌어당기는 효과도 낳게 한다. 만일 관측자가 적도 근처 지평선에 가까이 가게 된다면, 그리고 내부로 떨어지지 않고 거의 선상에서 배회한다면 시공을 끌어당기는 것이 너무 강력해 홀의 회전을 가지고 있는 몸체가 그를 끌어당기는 것을 제거할 수 없다. 아무리 강하게 로켓을 반대방향으로 분사시킨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일반적인 특성과 기본적인 정의를 사용해 많은 학자들은 슈바르츠실트와 커보다도 좀더 일반적인 것에 응용 될 수 있는 블랙홀에 대해 여러가지를 정의 했다. 예로 1969년 '호킹-펜로즈'(Hawking-Penrose) 정리를 살펴보자. "지평선 내에서는 시공의 특이성과 만나는 관측자의 길 혹은 세계선이 끝나는 시공의 특이점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이 깨지는 곳이다."

1972년에 와서 호킹 등이 블랙홀 역학의 네가지 법칙을 만들어냈다. 1974년 호킹은 양자론의 수학을 블랙홀 시공에 적용했다. 그리고 블랙홀은 시공 근처의 진공으로부터 입자가 반입자 쌍을 생성하므로 블랙홀이 증발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중력법칙과 양자 역학 그리고 열역학의 이러한 통합은 현대 이론물리학의 아주 훌륭한 업적중의 하나다.

호킹과 몇몇 학자들은 대폭발에서 아주 작은 블랙홀이 창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질량이 ${10}^{12}$㎏인 아주 작은 블랙홀은 그 수명이 약 2백억년쯤 된다. 그래서 그들은 증발상태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들의 질량은 대단히 작기 때문에 온도와 증발률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그들이 감지 할 수 있는 고에너지의 감마선(γ-ray)과 소립자들의 마지막 폭발을 방출해야되는데 오늘날까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블랙홀 이론은 많이 알려져있지만 여기에 비해 관측된 사실은 상당히 적다.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매우 인상적인 몇가지 예가 있다. 이것은 물론 간접적인 방법이다. 블랙홀은 펄사의 경우와 같이 임계 파편의 증거를 얻기가 어렵다. 예로 연(soft) X-선 원천인 백조자리(Cygnus) X1은 약 태양질량의 6배 정도 되는데 너무 커서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밀집된 물체로 믿어진다. 굉장히 무겁고 회전하는 블랙홀은 부가물질을 분출할 수 있다. 블랙홀 증거의 파편은 초신성의 붕괴 동안 형성된 블랙홀의 정상 진동으로부터 방출되는 중력파를 중력파 감지기가 감지할 때 발견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들이 존재한다는 간접적인 증거로 만족해야 한다.
 

별빛은 태양의 중력 때문에 휘어진 공간을 지나면서 굽는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예측


아인슈타인 의지 부족

1960년대 중반까지 우주론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을 사용해 우주모델을 처음 계산한 1917년 이래 수년에 걸쳐서 이론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마침내 성공에 이르렀다. 일반상대성의 우주론에서의 실패는 어떤 의미로는 아인슈타인의 의지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그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우주에 적용했는데 이것 자체는 웅대한 거보였다. 왜냐하면 1917년에는 물리적으로 은하계 밖에 어떤 것이 있는지 흑은 비어있는지 모르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예로 성운이라 부르는 안드로메다 은하계는 우리의 은하계 내에 놓여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아인슈타인도 역시 우주를 모든 장소에서 똑같은 밀도 즉 물질의 균일한 분포로 이상화시켰다. 여러 철학적인 이유에서 닫혀진 우주의 모델이 선택됐기 때문이다. 공간이 휘어졌다는 결과로 해서 직선으로 출발한 관측자는 궁극적으로 자기 출발점으로 되돌아 온다. 이 모델은 정지해 있으며 시간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1917년 관측적 상황에 확실히 맞았다.

그런데 그는 이론이 그러한 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 해는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것에 맞았다. 필요한 정지 해를 구하기 위해 그는 이론의 원래식에 우주항이라는 한 항을 덧붙여 변조시키지 않으면 안됐다. 이 변조된 식으로부터 우주와 정지 모델을 얻었다.

그후 1929년 허블(Edwin Hubble)이 우주항이 불필요함을 보이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발견을 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자신의 과학자적 삶의 최대 실수로 생각했다. 1931년 아인슈타인은 우주항이 없어야 하며, 원래의 장방정식으로 복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해서 팽창우주는 이론에 있어서 실패에서 성공으로 전환됐다.

만일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우주는 사간에 따라서 진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예언해 그가 발전시킨 이론에 계속 마음을 두었다면 일반상대성과 우주론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확증을 얻을 때까지 뒤돌아 앉아서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실제 일반상대론의 우주론적 성공은 I960년대에 있었다. 첫번째가 1965년에 벨전화 연구소의 펜지아스(Arno Penzias) 그리고 윌슨(Robert Wilson)이 발견한 우주배경복사를 들 수 있다. 이는 초기 우주를 한때 지배했고 지금은 연속적인 우주의 팽창으로 절대온도 3도까지 식어버린 뜨거운 흑체복사의 잔유물, 즉 찌꺼기를 말한다. 두번째 대폭발 이후 약 1천초인 우주 초기 수소에서 만들어진 헬륨량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약 25%에 해당하는 무게의 헬륨량은 별내부와 별사이의 공간에서 관측된 헬륨의 총량과 일치한다. 다른 관측과 더불어 이러한 두가지 결론은 결국 '정지이론의 사멸'이라는 조종을 울리게 했다.

오늘날 우주의 일반상대론이라 할 수 있는 대폭발 모델은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주론자들은 지금 그들의 관심을 좀 더 자세한 부분에 기울이고 있다. 즉 어떻게 은하계와 다른 커다란 크기의 구조가 우주 초기 혼돈의 영역에서 형성됐는가. 그리고 1천초 보다 빠른, 즉 소립자 물리학 법칙이 우주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때인 ${10}^{-36}$초로 돌아갔을 때 우주는 어떠했는가 하는 등이다. 이 새로운 우주론은 일반상대론자, 입자물리학자 그리고 천문학자 모두에게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다.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반상대성 중흥기의 부산물 중의 하나는 이론의 중요성과 그 이론의 사용에 대한 태도의 변화다. 시공과 중력 성질의 기본적 이론으로서 상대성의 중요성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다소 마찰이 따르기도 했지만 연구의 꽃을 피움으로써 오히려 향상이 있었다. 상대성의 중요성은 다른 상호작용과 중력을 통합하려는 자연의 통일된, 그리고 대통일된 양자이론에 대한 현재의 연구로 강화될 수 있다.
 

호킹은 양지론의 수학을 블랙홀 시공에 적용했다.


수성의 근일점

수성의 근일점이란 수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갈 때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 근일점에서 다음 근일점으로 갈 때까지 정확하게 태양의 위치를 한번 돌지않아 과학자들을 1백년 이상 고민에 빠뜨렸다. 1세기 동안 타원궤도에서 43″의 차가 났다. 이를 해결한 것이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이론은 이 현상을 예측했고 실제 관찰 결과 정확히 검증됐다.

사건지평선

시간이 무한히 경과해도 영원히 볼 수 없는 영역의 경계면. 이 지평면을 통해 물체와 빚은 경계면 저쪽으로 갈 수 있지만 그쪽에서 이쪽으로는 올 수 없다. 일방통행의 경계면인 셈이다.

199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조창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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