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우림지역의 벌채만으로도 매년 4천~6천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
필자는 1973년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천지연폭포 상류에서 그때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새우류 한종을 채집 했다. 자세히 살펴 보니 틀림없는 신아종(新亞種)이었다. 그래서 1976년에 학명과 제주새뱅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붙여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그후 나는 서귀포에 갈 때 마다 제주새뱅이의 생존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80년대에 들어 와서는 이것들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싫지만 멸종된 것으로 보인다.
인왕산호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호랑이는 옛날에는 비교적 흔했던 동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에는 백두산에 몇마리 남아 있을 뿐이고 거의 절종(絶種)위기에 처해 있다.
15세기 후반기에 노사신이 쓴「동국여지승람」의 토산편을 보면 사향(사향노루에서 얻는 약재)은 충청 경상 전라 함경 평안 등 5개도 36고을의 토산물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영양각(산양의 뿔)은 충청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경 평안 등 7개도 48고을의 토산물이 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그 당시에 사향노루와 산양이 매우 흔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난 4, 50년 사이에 둘다 개체수가 갑자기 크게 줄어 들어 멸종직전에 처해 있는 위기종(危機種)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현재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 생물의 종들이 살고 있을까. 또 이 생물종들의 역사는 어떠할까. 왜 근년에 생물들이 많이 멸종돼 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멸종을 막을 방책은 없는가.
알려지지 않은 생물종이 더 많아
지구는 약 45억년 전에 생성됐고,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체는 적어도 30억년 전에 화학적 진화의 결과로 나타났다. 이 최초의 생명체가 생물학적 진화를 거듭, 마치 나뭇가지가 갈라지듯이 종이 갈라져 생물종이 다양화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현재 지구상에 사는 대략적인 생물종의 수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발견돼 학명이 붙여지고 과학적으로 기록돼 있는 종이 약 1백50만종이라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지구상에 현재 살고 있는 생물중에서 아직 과학적으로 기록돼 있지 않은 것들이 3백만~1천만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심지어는 3천만종은 되리라고 짐작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알려져 있지 않은 종이 알려져 있는 종보다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이러한 추산이 결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역에 따라 또는 생물의 무리에 따라서는 연구가 매우 미흡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미소한 동물이나 식물, 기생충, 바다의 생물, 열대우림(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지방의 삼림)의 생물에 대한 연구는 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아마도 분류학자들이 제대로 연구하기만 한다면 신종이 수두룩하게 발견될 것이다.
실제로 동물에서만도 매년 1만종 이상의 신종이 발표되고 있다. 몸이 큰데다가 날아다니기까지 해서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분류학 연구가 가장 잘 이뤄져 있는 조류에서 조차 매년 1, 2종의 신종이 보고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필자는 필리핀의 어느 근해에서 채집된 부채게과(科)의 게들을 연구, 1983년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관찰한 60종중 14종이 신종이 었다. 또 동부 태평양에서 서식하는 딱총새우류에 관한 외국학자의 논문(1988년)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총 44종중 21종이 신종이었다.
열대우림지역의 생물상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지구상의 생물중 반수는 이 지역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열대우림지역은 세계 육지면적의 6%를 차지하고 있고 연 강우량이 2천㎜ 이상이다.
실제로 지구상 생물종의 반수 이상이 열대우림지역에서 살고 있다. 어떤 학자는 열대우림지역인 페루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그는 어떤 콩과식물 나무 한 그루에서 26속 43종의 개미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수치는 영국 전지역에서 찾아낸 모든 개미종의 수와 거의 필적한다고 한다. 또한 페루의 어떤 지역에서는 1만㎡ 안에서 약 3백종의 수목이 발견됐다. 우리 한반도 전체에서 지금까지 약 1천 종의 수목을 찾아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열대우림지역을 왜 신종의 보고(寶庫)라고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열대우림지역 뿐만 아니라 열대해역의 생물상도 매우 다양하다. 특히 필리핀 자바섬 뉴기니섬을 잇는 삼각해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의 해양동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더구나 해양동물의 안식처인 산호초에는 매우 많은 종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면 왜 열대우림지역이나 산호초에 생물의 종이 많이 분포할까. 그곳에는 수분이 늘 많이 있고 생물이 살기에 알맞은 기온이나 수온이 일년내내 별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경이 매우 안정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생물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생물은 자신의 생태적 지위에 알맞게 진화, 종의 분화를 다채롭게 일으키고 복잡한 생태계를 구성하게 된다.
생물성쇠의 내력 즉 생물 다양성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기 때문에 각 지층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화석을 통해 그들의 과거지사를 추적 할 수 있다. 모든 생물종은 그 수명에 한계가 있다. 그 누구도 영생할 수 없을 뿐더러 종 그 자체도 한때 번영했다가도 결국 없어지고 만다.
예컨대 중생대에 지구의 왕자로 군림했던 수많은 공룡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주 먼 옛날 바다에서 다세포생물이 처음으로 출현해 번성한 다음, 고생대(古生代, 약 6억년 전~약 2억3천만년 전) 전기까지 생물종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고생대 후반 약 2억년 사이에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때때로 급격히 줄기도 했고 가끔 늘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었다. 그뒤 중생대(약 2억3천만년 전~약 7천만년 전)와 신생대(약 7천만년 전~지금)에 이르러서는 비록 그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꾸준하게 생물종의 수가 증가, 현재와 같은 최고기에 이르렀다.
화석의 기록이나 현생생물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증거에 따르면 생물의 다양성이 높은 수준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생물의 역사를 들이켜 보면 다섯번의 대량절멸(大量絶滅)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에는 대개 종의 다양성이 후퇴했다. 알다시피 대량절멸은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와 백악기에 일어났다.
대량절멸의 원인으로는 여러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예컨대 기후나 수온의 심한 변동, 지각의 변동, 화산폭발, 대형운석의 낙하, 자연적인 큰 화재 등이 꼽히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단지 당시에는 지구상에 인류가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인류의 행위가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백악기 말기에 일어난 제5차 대량절멸 시기에 공룡시대가 끝나고 포유류가 번창하는 신생대로 이행, 인류의 탄생을 보장받게 되었다. 백악기 말기에 공룡이 멸망한 것은 기후 및 여러 생태적 요인의 변화, 공룡 자체의 지나친 특수화(特殊化) 그리고 낮은 생식 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경과하면 대량절멸 후에도 회복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대량절멸 후 신종의 형성이 급속히 이뤄진다는 학설도 있다.
결국 기존의 종은 대(代)를 이어가다가 없어지고 그 종의 어떤 갈래를 조상으로 삼아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이 생물의 역사다. 이를테면 그런 대물림 과정을 통해 생물종의 다양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종에서 여러 종으로 분화될 수 있고, 종과 종 사이의 차이가 매우 커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오래된' 파충류의 종들은 대부분이 '새로운' 파충류의 종을 낳지만, 예외적인 어떤 갈래는 그들의 조상종과는 기본적인 구조가 다른 포유류의 조상이 된다. 따라서 생물의 종이 다양해질수록 속(屬) 과(科) 목(目) 등도 다양하게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물의 종들은 새로운 종으로 지구상에 나타난 다음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서식지를 넓혀가며 번영하다가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그 후에는 쇠퇴해 극히 소수만 남거나 절멸한다. 때로는 어떤 한 시기 안에 수많은 종들이 함께 절멸하기도 한다.
인류라는 파괴자
현대인은 분류학상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人科)에 속한다. 화석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과는 적어도 3백50만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다. 명실상부한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도 약 10만년 전부터 존재했다.
인류가 약 1만년 전부터 농경생활을 시작 한 후 생물의 다양성은 새로운 파란을 맞게 된다. 수많은 생물들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험난한 시대에 뛰어 들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활동이 생물의 다양성을 황폐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종의 절멸을 가속시켰다.
인류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수십만년 전부터다. 그러나 삼림에 적극 간섭하게 된 것은 농경생활을 시작한 후다. 인류는 농경지를 넓히기 위하여 삼림을 불태웠다. 오늘날에도 이 방법은 일부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삼림이 불타면 그곳의 다양했던 동식물이 전멸하게 된다. 인류는 농경지 확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땔나무나 숯, 재목이나 종이원료를 얻기 위해 또 각종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삼림의 벌채를 가속해 왔다. 오늘날에는 산성비로 말미암은 삼림의 피해 등 새로운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피해보는 곳은 어디 삼림 뿐인가. 강이나 호수 또 바다에서도 인간이 제공한 여러가지 원인때문에 생물의 다양성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폴리네시아의 조류의 반은 수렵이나 자연림의 파괴로 인해 멸종했다. 또 남아프리카의 서쪽에 있는, 나폴레옹의 유배지로도 유명한 세인트헬레나섬의 고유한 교목이나 관목은 1800년대에 자행됐던 삼림파괴로 인해 영원히 없어지고 말았다.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빅토리아호에 살고 있던 고유어류 몇백종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한때는 식용 또는 수족관용으로 인기가 높아 높은 값으로 거래됐으나, 경제적으로 이용가치가 없는 나일농어를 사람들이 이곳에 무작정 방류했기 때문에 이제는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의 고유한 갑각류(甲殼類)와 몇몇 무척추동물도 이 호수의 오염이 심해짐에 따라 절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페루의 한 산등성이의 나무들이 벌채 됐을 때, 그곳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고유한 식물종의 90%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또 지구상에는 약 8천6백종의 조류가 살고 있는 데 그중 약 12%가 절멸의 위기에 있다고 한다.
생물들이 사는 곳의 범위도 점점 제한되고 있다. 한반도의 유관속식물(양치식물 나자식물 피자식물)은 4천여종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약 25%인 1천여종은 한반도 고유의 종이다. 따라서 어떤 종의 생물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 파괴되면 그 종은 절멸될 수 있다. 제주새뱅이의 운명도 천지연폭포 상류에 인가가 많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 이 뛰놀던 물이 생활폐수와 농약으로 인해 오염됨으로써 멸종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위기상태 생물 많아
열대우림지역의 경우, 원래 삼림이 덮고 있었던 면적의 약 55% 만이 남아 있다. 지금도 연간 10만㎢의 삼림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것은 열대우림지역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의 약 1%에 해당하며, 남한 면적을 윗돈다.
열대우림지역의 1% 벌채만으로도 이곳에 사는 생물종의 0.2~0.3%가 매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적게 잡아서 열대우림지역에 2백만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가정하면, 삼림벌채로 말미암아 지구상에서 연간 4천~6천종의 생물이 사라진다는 계산이다.
어디 열대우림지역 뿐이랴.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삼림이 벌채되고 있다. 벌채되는 곳마다 숫자만 다를 뿐 절멸되는 종이 틀림없이 나오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골프장 스키장 도로 등의 건설을 위해 또는 재목으로 쓰기 위해 삼림이 마구 벌채되고 있다. 서해와 남해에서의 간척과 매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종의 수많은 개체들이 서식지를 잃고 있다. 개중에는 멸종되는 종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유용 동식물의 남획 또는 분별없는 채취도 문제다. 사실 1945년 이전만 해도 동해의 중요한 수자원이었던 왕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 흔하던 서해의 참조기나 젓새우는 이제 매우 귀한 어종이 되었다. '한국의 희귀 및 위기 동식물도감'(한국자연보존협회, 1989년)에는 척추동물 1백18종 (조류 56종, 포유류 21종 포함), 곤충 24종, 식물 36종이 수록돼 있다.
요컨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생물의 다양성이 크게 침해되고 있다. 만약 이대로 나간다면 생물종의 대량절멸이 일어나 인류에게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인간은 생물종의 절멸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또한 생물이 모든 종을 보존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이것은 자연파괴의 주범인 인류의 속죄의 길이 될 것이다. 아울러 생물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야생 동식물은 식용품, 섬유나 석유의 대용품, 약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인 큰 저장고다. 지금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자연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면서 그 보존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